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서 첫 시험을 볼 때, 내가 꼭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 ‘내’가 시험지를 다 풀었다고 해서 시험이 끝난 게 아닙니다. 시험 시간 동안 다른 책을 꺼내 읽거나, 다른 종이를 꺼내거나 하는 모든 행위는 부정행위입니다. 시험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책상 위에는 시험지와 필기도구만 있어야 합니다. 잠을 자는 것은 괜찮습니다.”
당연한 규칙이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은 이를 많이 어긴다. 나에게 '다 풀었어요!'라고 괜히 한 번 말을 건네는 아이도 있고, 다른 책을 꺼내 읽으려는 아이도 있다. 앞으로 있을 수도 없는 시험에서 곤란을 겪지 않으려면 지금 분명한 규칙을 알아야 한다. 봐주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고 단호하게 말한다.
“시험 중에는 말도 하면 안 되고, 다른 물건 아무 것도 꺼내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시험 문제만큼이나 문제를 다 푼 뒤 남은 시험 시간의 심심함을 견디는 것도 어려워 한다. 신기하게도 해마다 아이들 중 한 명은 꼭 이렇게 질문한다.
“선생님, 시험지 빈 곳에 그림 그려도 돼요?”
“네, 그건 괜찮습니다. 다른 종이나 책을 꺼내거나 말만 하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예술을 펼쳐나간다. 시험지 곳곳을 마치 벽화처럼 다양한 그림으로 채워 넣은 아이. 필통에 있는 모든 필기구를 꺼내어 탑을 쌓는 아이. 연필 두 자루를 각 손에 들고 전쟁을 하듯 손을 움직이는 아이. 멍하니 앞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 고대 원시의 놀이와 축제도 이런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탄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란 책에서 이런 주장을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꽃필 수 있었던 것은 노예제도 때문이다. 노예가 모든 노동을 도맡았기 때문에 귀족들은 게으름 속에서 ‘쓸모없는 지식’에 몰두할 수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사색에 잠겨 산책하는 게으름 속에서 인류의 위대한 문명은 탄생한다. 현재 인간의 대부분 노동을 로봇이 도맡아 하는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 자율주행 자동차는 인간보다 사고율이 현저히 낮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는 ‘유용한 지식’과 ‘무용한 지식’ 중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인가? 러셀은 게으름에서 나오는 ‘무용한 지식’이야 말로 우리 삶에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말한다.
뇌과학자들도 ‘깊은 심심함’이 평소 풀리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무엇인가에 몰두할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뇌의 활동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과연 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요즘 아이들은 쉴 때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도 모두 뇌를 쓰는 활동이다. 대부분 아이는 수면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아이들의 뇌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
심심함 속에서 빛나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아이들을 보며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 달에 한 시간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업을 해봐야겠다.
“애들아, 조금 심심하겠지만, 우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