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의 봄, 도서관

10년을 버티게 한 그곳

by 에스더


이쯤 되면

'이 엄마의 오기다'라고 말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10년을

도서관이라는 곳에서 살았다.


쉽게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미디어와 체험들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


나란 애미는

심심하고

아무 자극이 없는 그 공간에

아이를 놓아두었다.


사방이 책밖에 없는 그 공간에서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읽어달라고 가져다 나르는

책을 강제 독서하였다.


낮잠 이불과 시장바구니로

유모차가 자꾸 자빠졌어도

편안한 집이 아닌

주민센터에 딸려 있는 그 곳,

동네 도서관으로 매일같이 향했다.


'또 도서관?'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너를 책 읽게 하기 위한 것이야'라는

어미의 흑심이 들키지지 않게 하기 위해

도서관을 가야 하는 이유를

독창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수고는 덤으로 얹어졌다.


'엄마가 예약한 책을 찾아야 해서'

'너무 덥다. 에어컨만 쐬고 나오자'

'오늘까지 이 책을 반납 해야 해서'

'비 그칠 때까지만 잠깐 있자'

'목이 말라. 물만 마시고 나오자'

'사서 선생님께 드릴 게 있어서‘

.

.

심지어

물건을 일부러 도서관에 빠뜨리고

다음날 찾으러 가야 한다는

핑계를 만들기까지하며


참 고집스럽게도

종이 냄새가 가득한 그곳에

내 아이가 있길 원했다.


장바구니에,

유모차에,

자전거에,

배낭에,


가족 네 사람이 빌릴 수 있는 양의

하드커버의 그림책들을 20권쯤 모아놓으면

큰애 하나 무게의 책 보따리를


이고,

지고,

끌고,


언덕에 위치한 우리 집까지 실어 날랐다.


그 책 보따리를

반납기한안에 갖다주기 위해

또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종이가 닳도록 읽어주었던지.


그렇게 10번의 봄을 보냈다.


초등5학년, 2학년이 된 지금,

그 동네도서관을 지날 때면 먼저 말을 한다.


"엄마,

저기서 쉬었다 가자, 도서관에."


그럼 난

"그럴까?

안 그래도 목이 말랐는데" 하며


자연스럽게

가득 벅차게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 가정에

생활비가 넉넉했다면

공짜 도서관이 아닌

학원으로 아이를 보냈을까?


10년을 돌이켜보며,


도서관을 매일 찾았고,

낭독이라는 노동을 포기하기 않으며,

아이의 학습을 엄마표로 도맡아 돌보았다.

화나고, 울고 찢고, 하루를 후회하면서도

다음날 다시 시작하며 살았는데


그 마음이

돈이 있다고

바뀔 선택이었을까?


바뀌기에는

내가 아이와 도서관에서 살아온

삶의 세월이 깊었다.


너무 일찍 경쟁에 줄을 세워

패배감을 경험하게할 이유가 뭐있나.

그보다 중요한건, 본인의 우주를 가지고

세상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그저 그 작은 아이에게

본인의 우주를 만들라고

책과 시간만을 내주려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걸어왔고,

다른길을 기웃거렸지만 돌아왔다.

그래도 이게 맞다고 늘 생각이 들었기에

그저 이 어미의 이길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아이의 눈에, 귀에

문장이 쌓이고

이해하지 못하던 문단은

언젠간 연결될 것이라고 믿으며.


더 아이를 끌어안고

더 오래 책을 읽어 줄 뿐이었다.




그런 나도

책육아를 했던 엄마들이

영어, 수학, 논술 학원으로

아이의 발길을 돌리는 것을 볼 때면

소외되고, 불안감에 흔들릴 때도 있었다.


"여전히 이 길이 맞을까?"

"내가 너무 외롭게 버티고 있는 걸까?"


그 권태로움이 지쳐

이렇다 할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 내 아이를 붙들고

모질게 다그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생각해본다.

레벨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아이보다

스스로 경시대회에 나가보고 싶다고 하는 아이이길


배경 지식을 암기하기보다

삶의 지혜와 통찰을 쌓아가는 아이이길


바라지 않았었나?



도서관을 가는 건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느리고 뜨거운 사랑이다.


언젠간 자라날

씨앗을 심는 것이고,

머지않아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꽃을 피울것이라고 믿는다.




<소설처럼_다니엘 페낙>

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도 같다.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호기심을 우격다짐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일깨워주어야 한다.


읽고 또 읽어주면서,

아이들의 눈이 열리고

아이들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차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머지않아 곧

의문이 생겨나고,

그 의문이 또 다른 의문을

불러오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한다.


책과 가까워지면

그때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책에서 작가로,

작가에서 작가가 살았던 시대로,

이야기가 지니는 다양한 의미들로

조금씩 다가갈 것이다.



오늘도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준다. 동네도서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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