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네덜란드 아이들의 생일파티

루이의 생일 주간

by 명희진

한국에 다녀와 짐을 풀기도 전에 우린 루이의 생일로 어느 때보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이 생일에 뭐 그리 바쁠까 싶지만, 네덜란드에서 아이 생일은 일종의 환갑과 같다. 이건 순전히 내 비유다. 사실 요새 한국에서 환갑이 아무것도 아닌 걸 생각해 보면, 네덜란드에서 아이들 생일은 그 보다 시끌벅적 요란하다.


"이건 거의 탄생일이라니까."


내 농담에 대부분 엄마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어쩌면 그들도 그런 탄생일의 경험이 있다는 의미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내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내게 생일은 내가 세상에 나온 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파엘이 자기 생일에 요란을 떨면 그게 그렇게 꼴 보기 싫었다. 어쨌든, 지금 나는 8살 아들을 둔 엄마의 입장에서 이 글을 써야 하니까.... 각설하고.


일단, 네덜란드에는 trectatie(트랙타찌)라는 게 있다. 생일인 사람이 주변 사람에게 한 턱 쏘는 개념으로 주로 케이크나 간식을 생일인 사람이 가져와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 나눠준다. 라파엘도 생일에는 회사 사람들과 나눠 먹을 초콜릿이나 케이크를 준비해 간다.


아이들의 경우 컵케이크나 젤리, 레이 감자칩 같은 걸 준비해 반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그날은 생일인 아이의 날이라 삼십 분 일찍 종례를 시작한다. 생일인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높은 의자에 앉아 준비한 선물을 함께 돌릴 헬퍼 두 명을 고른다. 두 명의 헬퍼는 생일인 아이의 양 옆에 앉아 행사 진행(?)을 돕는다.

유프(선생)가 생일인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게임을 고르게 하고 남은 시간 동안 아이들은 게임을 함께 하며 파티 분위기를 낸다. 주인공인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묻고 답하는 시간이 이어지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준비한 선물을 나눠주면 그날 행사는 끝난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엄마인 나는 뒤에 의자에 앉아 비디오를 찍는다.


루이가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컵케이크를 열심히 만들었다. 루이가 기뻐하는 게 보기 좋아, 내가 더 열심이었던 것 같다. 또 당시에는 베이킹을 할 시간이 있었다.

작년부터 고령의 엄마는 기운이 달려 돈으로 살 수 있는 걸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루이 생일이 여름이다 보니 작년에는 아이스크림을 돌렸다. 신세계를 접한 기분이었다. 이토록 간단하고 깔끔할 수 있다니....


루이스 트랙따찌 25.jpg


이번에도 어김없이 루이 생일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한국 과자를 나눠주기로 했다. 초코파이와 말랑카우, 하리보 젤리, 풍선을 넣어 25개를 준비했다. 선생님들께는 초코파이 한 상자와 한국에서 가져온 차를 줬다. 이제 루이가 제법 커서 함께 포장할 수 있어, 수월하게 트랙타찌 포장을 끝냈다.


루이는 네덜란드 학교와 한글학교, 유도, 주짓수 총 네 번의 트랙타찌를 해야 했다.


이걸로 생일이 끝났다면 왜 생일 주간이라고 하겠나.

이제 본격적인 생일이 남았다. 일단 생일 당일에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생일파티다. 우린 주변엔 친인척이 없으니 초대할 가족이 없기도 해서 이번에는 외식을 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루이가 먹고 싶은 걸 먹는 날이었다.


점심에 초밥을, 저녁에는 한국 치킨을 먹었다. 이번 생일에는 미역국도 케이크도 없었다. 루이는 케이크를 많이 좋아하지 않아서 이건 별로 서운하지 않았는데, 미역국을 좋아하는 루이에게 그것도 생일날 미역국을 못 끓여준 건 조금 아쉬웠다.




다음은 진짜 파티가 기다리고 있다. 가까운 친구 몇 명을 초대해 실내 놀이터를 가거나 미니골프, 텀블링파크 같은 곳에 가서 신나게 논다. 간단한 간식과 음료, 케이크를 준비하는데, 경험상 아이들이 너무 흥분해서 거의 먹지 않았다. 항상 내년에는 덜 준비해야지 하면서 혹시 하는 마음에 또 잔뜩 준비하게 된다. 나는 매년 케이크를 직접 만든다. 루이의 여섯 살 생일에는 어몽어스 케이크를 만들었고 일곱 살 생일에는 마인크라프트 TNT 케이크를 만들었다.


어몽어스케이크.jpg



보통 이 파티는 생일 당일은 아니고 생일이 1,2주 혹은 사정에 따라 한 달이 지나서 열기도 한다. 이때 생일 초대를 받느냐 못 받느냐로 찐친인지 아닌지가 갈린다. 루이도 이번 생일파티는 한 달이 훌쩍 지나 계획 돼 있다. 피곤한 엄마의 변명이랄까....


초대할 친구들의 명단은 전적으로 루이가 결정하는데, 여덟 살이 되면 어울려 노는 그룹의 친구들이 이미 정해져 있어 새로운 친구는 한 두 명 정도가 추가된다. 우리는 여섯 살, 일 곱 살 생일을 모두 점핑스퀘어에서 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케이크를 자르고 선물이 든 박을 터트린 후에 점핑스퀘어로 갔다. 저녁밥까지 야무지게 먹여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정말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 이렇게 루이 탄생일이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하나 더 남았다. 바로 학교 밖 친구들, 같은 학교에 다니다가 전학 간 친구들과의 파티다.


어찌어찌 이 모든 파티가 끝나면 핼러윈이 바투 다가와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