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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port ship

# 44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Girl's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섣부른 말이, 무심결에 내 입술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 말은 아마 노라를 곤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대답을 회피하는 그의 태도가 그것에 대한 증명이었다.
하지만... 분명 내가 한 말속에는, 어느 때보다 분명한 나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네리안과 인간, 나의 임무, 그의 꿈. 그 모든 것들이 우리가 끝내 함께할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그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그가 안전하길 바랬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그의 곁에 함께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의식하자 괜스레 얼굴이 달아올랐다.

화물 뒤에 몸을 웅크린 채, 나는 힐끗 노라를 바라보았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주위를 매섭게 훑는 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는 것은 나뿐인 듯 보였다.




그 순간, 철제 바닥을 울리는 발걸음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집게 팔을 단 운반 로봇, 그리고 차트를 들고 다가오는 인간 직원 한 명. 로봇의 바퀴소리와 태블릿을 두드리는 소리가 적하장의 넓은 공간에 조용히 울렸다.
노라는 곧바로 손짓했고, 나는 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채 그를 따라 드론 적재함을 돌아 커다란 컨테이너 뒤로 몸을 숨겼다.

“이것도 방금 도착한 수송선에 싣는 거야?”
가까이 다가와 화물과 차트를 번갈아 확인하던 직원이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멀리서 다른 직원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냐. 그중 일부만 적재할 거야. 차트에 표시된 화물만 확인하면 돼.”
길게 울려 돌아오는 목소리에, 노라와 나는 본능적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이 말하는 수송선, 우리가 올라타야만 하는 수송선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넓디넓은 적하장을 둘러봐도 접선하기로 한 저항 세력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로봇과 직원들만이 기계음을 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 무심한 일상 소음이 오히려 불길한 침묵처럼 느껴졌다.

“혹시 따로 메시지를 남긴 건 없었나요?”
나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물었다. 노라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잠시 고민하던 노라가 손목을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소피, 수송선이 언제 도착했고, 출발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어?”

“응. 운항 시간표만 확인하면 돼. 혹시 모르니까 다른 데이터도 같이 찾아볼게.”
소피가 볼륨을 한껏 낮춘 채 말했다.

짧은 정적 후,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송선은 오르비트 표준시 08시에 2번 격납고에 정박했어. 그리고 앞으로 2시간 뒤 출발할 예정이야.”

노라가 낮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시간이 있구나.”

하지만 소피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어, 노라.”
“뭔데?”
“이 수송선, 일반 운항사에서 쓰는 기종이 아니야. 내가 가진 데이터에 따르면, 이건 GU 정부군이 사용하는 군용 수송선이야.”

공기가 순간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노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군용 수송선이라고? 그런 얘긴 들은 적 없는데…?”

“그뿐만이 아니야.”
소피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이 수송선의 목적지가… 루나 포트로 되어 있어.”




'루나 포트'

네리안인 나도 그곳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있다. 여기, W-81 항성계로 오기 전 임무 브리핑 때에 들었던 정보에 의하면, 그곳은 인간들이 건설한 최대의 군사기지이자 연구시설이었다.
그들이 달이라 부르는 위성 표면을 뒤덮은 그 기지에 대한 설명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매우 위험하니 접근하지 말 것.'

그곳의 거대한 조선소에선 매일같이 새로운 함선들이 건조되고 있었고, 그들이 연구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에 관해선 우리조차 알고 있는 바가 많지 않았다.




"이건... 뭔가 착오가 생긴 것이 분명해요. 혹시 다른 수송선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노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소피가 대신했다.
"아니요, 칼리뮤. 오늘 오르비트에 운항 예정인 함선은 이 수송선이 다예요."

그때 격납고와 연결된 거대한 철문이 묵직한 기계음을 내며 열리자, 강철 부츠의 발걸음이 메아리치며 적하장으로 울려 퍼졌다.
어깨에 무거운 장비를 멘 군인들이 줄지어 들어왔고, 그들의 검은색 전투복에는 GU의 문장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뒤를 따라 회색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뒤따라 들어왔다.

노라와 나는 숨을 죽인 채 화물 더미 뒤에 웅크려 그들을 지켜보았다.

“뭡니까...? 여긴 저희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문 바로 앞에 서있던 직원이 군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은 적하장 한쪽에 세워져 있는 로봇으로 다가가 자신들이 가져온 단말기를 연결하는 듯했다.
그리고 직원 앞에는 땅딸막한 회색 제복을 입은 남성이 멈춰 섰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말했다.
"이곳 오르비트에서 반군의 주요 인사들이 출현했다는 군. 아무래도 당신들의 출입관리가 허술하니, 쥐새끼들이 숨어들은 거겠지?"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직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적하장 안에 있는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서서히 그들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며 웅성거렸다.

"내 말이 어려웠나?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오늘부터 오르비트 자치구의 모든 권한을 GU 정부군에서 인계받는다. 그 말인즉슨... 당신들도 이제 그만 퇴근해 봐도 좋단 얘기야."

제복을 입은 남성의 말이 끝나자 직원들의 웅성거림을 더욱 커져갔다. 그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납득이 되게 설명해 주셔야죠!"

제복 입은 남성이 몸을 돌려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지지직 소리가 날 정도로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더니 그의 얼굴에 짙은 연기를 뿜어냈다.
"설명이라..."

한순간 그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여 그의 허리춤에 꽂혀 있던 권총을 직원의 턱에 갖다 댔다. 그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이러면 좀 이해가 되시려나?"

"그만둬, 아들러!"
그때 그의 뒤에서 제복을 입은 또 다른 사내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검은 피부를 갖고 있는 그는 다른 사람들의 거의 두 배는 될 만큼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었고, 제복을 입었음에도 그가 얼마나 단단한 몸을 가졌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들러는 그의 검고 커다란 손이 내려가자, 기분 나쁜 듯 자신의 어깨를 툭툭 털어내곤 인상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
"네... 디에 소령님..."

아들러가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하자, 디에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GU 중앙 정부의 결정으로 이곳 오르비트의 자치권은 잠시 보류되었습니다. 안보유지를 위한 일시적인 결정이니 여러분들은 지게로봇과 각종 설비의 권한을 우리에게 인계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마침 어젯밤에 이곳에서 일부 폭동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지만,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해 우리 GU 정부군이 그 소요사태에 대한 처리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항상 GU는 여러분의 안전과 질서 유지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아무쪼록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그의 말이 끝나고, 나는 노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의 긴장된 눈빛을 읽어낼 수 있었다.

노라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낮게 속삭였다.
“상황이 좋지 않아요... 지금은 일단… 다시 빈민가로 돌아가야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화물 더미 너머에서 스친 시선을 느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땐, 그곳엔 케이블과 컨테이너밖에 없었다.
잘못 본 걸까?

숨을 삼키며, 우리는 화물 더미 사이를 헤치고 조심스럽게 화물 드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적하장을 가득 채운 기계음과 군인들의 목소리가 뒤엉켜 있었지만, 우리의 심장 박동 소리가 그 모든 소음을 압도하는 듯했다.

드론이 보이는 곳까지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모퉁이를 돌자, 검은 전투복의 병사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순간 내 심장이 얼어붙었다. 본능적으로 허리춤으로 손이 움직였고, 권총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노라!”
나는 그를 밀쳐내듯 끌어당기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병사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총을 뽑는 줄 알았지만, 그의 손끝은 입술 앞에 멈췄다.

“쉿—.”

낮게 울리는 목소리. 그러나 긴장감에 휩싸인 내 손가락은 여전히 방아쇠 위에 걸쳐져 있었다.

천천히, 그는 복면을 벗어 내렸다.
어둠 속에서 드러난 낯선 얼굴.

“진정하세요. 전… GU 정부군이 아닙니다.”
그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지구의 자녀 소속입니다. 당신들과 접선하기 위해 왔어요.”

하지만 그의 이마를 겨누고 있는 내 총구를 내릴 수 없었다.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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