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조리원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아내는 제왕절개 이후 자궁 수축제(?)를 맞고 입원실에서 조리원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불편함을 갖고 있었고, 나는 그런 아내의 옆에서 주말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당시 조리원은 코로나로 인해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또는 자가키트 음성을 보여주고 나서) 입실이 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아내의 옆에 콕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틈틈이 아내는 마사지를 받으러 다녔고, 유축도 하면서 바빴고, 그 와중에 나는 튼튼이를 데리고 오고 데리고 가는 역할만을 하면 되어서 한량 아닌 한량의 역할을 도맡아 하는 중이었다.
조리원에서 있으면서 할 일은
1) 수유 콜 받기
아이가 배고프다고 하면 조리원 간호사분들께서 전화로 수유를 하실 건지 물어보시고, 보통 신생아는 2시간 간격으로 분유나 모유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꽤나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었다.
2) 유축하여 냉장고 넣어두기
수유를 하는 산모들도 있지만 밤에는 보통 회복을 위해 유축한 모유로 수유를 해주신다. 그래서 유축기로 유축을 한 뒤 냉장고에 넣어두어 간호사 분들이 먹여주실 수 있도록 한다. 유축 역시도 산모가 해야 되는 일 중 하나면서 유축이 아프기도 해서 아내는 힘들어했었다.
3) 몸 회복하기
출산을 마친 산모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정상적인 몸으로 돌아오기 위한 회복인데, 보통 조리원에선 영양가 높은 식사와 함께 모유가 나오게 하기 위한 가슴 마사지나 부기를 빼는 마사지를 해준다. 아내는 꽤나 이 부분에 대해 만족스러워했다. 다만 음식들은 너무 기름지거나 맵고 짜지 않게 먹는 것이 아이에겐 좋다고 한다.
4) 아이를 케어하는 방법 익히기
처음 출산을 하는 산모들은 배냇저고리, 속싸개 싸는 방법, 기저귀를 가는 방법, 목욕을 시키는 방법, 아이가 응가를 했을 때 치우는 방법 등 알아야 할 것들이 매우 많다. 이는 둘째/셋째를 낳는 산모들도 있어 조리원에서 처음인지 알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간호사 분들에게 요청을 하면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그러던 중 방 밖을 나갔다 온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다른 집 남편들은 오면서 족발이나 배달 음식 들고 오던데?"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 먹고 싶으면 배달로 시켜서 같이 먹자고 했다.
그때 아내가 고른 것은 의외의 음식이었다.
"전기구이 통닭. 그 왜 트럭에서 돌아가면서 구워주는 전기구이 통닭 있잖아."
평소에도 소박한 씀씀이로 꼼꼼하던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저렴하지만 쉽게 찾기는 힘든 음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근처에 있는 이마트에서 BBQ 삼겹살이나 통구이 닭을 사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게 싫다고 했고, 네이버 지도에서 전기구이 통닭 파는 집을 찾지 못했던 나는 "음.. 배달 쿠폰 지난번에 준 게 있으니 그걸로 한 번 사봐."라고 하고는 다시 보고 있던 뉴스에 집중했다.
아내의 불만은 여기서 터졌다.
"너는 출산하고 나면 얼마나 힘들고 아픈데, 이렇게 나를 대해? 이런 거는 평생 가는 거야."
라고 했고, 그제야 나는 아내에게 온 마음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냥 회사 일로 내가 피곤해서. 내가 좀 쉬고 싶은 마음에 대충 한 대답은 아내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과 늘 함께 있는다고, 자주 연락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아내의 숨은 의도를 읽을 수 있고, 원만한 관계가 되는 길이 아닐까.
그러는 지금도 아내에게 너는 바뀌는 게 없다고 구박을 받고는 있지만.. T가 아닌 F인 나로서는 여전히 신경 쓰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난 남중 남고 군대 공대 나와서 눈치가 없는 거지.. 절대 감정이 메마른 사람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