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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봉투의 꿈-손흥민 아빠가 되고 싶은 과학맨

이토록 힘들고 사랑스러운

by 그래그래씨


손흥민 아빠가 되고 싶은 과학맨


30년 전, 축구 선수를 꿈꾸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지금은 야간 축구 동호회에서

월요일마다 5분 전력질주 후

천천히 걷다가 돌아옵니다.


본인의 발재간을 쏙 빼닮은 아들더러

손흥민처럼 될 거라며,

엄마인 저더러 잘 지켜보라고 합니다.


지금은 손흥민이 될 그 아이는

토요일마다 축구 클럽에 갑니다.


매주 아빠는

냉장고에서 과일을 고르고

곱게 포장해

선생님께 드리라고 아이에게 줍니다.


그 손에 들린 과일 봉투엔

사라지지 않은 꿈과

본인도 손흥민 아빠가 되고픈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30년 전, 그 남자는 과학자도

한때 꿈꾸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과학잡지를 애독하는

자칭 ‘과학맨’입니다.


본인의 두상을 쏙 빼닮은 또 다른 아들에게는

국영수로는 세상을 못 바꾼다며

과학을 공부하라고,

일억육천칠백삼만오천이십 번쯤 얘기했습니다.


그 정도면 귀에 피가 났을 텐데 멀쩡한 이 아이,

아무래도 귀가 고장난 것 같은 이 아이는

토요일마다 과학영재 수업을 갑니다.


아이가 프로젝트 과제를 들고 오면

아빠가 더 열심히, 더 신이 나서

자판을 두드립니다.


과제를 대신하는 아빠와

옆에서 과제로부터 해방된 아이는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이상한 평화를 유지합니다.


그 자판을 두드리는 손엔

아들의 미래는커녕,

본인의 과학혼과

경시대회 입상 욕망이

한가득 실려 있습니다.


오늘도,

아빠는 아빠대로 우주를 정복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안드로메다행입니다.


엄마는 조용히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습니다.


드디어—

자유입니다!!!!



사라진 줄 알았던 꿈들은
자녀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살아납니다.

과일봉투 속에,
과학 과제 속에,
누구보다 뜨거운 열망이 조용히 포장되어 건네집니다.

아빠도, 아이도,
각자의 우주에서 분투 중이고,
저는…
그 우주 밖에서 조용히 숨을 고릅니다.

우리 가족의 소행성 충돌 일지,
가끔은 대충돌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오늘은 잠시 웃으며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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