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터널 속 총소리가 잠잠해지자, 대신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팀원 한 명이 고개를 내밀고 사격 자세를 취하자,
탕!
순식간에 단발의 총성이 터널을 울렸다. 그의 몸이 힘없이 꺾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칼리뮤는 숨조차 뱉지 못했다. 눈앞에서, 이제 막 마음에 새겨진 이름과 얼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떨리는 손, 굳어버린 손가락. 방아쇠를 당길 힘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눈물만이 그녀의 시야를 번져갔다.
그녀의 시선이 옆으로 흘렀다.
피를 흘리며 팔을 붙잡은 채, 여전히 천공 장비를 작동시키는 동료. 철문에선 붉은 불꽃이 계속 튀고 있었다.
"바히르! 내가 시선을 끌 테니 저격수를 먼저 제거해! 반드시 처리해야 해!"
막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바히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배율 스코프를 조정했다. 동시에 막스는 숨을 고르고 섬광탄을 던졌다.
퍼엉—!
큰 소리와 함께 섬광이 번쩍이자 막스는 반대편 기둥을 향해 튀어나갔다. 다수의 총성이 울렸고 적이 쏜 총탄이 막스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바히르는 무릎 위에 소총을 올리고 멀리 보이는 총구의 섬광을 쫓았고, 칼리뮤는 전방을 향해 엄호사격을 시작했다.
총탄들이 막스의 주변을 파고들며 섬광처럼 튀었다. 총탄을 맞은 그의 어깨가 비틀리며 피가 솟았다. 그러나 그 순간, 총구의 섬광을 포착한 바히르가 방아쇠를 당겼다.
"저격수 제거!"
바히르가 크게 외치며 다시 몸을 숨겼다.
막스는 어깨를 부여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SWG는?"
"충전 완료!"
"DS(Directionality Sonic, 지향성 음향)로 발사!"
바히르가 SWG를 꺼내 조정간을 돌려 DS모드로 전환했다.
"DS!"
그의 경고와 함께 팀원들을 일제히 몸을 웅크린 채 귀를 막았다. 방아쇠를 당기자, 앞쪽 공기가 짧게 떨리며 날카로운 고음의 파동이 밀려갔다. 적들의 발걸음이 흔들렸고, 몇몇은 양손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도 제자리에 서있을 수 없었다.
"소탕해! 쏴!"
막스의 외침과 함께, 팀원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플라즈마의 붉은 섬광이 잇달아 터지며 적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적의 반격도 멈추지 않았다. 탄환이 빗발치며 기둥이 갈라지고, 파편이 얼굴을 스쳤다.
"마지막 배터리입니다!"
칼리뮤의 떨리는 외침을 들은 막스는 자신의 소총의 배터리를 확인했다. 그의 것도 바닥이 나 있었다. 그는 마지막 배터리로 교환하며 탈출구를 만들고 있는 팀원을 바라보았다.
거의 다 뚫려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타앙!
난간에서 날아온 총탄. 남은 한 명의 폭파조 몸이 경직되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피가 천공 장비 위로 흘러내렸다.
막스는 2층을 향해 사격을 하며 적을 제압했지만, 이미 숨을 멎은 팀원은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건 막스와 바히르, 그리고 칼리뮤 셋 뿐이었다.
"칼리뮤! 엄호할 테니 구멍을 마저 뚫어!"
막스의 외침을 들은 칼리뮤가 두꺼운 철문의 구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동료의 손에서 장비 컨트롤러를 빼앗아 쥐었다. 하지만 미처 눈도 감지 못한 동료의 눈을 바라보자 그녀의 손에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서! 칼리뮤!"
칼리뮤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두 손으로 작동스위치를 강하게 쥐었다. 다시 철문에서 붉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바히르는 코앞까지 다가온 적군을 쏘다가 틱틱 소리만 내며 더 이상 불을 뿜지 않는 자신의 소총을 확인했다. 완전히 방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들고 있던 소총을 버리고, 보조무기인 플라즈마 권총을 빼내든 바히르는 적들의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들은 이제 폭파조가 폭약을 설치하던 곳까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막스 소령님!"
바히르가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자 막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함께 싸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바히르는 그렇게 말하더니 권총하나만 들고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바히르!"
막스가 외쳤지만 바히르를 멈출 순 없었다.
전방을 향해 아무렇게나 권총을 쏘며 중앙으로 달려간 그는 멀리 가지 못해 적의 총탄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손을 치켜들었다. 손에는 권총이 아닌 점화장치가 쥐어져 있었다.
그가 점화장치에 있는 스위치를 꾹 누르자 양옆에 설치되어 있던 폭약이 동시에 폭발을 일으켰다. 터널이 흔들리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솟구쳤다.
"바히르!"
그 모습을 지켜본 막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지만 자욱한 연기 너머로 어떠한 움직임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자욱한 연기너머로 또 다른 발소리가 울렸고, 2층 난간의 작은 문에서도 계속해서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됐습니다, 팀장님!"
칼리뮤가 외쳤다. 그녀의 앞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기어나갈 수 있는 작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어서가, 칼리뮤! 뒤따라 갈게!"
막스가 2층 난간을 향해 사격을 하며 외쳤다. 칼리뮤는 등에 매고 있던 배낭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작은 구멍을 향해 몸을 욱여넣었다. 비좁은 통로 안에선 다리하나 움직이기도 어려웠지만 칼리뮤는 반대편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와 눈부신 빛을 향해 끊임없이 몸을 꿈틀대며 나아갔다.
마침내 두꺼운 철문 바깥으로 나온 칼리뮤가 권총을 빼들고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구멍을 들여다보며 외쳤다.
"여긴 안전합니다! 어서 나오십시오!"
하지만 좁은 통로를 타고 흘러나온 음성은, 그녀가 듣고 싶지 않았던 답이었다.
"어서 가, 칼리뮤! 내가 나가면 이들이 금방 추격할 거야! 그러니 어서 달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어서 나오세요!! 팀장님!!"
"칼리뮤.... 반드시 살아남아! 끝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 내가 하는 마지막 명령이다..."
"지랄하지 말고 제발 나와!! 나를 혼자 두지 마!!"
칼리뮤의 마지막 말은 비명과 절규에 가까웠다. 그녀는 울부짖으며 권총손잡이로 두꺼운 철문을 두드렸다.
그 순간, 작은 캔이 통로로 굴러왔다. 칙— 소리와 함께 거품이 솟아나더니, 단단히 굳어 그녀가 기어나온 작은 통로를 막았다.
철문 너머로 계속해서 총성이 들려왔다.
칼리뮤가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그리고 어린아이 같이 흐느끼며 철문을 뒤로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철문 안에서 시끄럽게 울려 퍼지던 총성은, 어느 순간 그 포효를 멈추었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달리고, 또 달렸다.
칼리뮤는 숨이 차올라 폐가 타들어가는 듯했지만, 약속했던 철수지점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그 순간, 시야 끝에 작게 흔들리며 다가오는 형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바위틈에 몸을 웅크리며 허리춤의 권총을 움켜쥐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 잔해 위를 뛰어오르는 가벼운 호흡.
그리고 나타난 것은, 소년이었다.
칼리뮤는 바위틈에서 몸을 드러내 그 길을 막아섰다.
소년은 마치 번개를 맞은 듯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며, 몸이 굳어버렸다.
“너는…?”
칼리뮤의 목소리는 숨죽인 바람처럼 떨리며 흘러나왔다.
소년은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에 든 소총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하지만 총구는 끝내 그녀를 향해 겨눠지지 못했다.
그의 기억 속에 자신을 살려주고 감히 변호해 주던 단 한 사람, 그 모습이 겹쳐지자, 소년의 손이 떨렸고, 총구가 서서히 힘없이 내려갔다.
칼리뮤는 물끄러미 그가 들고 있는 소총과 얼굴과 옷에 흩뿌려진 피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너…였구나…?”
그녀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뺨을 타고 차갑게 식어갔다.
소년은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녀의 얼굴에 서린 감정을 느낀 듯,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모두 다 죽었어…”
칼리뮤의 어깨가 들썩였다.
낮게 흘러나온 울음은 절규도, 통곡도 아니었으나 오히려 그보다 더 깊은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소년은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도 손을 뻗으며 칼리뮤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칼리뮤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내 소년의 머리에 겨누었다.
그리고,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석양빛이 피와 함께 흩어졌다.
소년의 몸이 휘청이며 땅에 쓰러졌다.
칼리뮤는 주저앉듯 무릎을 꿇었다.
뜨겁게 끓어오르던 눈물은 이내 흐르지 않았다.
울음도 멈췄다.
오히려 넋이 나간 듯,
아니 이미 죽어버린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깊은 무표정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냐… 나 때문이야…”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흘러나온 속삭임.
“내가 모두를 죽게 만들었어…”
그녀의 손에서 권총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차갑고 쓸쓸한 금속음이 폐허의 협곡에 울렸다.
그 뒤로, 적의 병사들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붉게 물든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내 감정이… 모두를 떠나가게 만들었어…”
그 속삭임은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무심하고 공허했다.
석양이 그녀의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