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글을 쓰고 나서 벌써 2년이 훌쩍 지났다. 나의 치유를 위해 꾸준히 글 쓰기를 하고자 했지만 지나온 2년이라는 세월이 녹록지 않았다.
남편과의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사립초에 보내기로 결정을 했고(상대적으로 순한 친구들, 비슷한 결의 친구를 찾기 위해) 작년 가을에 급하게 전세로 이사를 했다. 올해 1학년에 입학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결정이 잘된 것인지 자신은 없다.
작년에 결국 우리 아이는 ADHD 진단을 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걱정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이미 진단은 나왔고 이제 수용하고 아이를 위해서만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당장 1학년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사립초 적응을 위해 7세 때 사립초 학군의 유치원으로 옮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는 유치원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고 문제 행동은 계속 나타났다. 자기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아기처럼 떼를 쓰고 심지어 폭력적인 행동을 하기도 해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은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마음대로 교실 밖을 나가 어디에 숨어버리는 거였다.
남편과 내가 초등학교에 있으면서 가장 난감한 상황을 내 아이가 벌이고 있는 거였다. 1학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착석이 잘 되는 것인데 우리 아이는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고 충동성이 높아 교실에서 함부로 나가버리는 거였다. 우리는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계속되는 선생님의 부정적인 피드백에 우리는 다시 타지의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와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1년을 기다린 대학병원의 선생님은 우리를 다그치고 몰아세웠다. 지금까지 뭘 했냐고... 그리고 왜 여기까지 왔냐고...
그 지역의 병원에 가서 계속 상담할 수 있는 의사를 찾으라고 하셨다.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눈물만 흘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이 아이의 부모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날 바로 우리 지역에서 그나마 이름 있는 병원에 예약을 잡은 후, 당일에 상담을 받고 검사 예약까지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이루어진 검사들...
결과는 우리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약을 먹어보자고 하셨지만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 병은 불치병이 아니라 크면서 많이 좋아지고 약을 먹으면 가장 빨리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약의 부작용이 겁나고 우리 아이에게 그 병의 딱지를 붙이는 것만 같아 쉽사리 약을 먹일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집중적으로 복용하면 몇 년 안에 약을 끊을 수 있다는 말씀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처음에 가장 적은 용량으로 시작했지만 아이는 내가 알던 아이가 아니었다. 축 처져 있고 너무나 피곤해 보였다. 당장이라도 그만 먹이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아이도 어느 정도 약에 적응을 해가고 약도 점점 증량이 되어가면서 조절을 하고 있다. 드라마틱하게 한 번에 그런 행동들이 고쳐진 건 아니다. 여전히 감정 기복이 크고, 떼를 쓰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커 갈수록 달라지는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도 한다.
곧 입학하는 우리 아이... 유치원에서의 행동이 그대로 학교에서도 나타날까 봐 여전히 두렵다. 좁은 교직사회라 사립초라 해도 아는 선생님들이 계실 수도 있고 학부모와 반 친구들에게 낙인찍힐까 두렵다.
하지만 나는 교사이기 전에 내 아이의 부모다.
우리는 어떻게든 내 아이가 학교 생활과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자기의 꿈을 펼치는 행복한 아이로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1학년 적응을 위해 이번에도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 온전히 내 아이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그리고 작년에 지역과 학교를 옮기면서 체력적으로 심적으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6학년을 맡았는데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고 많은 사건사고들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올랐다. 그리고 약한 체력에 2시간 가까이 되는 출퇴근길은 삶의 질을 너무나 떨어뜨렸다. 그래서 오히려 아이의 1학년이기도 하고 너무나 지친 나의 마음에도 쉼을 줄 겸 휴직을 결정했다.
또 계속되는 교직 생활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힘듦, 내 아이의 힘듦으로 늘 고민이 많던 나는 상담과 심리 전공으로 다시 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내 나이 40, 이미 중년에 접어들어서 공부도 여건도 쉽지 않지만 계속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마음,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마음, 내 아이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싶었다.
알아야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게도 쉽지 않은 대학원에 합격을 했지만 앞으로의 길이 걱정이 된다. 나도 우리 아이도.
하지만 얼마 전에 입춘이 지났다. 곧 봄이 올 것이다. 춥고 적막하고 얼어붙기만 했던 배경에 연둣빛 생기가 여기저기서 돋아날 것이다.
나는 강하다. 강해지고 싶다. 친절해지고 싶다. 문제를 이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