엄마가 말한다. “엄마도 도서관에서 열공 중.”

<홀로서기 6탄>

by 홍민희

오랜만에 습하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이다. 평일 월요일 오후 도서관 소나무 숲에 앉아있는데, 바쁜 사무실이 아닌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벅찬 감정이 들었다.


올해 휴직을 하면서 수업이 없는 시간은 주로 도서관에 가고 있다. 정해진 공부는 없다. 일본어능력시험이 끝나니 이젠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도서관 벤치에 앉아 멍 때리기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한다.


최근에 시작한 인스타 앱을 열었다. 예전에 앱은 다운로드하고 가입하는 도중 귀찮은 마음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그만둬 버렸다. 가입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내가 다시 시작한 이유는 인스타를 사랑(?)하는 중학생 딸이 DM이니, 본계니, 부계니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통에 안 할 수가 없었다. 딸을 핑계로 시작한 인스타에 읽고 있던 책과 지나가던 개미를 찍은 사진과 함께 글을 남겼다.


‘도서관에서, 신선한 바람이 부는 날에, 그것도 평일 월요일 오후 개미와 친구 하며 놀고 있어. 너무 행복한 날이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얘들아, 엄마만 놀고 있어 미안~~ㅎㅎ. #혼자 놀기#도서관’


학원을 갔다 온 딸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물었다. “엄마, 주말에 친구들하고 스카(스터디 카페) 가도 돼? 중간고사 시험공부 해야 하는데”

“야, 무슨 스카냐. 공부를 얼마나 한다고 시간당 돈을 내면서 공부하냐. 그냥 엄마처럼 가까운 도서관 가서 공부하고 그 돈으로 과자나 사 먹어라.”

단호박 같은 내 대답에 착한 딸은 나 대신 친구들을 설득했다. “그럼 일요일 오전에 축구부 연습 끝나면 친구들이랑 도서관 가서 공부하고 올게. 근데 엄마는 도서관 가서 뭐 해?”

“엄마도 도서관에서 열공(열심히 공부) 중이지. 요즘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강의 듣고 있는데, 진도가 안 나가서 좀 걱정이다. 가만히 도서관 안에 앉아있으면 재미있는 일도 있어. 며칠 전에는 어떤 아저씨가 직원하고 뭐라 막 얘기하는데 좀 목소리가 과하게 크다 생각했는데, 지나가던 다른 아저씨가 ‘거 좀 조용히 합시다!’하고 말하고 나가더라고. 그러니깐 이 말 들은 큰 소리 아저씨, 직원한테 저 사람 데려오라고 생떼를 부리더라. 직원이 막 달래니깐, 자기한테 뭐라고 한 아저씨 들어올 때까지 자기 여기 문 앞에 서 있겠다고 하면서 계속 직원하고 실랑이를 하더라고. 결국 나갔던 아저씨 돌아오니 두 아저씨 말싸움을 시작하더라.”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고 했던가. 흥미롭게 듣던 딸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음. 두 아저씨가 말싸움하다가 직원이 말리니깐, 두 분이 도서관 밖으로 나가면서도 계속 말싸움을 하긴 하던데. 다음은 누가 이겼는지 모르겠네.” 내 말에 딸은 싱겁다는 표정을 지었다.

삶은 때론 싱겁게 끝나는 게 해피엔딩임을 딸에게 말해 주고 싶지만 ‘또 알 수 없는 소리 하네’하는 표정을 지을까 봐 참았다.


직장생활을 오래 해다 보니, '말은 일의 능력'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말하고 싶지 않아도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하는 시간에 지쳐있었다. 그런데 도서관에 오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마음껏 누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진다.


도서관에서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오늘은 딱 한마디 했다.

“잔치국수 하나요.” 4천 원짜리 잔치국수를 먹으며, 유리창 너머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 저 커플, 계속 도서관에서 보이네. 도서관 데이트 좋아하나 보지, 남자는 군대 안 갖다가 온 거 같고, 대학교 1~2학년쯤으로 보이네. 남자애가 여자애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인다 보여. 야~ 좋을 때다 좋을 때. 근데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좀 서운할 거 같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안돼. 쿨한 엄마가 되기로 했잖아.’

오늘도 도서관에서의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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