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보고읽은 것들
나는 원래 잘 운다. 특히 누가 울면 따라운다. 한 때는 사람이 울때면 어떤 화학물질이 나오고 나는 거기에 쉽게 반응하는게 아닐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TV에 우는 사람을 봐도 같이 우는 걸 보면 그 이론은 틀렸고, 나는 그냥 눈물이 많은 사람인가보다. 오늘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서 지호와 유튜브를 보다가 나만큼 쉽게 우는 사람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지금도 그렇게 갑작스레 눈물을 터트리곤 할지...
오늘 지호와 본 유튜브는 KBS다큐채널에 올라온 탐험 이야기였다. "베링해협 횡단에 세계최초로 성공한 홍성택 팀이 벌인 5박 6일 180km 사투"라는 무려 43분짜리 동영상이었다. 십분 이상의 동영상은 큰 결심이 없이는 보기 힘든 요즘이지만, 지호와 나는 속절없이 이이야기에 빠져들어 40분이 넘는 1부를 다보고는 2부까지찾아보았다. 꼭 자기 몸만한 썰매를 끌고 가는 4명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던 카메라가 점점 하늘위로 멀어지면서 거대한 설원 위에 네명의 탐험대는 작디 작은 점처럼 사소해보였다. 안간힘을 써서 내딛는 그들의 걸음은 하늘에서 보기에 제자리나 다름 없었다.
실은 얼마전 이 탐험대의 대장이 내가 듣는 팟캐스트에서 베링해협을 건넌 이야기를 했다. 최근은 아니고 실은 이미 몇해전에 방송한 것을 내가 최근에 듣게 되었다. 러시아와 알래스카 사이, 그러니까 대륙과 대륙사이의 바다를 도보로 건넌다는 발상 자체가 신기한데다, 그들은 세계 최초로 그 도보 횡단에 성공한 팀이었다. 그게 2012년도의 일이니 나는 무려 12년이나 지난 이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발견한 것이다. 나는 팟캐스트를 두번이나 듣고도 성에 차지 않아 그때를 기록했던 다큐를 찾았다. 그게 지금 내가 지호와 보는 이 KBS 다큐이다.
대륙과 대륙사이 바다를 도보로 건널 수 있는 것은 예상가능하듯이 빙하와 얼음으로 대륙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잔속의 얼음도 녹으면서 핑그르르 돌 듯 바다위의 거대 빙하 역시 녹고 부서지고 조류에 밀려 떠내려간다. 얼음위에서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얼음과 함께 대서양으로 밀려 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걸어서 얼음보다 빠르게 얼음위를 이동해야 한다. 중간중간 탐험팀의 대장과 대원이 설원에 그을리고 동상이 다 낫지 않은 얼굴로 그때의 경험을 인터뷰하는 영상은 덤이다. 그들은 경험을 이야기 할때는 주로 덤덤했지만, 그때의 느낌을 이야기 할 때는 아직 거기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인터뷰를 하는 듯 했다.
그 인터뷰 중 탐험 대장은 이번 탐험의 동기를 이야기 했다. 몇해 전 북극점을 함께 정복했던 故박영석 대장과 함께 온것이나 다름 없고 그래서 꼭 성공하고 말 것이라고... 그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한 사람을 깨워냈다.
신입사원 교육이었는지, 대리진급 교육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3년마다 돌아오는 여성인력에 대한 교육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용인에 있는 연수원 강의실에 있었다. 아니, 사업장 안 어디였던가. 이제는 계절도 희미하다. 추운계절이라 따뜻한 강의실 공기가 텁텁했던 것 같기도 하고, 더운 계절이라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던 것 같기도하고...
신입사원이나 진급교육은 으레 그렇듯 회사에서 강사들의 입을 통해 에둘러 전하는 정신교육이다. 지루한 정신교육의 말미에는 교육만족도 평가를 의식한 듯 유명인들이 하는 말랑한 강의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때, 마지막 강의는 세계최초로 북극점을 정복했던 XXX 씨였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정장 자켓에 팔이 꼭 끼일 정도로 몸이 단단해 보이는 키작은 남자가 정중하게 무대에서 인사를 하고 자켓을 벗어도 되겠냐며 정중히 옷을 벗어 옆에 두었다.
그리고 그는 동료들과 네사람이 팀을 이루어 북극에 다녀온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전시간의 졸음에서 완전히 깨지 못한 채로 관심없는 등산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는데, 그의 이야기는 상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나를 북극점 근처 바람부는 어딘가로 데려다 놓았다. 이를테면 그는 "북극이 너무 추워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북극에서 소변을 보면 절대 버리지 않고, 병에 담아서 꼭 끌어안고 있었다고.. 그게 행복할 정도로 따뜻했고, 동료가 소변을 많이 보면 너무 부러워서 나좀 줬으면 했다는 그런 이야기.
북극에서는 모든 장비가 다 얼어버린다고 한다. 심지어 말랑한 고무같은 것들도 모두 딱딱해져서 쉽게 부러지는데 예외는 없다고... 이런 극한의 추위에도 얼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고추장. 그래서 고추장 안에 카메라 배터리 같은 것을 묻어두었다는 이야기. 두 달 이상 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는 극한의 환경에 탐험대만 있을 뿐이라, 어느 날 아침 이유없이 동료대원이 미워지는 날이 있다고... 그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나 오늘 이상하게 너 보기 싫어"라고 하면 서로 눈에 띄지 않으려고 조심했단다.
또렷이 기억나는 이야기는 그들이 만난 유명한 여성 탐험가에 대한 것이었다. 어느 날은 탐험 중에 같은 곳을 목적으로 탐험중인 유명한 여성 탐험가를 만났고 그녀와 반갑게 인사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미 그 나라에서 유명인이었고 그들도 이미 그녀를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인이었다고... 그녀는 본인의 도전을 매일 생중계로 전하고 있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부담감이 컸을 거라고.
북극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거대한 얼음 사이에 빠지는 것이라고 한다. 얼음물의 온도도 그렇지만 얼음물에서 밖으로 나온 이후 영하 50도의 온도는 동상을 부르기 마련이라 어딘가 절단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탐험대는 어느 날 얼음사이에 빠진 그녀를 발견했고, 즉시 그녀를 구하고 보온을 할수 잇는 조치를 했다, 하지만 탐험을 계속해야한다는 부담감에 그녀는 그들의 눈을 피해 몸이 회복되기 전에 탐험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리드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는 구급헬기를 타고 본국으로 회송되었고 이후 사지를 절단하게 되었다고 했다.
반면 그들 팀은 부지런히 탐험을 계속했고, 배고픔과 추위를 이기고 결국은 탐험을 마치고 서포트 팀을 만나 허겁지겁 빵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할때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뿌듯했다. 그 때 탐험대 동생이 나중에 남극 탐험을 갔는데, 북극점에 비하면 남극은 너무 따뜻해서 반팔입고 다녔다더라는 말에 우리는 모두 웃었다. 그는 그 동생이야기를 좀 더 늘어놓으며 그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 동생이 어디를 탐험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그리고 그때 같이 떠났던 선배중의 누군가도 등반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그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막 동료를 잃고 혼자서 탐험을 마친 사람처럼 허망한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강의를 듣던 우리는 당황했다. 그는 동료들과의 추억담을 몇개 더 말하고자 했지만 울음으로 발음은 점점 엉망이 되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십수년 수강생 이력에 강사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있었어도 이렇게 눈물을 뚝뚝 흘리고 우는건 처음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첫사랑 얘기를 하다가 별안간 눈물을 흘린 불어선생님이 있긴했다. 수업시간이나 떼워보려고 첫사랑얘기를 청했던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며 수업을 마무리 했었는데, 이 날은 그때보다 훨씬 갑작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울음은 훨씬 더 본격적이었다.
그의 울음은 주변을 슬픔을 그러모으는지 점점 더 거세져서 그는 강의 중에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아이처럼 아무런 말없이 흐느껴 우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울음을 채 멈추지 못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고 훌쩍이며 강의는 마무리 되었다. 그 날 나는 그를 따라 많이 울었다. 처음에는 눈물을 참으려고 강의실 천장을 노려보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얼굴도 모르는 탐험가를 그리워하면서 울었다. 강의가 끝났을 때는 나도 많이 울어서 그런지 속이 시원하고, 허기가 밀려왔다. 생각지못한 교육의 마무리였다.
베링해협탐험기를 들으면서 나는 기억속 그의 이름을 찾으려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곧 그만두었다. 이름앞에 故가 붙은 산악인이 너무 많았다.
팟캐스트에서 베링해협 탐험대 대장이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영하 30도 넘어가는 날씨에도 얼지 않는게 딱 하나 있어요. 고추장!"
그 탐험대장이 내가 강의를 들었던 그 탐험가가 맞는지, 아닌지 전혀 모르겠다. 그 때의 계절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의 이름이나 얼굴이 기억날리 없다. 엉엉 울며 소매로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던 모습만 머릿속에 선명하다. 그가 엉엉 우는 영상이 올라오지 않는 한 확인할 길이 없겠지만, 나는 그가 그 때의 강사라고 믿기로 했다. 여전히 동료들을 마음에 품고 성공적으로 탐험을 이어가고 있고, 가끔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채로 뜨겁게 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