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가 있다. 밝은 아이다. 웃음이 많아 반달 모양으로 눈이 없어지곤 했다. 소녀는 누구의 이야기든 잘 들어줬다. 가만히 있어도 미소를 짓는 아이에게 사람들은 칭찬했다. 참 차분하고 착하다. 웃는 모습이 이쁘다. 정말 긍정적이고 밝다. 아이가 지나간 자리엔 ‘잘 웃는 착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래서 아이는 원했던 원치 않았던 그런 사람이어야만 했다.
그런 아이를 사람들은 좋아해 줬다. “넌 착하니까 뭐든지 잘 받아주고 잘 웃으니까 좋아.” 싫은 상황에서 싫은 티를 낼 수 없었다. 불편한 상황 따위는 웃어넘기며 감내해야 했다.
그렇게 웃지 않는 법을 잃어버렸다.
아이는 감정을 조금씩 드러냈다. 싫은 건 싫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착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친구들이 모두 떠났다.
스스로 착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자기들 맘에 들지 않으면 착하지 않은 거구나. 착하다는 말이 싫어졌다. 그들이 떠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잃어버렸다.
안 좋은 일이 생겨 몸이 지치고 힘든 날엔 더 과장을 한다.
더 과장해서 웃고, 더 과장해서 떠들고, 더 과장해서 텐션을 머리 위로 올린다. 마치 기분이 좋아서 몸이 붕붕 떠다니는 것 마냥 더, 더 웃는다. 그럼 사람들은 모른다. 괜찮은 줄 안다. 혼자가 되면 그제야 알게 된다. 혼자만 안다. 그 하루가 엄청 힘든 날이었음을. 그런데 왜 웃은 거지? 어이가 없어서 또 웃고 만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런 안 좋은 상황에서 어떻게 태연할 수가 있어? 아무렇지 않아?
그럼 할 말은 이것뿐이다. 그냥 별생각 없는데? 아무 생각이 없으면 돼.
스스로도 그게 괜찮은 거라 말했다. 엄청 긍정적인 것처럼 굴었다. 말하지 않아도 ‘나 긍정적이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했다. 스스로를 부정적인 말로 가스 라이팅 하지 말라고.
마법주문을 외우듯 자기 암시를 했다.
괜찮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이쯤이야 뭐.
잊어버리자. 잊어버리자. 계속 생각해봤자 힘들기만 하지.
개에게 물렸다. 턱에 깊은 상처가, 흉이 남을 거라고 한다.
그런데 걱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물어 다른 집으로 보내질 개를 걱정했다.
태연하게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날도 병원 침대에 누워 “아이고, 개한테 물렸어요? 최대한 상처 없게 봉합하려고 저희도 노력하겠지만 남는 상처는 어쩔 수가 없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의사에게 “하하, 네.”라고 답하며 크게 웃어버렸다.
이상하게 왜 안 좋은 일은 연쇄작용처럼 발생할까? 그 일이 있고 사흘 후, 주차된 외제차를 쿵하고 충돌해 버렸다. 굉장히 넓은 주차장이었다. 여기에서 차를 박았다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는 그런 공간에서 말이다. 조수석에서 놀라 우는 언니에게 태연하게 괜찮다고 말했다.
사람이 안 다친 게 어디야. 주행 중에 사고가 안 난 게 어디야. 차를 박았으니 잘못한 거 맞지. 잘못은 인정해야지. 그래도 이건 그냥 사고일 뿐이야. 크게 의미두지 않으려고. 괜찮아~ 이럴 때 사용하려고 비싼 돈 주고 보험 드는 거야. 비싼 돈 냈는데 이럴 때 써먹어야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사실 언니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상담 선생님께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웃으며 말했다. 다이내믹하다는 듯.
“괜찮아요. 별일 아니었어요.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크게 별 생각 들진 않아요.”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상담 첫날, 괜찮다고 말하는 게 싫다고 했다. 괜찮다는 말이 너무 싫다고 했던 내가 스쳐 지나갔다. 아, 순간 당황스러웠다. 웃고 있던 눈에서 갑자기 뚝뚝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다.
과거에 괜찮다고 말하며 살았고 괜찮은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그래서 통증이 왔고 그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데. 아픔이 시작되면서 괜찮다고 말했던 내가 싫었다. 괜찮다는 말도 그토록 싫었다. 그런데 모르는 새 또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정작 사고로 인해 상처가 남을 나를 걱정하지 않았고 생각조차 하려고 들지 않았다.
힘들고 안 좋은 일을 마주하면 자동으로 셔터가 닫힌다.
셔터는 학습되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닫히는 자동문이 되었다.
생각이 차단되면 스스로 올라오는 감정들도 같이 가로막혔다.
자각하지 못한 채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별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모르게… 모르는 사이, 감정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괜찮은 건 다 거짓이다. 순 거짓부렁이다. 나는 나에게 괜찮다고 거짓말했어. 그게 나를 지키는 태도였다.
그런데 말이지… 이 태도는 나를 하나도 지켜내지 못했어.
이제 안 좋은 상황에 대해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안 좋은 상황에 안 좋은 생각을 하면 더 힘드니까, 괜찮다고 말하는 건 덩그러니 남겨진 나를 놔두고 피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피하면 상처받은 감정은 꽁꽁 숨어버린다. 그때, 그 일이 벌어졌을 때, 감정이… 그 순간의 감정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괜찮다고 피해버렸기 때문에 감정은 숨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