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라 시 <능소화 피는 계절>
이제 작별할 시간이다
눈물 젖은 입맞춤이
사치로 느껴지는 오후
붉은 꽃잎 사이로
작은 새 한 마리 홀로 앉아 있다
행복은 당신과 나의
기억 속에 머문 흔적 같은 것
여름 햇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김미라 시 <능소화 피는 계절> 전문
나는 그렇게 작별했다. 여름 햇살 대신 폭풍 같은 소나기가 쏟아져 내려 나의 슬픔을 삼켰다. 이승을 떠나가는 엄마를 배웅하러 가던 길. 지나는 길목마다 능소화가 흐드러졌다. 속도 없이 주황색 꽃 빛이 얼마나 예쁘던지. 빗속에도 나비가 날았다. 어쩌면 집을 찾지 못한 나비일까? 엄마를 마중 나온 나비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오래전 일이다. 날짜를 잊었다가도 능소화가 피어난 것을 보면 엄마와 작별하던 날을 가늠하곤 한다.
작별하는 순간들은 어떤 것들을 우리 곁에 남겨 놓는다. 꿈을 꾸기도 하고, 노랫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커다란 울음소리를 남겨 놓기도 한다. 젓지 않아 고요해진 찻잔이 되기도 하고, 짧은 미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각인된 사물들이 우리 곁에 오래 남아 있어 작별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작별은 “나의 기억 속에 머문 흔적”이다. 이미 말라버린 눈물이고,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 노래다. 오래되어 아프지 않은 몸의 흉터다.
비가 내리면 물기를 머금은 흉터가 욱신거린다. 슬금슬금 가렵다. 아련하게 통증이 인다. 어떤 날 통증은 숨쉬기조차 버겁게 한다. 그렇게 한 순간이 지나면 흉터는 없는 듯이 몸속에 있다. 치료가 되었어도 튀어나오는 흉터의 통증처럼 작별의 기억도 몸속 흔적으로 남아 어떤 사물들이 눈앞을 스칠 때 불현듯 튀어 오른다.
능소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나는 가장 먼저 오래전 엄마와 작별하던 날이 떠오른다. 비가 내렸지. 나비가 날았지. 엄마를 태웠지. 오래 미안했지. 더 오랜 시간이 지난 언제쯤, 작별할 수 있는 엄마를 기억하느라 나는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요일 연재인데 월요일(엄마 기일)에 미리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