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칼리뮤는 무릎을 꿇은 채 쓰러진 소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안에서 무엇인가 산산이 부서져 버렸음을 알았다.
그녀가 겨눈 것은 과연 소년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붙잡고 있던 마지막 무언가였을까.
서서히 다가오는 발소리가 폐허의 공기를 흔들었다. '철컥'하고 무거운 금속성 소리가 바로 뒤에서 울려 퍼졌고, 차갑게 뒷머리에 닿는 총구가 느껴졌다.
온갖 날것의 감정들이 난무하는 곳임에도, 어떠한 연민도, 동정도, 자비도 허락되지 않는 곳. 이제 그녀는 그곳에서, 마땅히 없었어야 했던 것을 비로소 지워버리려 했다.
스스로의 감정,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맞이해야 할 운명을 받아들이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그녀를 둘러싼 적병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 이어서 허공을 향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칼리뮤는 본능적으로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기권의 불길을 가르며, 거대한 공중항공모함이 느릿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그 장엄한 그림자가 협곡 위에 드리워졌다.
이어 어디선가 쿼드콥터들이 무리 지어 나타나, 거친 로터음을 울리며 빠르게 접근했다.
병사들은 쿼드콥터를 향해 총을 쏘며 뒷걸음질 쳤고, 몇 명은 등을 돌린 채 비행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새 다가온 쿼드콥터 하부의 레이저포대가 곧장 대지를 쓸어내렸다. 불빛이 지표를 훑고 지나가자 적병들의 형체는 순식간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비행장에서는 다급히 전투기들이 이륙했으나, 고도를 높이기도 전에 이미 대기권 상공을 선점한 아군 전투기와 드론들의 사격에 불덩이로 변해 떨어졌다.
거대한 수송기들이 굉음을 내며 칼리뮤 근처에 착륙했다. 화물칸의 문이 열리자 장갑차와 해병들이 쏟아져 나와, 일사불란하게 비행장 쪽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그 와중에 몇 명의 병사들은 곧장 칼리뮤 쪽으로 달려왔다.
칼리뮤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붉은 석양빛이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텅 빈 광휘처럼 번졌다.
현장 지휘자로 보이는 해병이 다가와 물었다.
“지원군입니다. 나머지 팀원들은 어디 있습니까?”
그 질문에, 칼리뮤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런 대답도,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저 공허하게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칼리뮤는 결국 아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녀는 아수라로 복귀하는 수송선 안에서도 무표정한 얼굴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함의 회색 복도를 걸어 들어온 그녀는 곧장 상급자 앞에 섰다.
사건에 대한 그녀의 보고는 기계적이었고, 어쩌면 차갑기까지 했다.
브리핑이 끝나자 장교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작전의 변수를 초라했던 칼리뮤에 대한 질책은 없었다. 작전의 현장 지휘권은 어디까지나 막스에게 있었고, 그들의 눈에는 팀을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그의 감정적 선택에 의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녀석은 언제나 감정적이었지. 언젠간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
한 고위 장교가 덤덤히 내뱉었다.
칼리뮤는 순간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항의 대신 침묵을 택했다.
결국, 그의 말이 옳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감정은 일을 그르친다.
결국, 감정은 고통을 가져온다.
칼리뮤는 그것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겼다.
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텅 빈 브라보팀의 휴게실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자 고요가 가라앉았다. 아무도 없는 공간, 그러나 곳곳에 여전히 팀원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키시 상사가 막내와 함께 웃음을 터뜨리던 낡은 비디오 게임기.
바히르 중위가 땀을 뻘뻘 흘리며 사용하던 손때 묻은 운동기구.
그리고 막스가 늘 뜨거운 차를 우려 마시던 묵직한 컵 하나.
모두가 떠나고 없는 자리에서, 그 흔적들만이 돌아오지 못할 주인을 기다리듯 놓여 있었다.
칼리뮤는 천천히 소파 위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떨군 그녀의 어깨가 작게 흔들렸다. 다시는 흐르지 않을 것만 같았던 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고요한 공간 속, 그녀의 눈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작은 점을 남겼다.
떠들썩함이 사라진 휴게실은 이제 버려진 것들의 무덤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적막은, 오롯이 살아남은 그녀만의 것이었다.
대규모 상륙작전의 성공 이후, 전쟁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공권을 상실한 적들의 방어선은 행성 고궤도에서 쏟아지는 폭격과 항공기의 근접 지원 앞에 허망하게 붕괴되었고, 행성 전역의 주요 시설들은 해병들에 의해 차례차례 점령되어 갔다.
궁지에 몰린 적들은 마지막 발악처럼 로켓을 쏘아 올려, 새로 개발한 폭탄을 실은 소형 우주선들로 아수라를 직접 공격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술력은 우주전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그 시도는 금세 좌절로 끝났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그들이 새로이 개발해 낸 코어리움 폭탄은 네리안 연구진들에게 또 다른 영감을 남겼다는 소식만이 뒤늦게 들려왔다.
벨시안으로 돌아온 칼리뮤는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전사한 브라보팀 전원에게도 같은 훈장이 추서 되었다.
의장대의 군악과 쏟아지는 박수, 영웅이라 불리는 칭송이 그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모든 환호 속에서, 칼리뮤는 그 어떤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가슴을 채운 것은 오직 이루 말할 수 없는 텅 빈 공허뿐이었다.
칼리뮤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나와 연결된 모든 것은, 어떻게 해서든 끊어지고 만다. 그리고, 그 끊어짐이 남기는 것은 중단 없는 고통일 뿐이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평화는 칼리뮤에게 안식이 아니라 형벌이었다.
평화 속의 군대는 여유로웠지만, 그 여유는 그녀의 상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녀는 끊임없이 상부에 임무를 요청했다. 멈추지 않으려는 듯, 단 한순간의 휴식도 용납하지 않았다. 명령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녀는 스스로 움직일 임무를 찾아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삶은 하나둘씩 지워져 갔다.
감정을 지우려 했고, 여유를 잊었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두터운 벽을 자신의 내면에 쌓아 올렸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무도 그녀와 연결되지 못하도록.
높게 쌓여 가는 벽의 존재 목적은 분명했다. 칼리뮤는 자신이 세운 벽에 그 목적을 깊게 새겨 넣었다.
‘그 누구도, 아무도… 내 안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