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by 이채이

새벽녘, 나는 새소리에 잠에서 깬다. 새들은 지구의 자전을 가장 먼저 알아챈다. 그들은 온몸으로 날갯짓하며 어둠을 깨우고, 울음으로 새날을 연다. 잠결에도 나는 미소 지었다. 도시의 숲,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에서 제 흥에 겨워 지저귀는 새들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침대맡의 작은 메모지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공짜, 공것, 새의 울음소리, 바람이 부는 일, 까마귀 한 음절 반복, 꽈~×7, 꽈 ×6 음정"

아마 새벽의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잠이 덜 깬 내가 종이에 휘갈긴 것이리라.

창으로 다가가다 그 메모를 다시 보았을 때, 잊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날 들려온 새들의 소리는 단순하지 않았다.


새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고 서로 다른 서너 종이 번갈아 가며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명확히 알아들을 수 있는 까닭은 개개 종의 소리 내는 방식과 음역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거실 창에서 보면 건너다 보이는 아파트의 꼭대기에 까마귀 두 마리가 앉아 있는데, 바싹 붙어서 부리를 쓰다듬는 것이 필시 부부새 같아 보인다. 왼쪽의 까마귀가 오른쪽 편의 까마귀에게 비빈다. 오른쪽의 것이 젊잖다. 가까이 붙어 있는 새들은 부러 울대를 울려 높고 긴소리를 뽑지 않는다. 연인들이 그러하듯 조용조용 속삭이거나 말이 필요 없이 다정하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까마귀들끼리는 단음절의 반복으로 대화한다. 종성이 분명치 않은 소리다. 초성과 중성을 그러모아 '꽈~'하고 운다. 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일정한 리듬으로 울린다. 멀리 있는 친족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음을 반복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7음절, 6음절, 3음절 제각각으로 주고받는다.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보면 짧은 음절을 모아 리듬적 신호를 주고받는 일종의 모스부호 같다. 이쪽의 새가 '꽈 꽈 꽈~ 꽈 꽈 꽈 꽈~'하고 송신하면, 한 참 후에 '꽈~ 꽈 꽈 꽈 꽈~ㄱ'으로 화답한다.


약하기는 하지만 ㄱ종성을 콕 찍어 소리 내는 새는 끝맺음이 확실한 다부진 녀석이 틀림없다. 흐지부지한 모음으로 답신하는 것은 마침표가 없는 문장처럼 싱겁다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새들의 대화를 들으며 문득 일본어를 떠올렸다. 일본어는 종성이 희박해 말끝이 떠 있는 느낌을 준다. 의미가 장음의 길이와 억양에 실리기에, 부유하는 언어처럼 들리곤 했다. 까마귀의 울음은 타국의 언어를 닮았다. 짧고 반복적인 단음, 길이와 톤의 조절로 그 안에서 의미가 정리되고 박혀있었다.


이들의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들으며 내가 잠에서 깰 때쯤이면, 새들의 명상은 이미 이른 새벽녘에 끝났다. 고요히 앉아 아침을 받아들일 때, 동트는 날의 옅은 광선이 닿기 전, 콘크리트 건물 꼭대기에서 새의 명상은 끝났다. 이어 부드럽게 퍼지고 이어지는 침묵은 날갯짓으로 퍼덕여 공기를 진동시키기에 적합하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전선에 앉은 새는 숲을 향해 낮은 '도' 음정으로 짧게 운다. '꽈~ 꽈'.


까치의 소리는 까마귀와는 달랐다. 까치의 소리는 음정이 높고 길게 찌르는 테너의 바이브레이션 같은 구석이 있다면, 까마귀의 소리는 낮고 젊잖으며 바리톤의 스타카토 같다. 그들의 소리는 암수를 가르지 않고 같았다.

작은 새들의 소리는 더 가늘고 여리다.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수풀 속에서 지저귈 뿐이지만 대개는 여러 마리가 같이 지절거린다. 활강하다 상승하듯 굽이치는 음색으로 공간을 메우는 새도 있다. 그들의 소리는 다급하지 않고 유쾌하다. 그들의 아우성은 묘하게 위안이 된다.


내가 잠에서 깨는 찰나에 들었던 생각은 메모지에 적힌 대로다. ‘공짜, 공것, 바람, 울음소리…’ 그건 깨달음이었다.

세상엔 공짜가 많구나. 새들의 소리도 바람도, 창을 통해 흘러든 모든 것이 나에게는 공이구나. 그렇게 나는 지금껏 많은 것들을 아무 대가 없이 받아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날은 행복감이 오래간다.


새의 울음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정간보에조차 그 소리를 기록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새의 소리는 구조화되고 언어화시켜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악기라야 제 몸을 울려서 소리 내는, 그 노래를 흉내 낼 수 있겠는가. 그 어떤 음향 장치로 울고 웃는 그들의 애환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새는 흉내 내기를 거부한다. 새는 오로지 자연으로 존재하면서 초연하게 날갯짓하여 제 갈 길을 간다. 전지적 작가가 될 수 없는 나는 그들의 세계에 개입할 수 없다. 그저 귀 기울이고 감탄할 뿐 더 이상의 서사를 얹을 수는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눈이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