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서로 비켜 가는 날에는, 무성하던 세상의 것들이 힘을 잃고 잠시 물러서 있다. 솔바람 소리가 제법 깊어졌고 새들의 소리도 멀다. 인기척에 놀란 풀벌레들은 목소리를 낮추고 잎사귀 뒤로 숨는다.
밀물과 썰물이 흐름을 맞바꾸는 순간처럼 잠시 세상이 고요해지면, 내 안의 무성하던 잡념이 비처럼 쏟아진다. 몸의 구멍을 통해 누수되는 번잡한 생각들은 제각기 뿜어져 나온다. 귀를 타고 흘러나오는 어지러운 말들, 눈을 통해 빠져나오는 불온한 장면들은, 마침내 범람한다. 잡생각을 씻어야 살 수 있듯, 사람은 결국 숨을 쉬고 내뱉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온다. 흙을 떠나 살 수 없는 소나무처럼, 절집에 흔들리는 풍경 속의 물고기처럼 그렇게 제 안식처를 찾는다.
절집으로 가는 길의 가장자리에, 선홍 볏을 단 한 뼘 맨드라미가 있었다.
맨드라미의 붉은색은 발아되기 전 씨앗 때부터, 신에게 약속받은 것이었다. 자줏빛 잎을 총총히 물어 올린 그 끝에, 마침내 약속대로 불보다 뜨거운 꽃이 피었다.
어머니는 맨드라미를 좋아하셨다. 까만 구슬 씨앗을 흩뿌려 놓으면 때에 맞춰 싹이 나고, 마침내 꽃을 머금어 올린다. 단단하고 구부러진 파마머리를 한 꽃은, 여름부터 늦은 가을까지 장독대와 마당가에 소복하게 피어있을 것이다. 정지에서 불을 때서 밥을 할 때 눈물이 나면, 솔가지 연기에 매운 탓이라고, 멀리 맨드라미를 보며 말했다. 덧없는 사랑 때문이 아니라고, 가버린 미움 때문이 아니라고, 고운 빛깔을 보며 웃었다. 마당가에서 놀던 나는 맨드라미에게 말을 걸고, 키가 훌쩍 커버린 꽃들은 그저 흔들릴 뿐이었다.
농사가 주업인 시골에서 맨드라미는 쓰잘데 없는 꽃이다. 아욱처럼 먹을 수 없고 잎을 달여 약으로 쓰지 않는다. 수확이 없는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농사일에 고된 엄마는 한사코 심고 또 심었다. 비가 내리는 날은 한 무더기 어린 모종을 뽑아 이곳저곳에 넘치도록 심었다.
어머니의 가난이나 아픔은 가득한 꽃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다. 호박을 썰어 부침을 만들어 줄 때도, 밀가루를 떼어 수제비를 뜰 때도, 눈길은 저만치 타오르는 꽃에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바다가 보이는 섬의 사람처럼, 아무 데를 바라봐도 검붉은, 꽃들의 바다에 사셨던 것이다. 그곳에서 무를 심고, 꽃을 보고, 아이를 키우며, 하루치만큼의 삶을 이어서 살았다. 맨드라미는 참으로 쓰잘 데가 있는 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남자에게도 평생을 애닯게 한 맨드라미가 있었다. 박동신 화가의 맨드라미 그림을 좋아한다. 왜소증을 앓는 그가 그린 맨드라미에는, 나의 그리움과 결이 닮은 어머니의 꽃이 있다.
그는 해석된 세계를 그리지 않았고, 고향 마을 어머니의 뜰에 핀 꽃을 그렸다. 그는 30년 넘게 맨드라미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그의 맨드라미를 보고 나면 촌스러운 시골의 꽃이, 벨벳을 두른 왕후의 꽃만큼 우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부드러운 옷감으로 옷을 지어, 어머니께 드리는 마음으로 붓질을 했을 것이다.
그림의 가장자리가 은은하게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꽃보다 예쁜 딸을 두고 귀천하였다. 그는 딸에게 맨드라미를 아버지의 꽃으로 기억하게 하는 역사를 이루었다. 이제 그의 꽃밭에 가기 힘들어졌다.
자연이란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저절로 그리 존재하고 이루어진 것이다. 어머니의 몸을 빌어 세상에 왔다면, 내게는 분명 꽃을 대하는 그분의 정서가 씨알처럼 박혀있을 것이다. 이 상서로운 일은, 내가 어머니의 딸임을 보여주는 부인할 수 없는 흔적이다. 지금쯤 불꽃처럼 번진 꽃을 보며 주름뿐인 어머니는 활짝 웃고 계시겠지.
*사진은 박동신 작가님의 맨드라미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