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절망 끝에서 희망이 꽃피다

by 흰돌

그 일이 있고 난 다음 날에도 내 영혼은 희미했다.

새로 추가된 약까지 먹이고 계속 다짐을 받으며 아이를 학교로 보내고 난 후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날 버린 신에게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검색들.

상담 선생님들이 계속 얘기하시는 수용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 고집을 꺾지 않고 끝까지 가는 집요함. ADHD는 친구가 있지만 아스퍼거는 친구가 없다는 이야기들.


나는 이 문제의 답을 너무나 알고 싶었다.

유명하다는 대학병원에 예약을 걸었다. 아스퍼거라면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도,

소규모 학교로 가야 할지, 대안학교로 보내야 하는 건지. 답이 없는 물음만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너무나 괴로웠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티브이만 무의미하게 바라본다.


인간극장이 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맹인 아빠와 정상인 엄마,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였다.

그들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자기의 삶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끝날 무렵, 맹인 학교의 교사였던 남편은 아내가 사준 '눈을 뜨자'라는 과자를 자신의 맹인 제자들에게 나눠주었다.


'눈을 감자'라는 과자를 제일 싫어한다던 그 맹인들은 새로운 이름의 과자를 더듬으며 너무나 즐거워했다.


"너희는 눈을 뜨게 되면 뭘 보고 싶어?"


그러자 어떤 아이가 대답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요."


그들은 모두 해맑게 웃었다.

대성통곡을 한 건 두 눈이 멀쩡한 나였다.


우리는 두 눈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축복이다.

사랑하는 내 아이를, 건강하고 똑똑한 내 아이를 나는 언제나 꼭 안아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우리 아이 주변에는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데리러 갈 때쯤 학교 상담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오늘 아이가 담임 선생님과 함께 저에게 와서 공손히 사과를 하고 갔어요. 눈빛이 편안해 보였어요. 오늘 집에서 칭찬 많이 해주세요."


어제 지나가는 말로 선생님께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되고 사과드리라고 했는데 그랬던 것일까(나중에 알고 보니 담임 선생님께서 그냥 데려가셨다고 한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아이가 노력하고 있구나.


그리고 상담 선생님께서는 아이에 대해 너무 잘 파악하고 계셨고 부모님도 너무 힘드셨을 거라며 그래도 정말 잘해왔다고 해주셨다.

기관에서 끝까지 하는 훈육을 못 받아 온 것 같은데 부모님이 지원해 주시니 끝까지 해보겠다고 하셨다. 인지가 좋으니 노력하면 좋아질 거라고.


나는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울음이 터졌다.


이렇게 우리의 노력을 인정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아이를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놀이치료 선생님께서도 월요일에 끝까지 악을 쓰는 아이를 보시고는 내가 울컥하자 같이 눈물을 보이셨다. 그리고 자신이 박사 과정에 다니고 있는 교수님께 우리 아이의 상태를 자문해 주겠다고 하셨다. 진정으로 우리 아이를 걱정해 주신 마음에 너무나 감사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시다. 같은 교사로서 얼마나 힘드실지 알기에 더 죄송스럽고 죄스러웠다.

결국 수요일 그날, 아이가 약을 먹는다는 것도 말씀을 드렸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이를 직접 상담실에 데려가신 것도 모자라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그림책도 보내주셨다.

쪽지에는 아이와 꼭 같이 읽어보고 다시 보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절벽 끝에 다다른 절망의 끝이라 생각했는데 그곳에선 새로운 희망이 움트고 있었다.


이렇게 다들 도와주시는데 우리가 포기해선 안된다. 절망 말고 희망을 노래하자. 내 아이를 위해서.


5. 28.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