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제가 책벌레 ㅇㅇㅇ이에요!”
광화문 교보문고 계산대의 캐셔에게 아이는 작지만 당당한 목소리로 밝혔다. 바코드를 스캔하던 직원이 고개를 들어 아이를 바라보았다.
“고객님이 책벌레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제가 그 책벌레 맞아요.”
나는 눈을 찡긋하며 캐셔에게 웃음을 지었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에 깜짝 놀랐다. 계산대 앞에서 당당히 자신이 책벌레라고, 당신이 늘 책을 보내줬던 바로 그 책벌레라고 밝힌 것이다. 사실 계산 담당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지만 아이에겐 눈앞의 그분이 바로 책을 보내주신 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가 자랑스럽게 내뱉은 그 말이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의미 있는 장면 중 하나였다. 책을 향한 아이의 자부심, 스스로를 ‘책벌레’라고 명명할 수 있는 그 순수하고 담대한 태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님들께, 내가 겪은 작은 팁 하나를 나누고 싶다. 책을 주문하신다면 반드시 받는 이를 자녀의 이름으로 주문해 보라.
늘 내 이름으로 책을 주문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자신의 이름으로 택배를 받으면, 정말 좋아하지 않을까?’ 예상은 적중했다. “받는 사람이… 책벌레 ㅇㅇㅇ님이래!” 마치 자신이 진짜로 책벌레라는 정체성을 인정받은 듯한, 수줍고 감격이 어린 표정이다. 자기 이름이 적힌 택배 상자를 받은 아이는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었다.
아이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온 택배’는 마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선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교보문고의 누군가가,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걸 보내줬다고 믿는 듯했다. 그날 이후, 나는 책을 주문할 때마다 택배 수령자 이름을 ‘책벌레 ㅇㅇㅇ님’으로 적기 시작했다. 그러니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있었던 ‘책벌레 사건’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약간의 극적인 연출이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책일수록 극적 연출은 필수다.
“엄마, 오늘은 책 언제 와요?”
“글쎄, 곧 도착하지 않을까?”
기다림 끝에 마침내 문 앞에 도착한 택배 상자.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날 상자 안에는 <논어>가 들어 있었다. 상자를 뜯어본 아이는 한동안 책을 응시했다.
“엄마, 나도 이제 <논어> 읽는 거예요?”
“그럼. 교보문고에서도 이제 너를 진짜 책벌레라고 인정했나 봐.”
“<논어>는 아무나 못 읽는 책이잖아요. 나 진짜 책벌레 맞나 보다!”
아이는 책을 꼭 끌어안았다.
나는 직감했다. 그 고전 한 권이 아이의 세계를 넓히는 첫걸음이 될 것임을. 무엇보다 그것은 단순한 책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받은 책’이라는 상징은 아이의 내면 어딘가에 깊이 새겨져, 자기 긍정과 자기 존중감으로 성장했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야. 책벌레라고 불릴 만큼 책과 가까운 아이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고,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탐험하고 싶어 한다. 우리 아이가 그 여정을 책과 함께 시작한 것, 그리고 그 길을 ‘책벌레’라는 이름표로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