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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공부가 공부보다 더 중요합니다.

부정적 감정이 너무나 불편한 우리들

by Applepie

아이가 시댁에 간 주말 오후, 오랜만에 tv를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한 곳에서 멈췄다. 난 왜 애가 없고 출근도 안할때마저 육아 얘기를 보나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리모컨이 돌아가지 않았다. 오은영 박사님이 금쪽이들을 처방해주시는 그 프로에서 우리 아이와 동갑인 5세 여자아이가 떼쓰고 우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생글생글 웃음이 필살기인 그 꼬마숙녀는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이 오면 마구 소리를 지르고 할머니에게 '너'라고 하는 등 어른에게도 함부로 말했다.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박사님은 아이가 '부정적 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셨다. 이어 박사님의 솔루션이 나왔는데 난 많이 공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저런 금쪽이들을 수없이 봐왔기에 생각에 잠겼다.


Y는 6학년 남학생이었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공부도 꽤 잘했다. 판에 박힌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수학, 과학을 잘하며 창의력이 우수했다. 과학 탐구 시 대회에 그 아이를 데리고 출전해서 수상하기도 했을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었다. 천진한 소년같던 Y의 웃음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러나 지킬앤하이드급의 반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교실에서 책상을 자주 엎어버린다는 것. (밥상을 엎는다는 표현처럼 Y는 책상을 종종 엎었다.) 그때 Y의 모습은 울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13살이라곤 믿기 힘든 만큼의 울분이 잔뜩 쌓인 것 같았다. 하교 후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님께서는 많이 울먹이시며 본인이 계속 전업주부로 지내다 얼마전부터 출근을 하게 되어 아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때의 나는 지금에 비하면 한참 꼬꼬마 교사였기 때문에 아 그렇군요. 하며 어머님의 말에 수긍하며 Y와 '앞으로 그러지 않기'를 몇번이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대개 지켜지지 않았고 Y같은 학생들은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왜 아니겠는가, 그 사이 우리 사회에 '분노조절장애'라는 말까지 등장한걸 보면 애나 어른이나 다 같이 부정적 감정을 다루지 못해 쩔쩔매는것 아니겠는가. 나도 거기에 관해 자유로울 수 없는, 부족한 존재이지만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간단한 메뉴얼을 제시해볼까 한다


Pre 1. 감정들 이름 알기

1단계 들어가기 앞서 감정에 적절한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건 어떤 감정이라고 정의내리는 일을 별로 해 보지 않은 친구들이다. 김영하 작가가 대학에서 강의할때 학생들이 '짜증난다'는 표현을 지나치게 아무데에나 써서 '짜증난다'를 금지한 적이 있다고 했다. 초등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거의 모든 부정적 표현에 그저 '기분 나쁘다/좋다'만을 주로 쓴다. 나는 학교에서 <감정 출석부>를 칠판에 붙여놓고 매일 사용한다.

사진출처-아이스크림몰

먼저, 학기 초에 감정출석부의 35가지 감정들을 함께 살펴본다. 어떤 상황에서 이런 감정이 드는지,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지 등 감정에 대해 충분한 얘기를 나눈다. 다음날부터는 등교하자마자 감정출석부에 이름 자석을 붙이도록 한다. 1교시 시작하기 앞서 조회시간에 특별한 감정의 친구들이나,(유미는 좋은 일 있어?설렌다에 유미 이름이 있네!) 무작위로 3명정도 감정과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 (엄마한테 화내고 나와서 '미안해요.'등) 하지만 감정에는 이유가 없거나 내가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므로 '이유 없음'이라고 말하는 것도 허용이다.

이 밖에 2인, 혹은 4인 1조로 감정팔찌를 나눠줘서 팔찌에 써 있는 감정 중 지금 나의 감정과 비슷한 것을 골린 친구들에게 얘기하기도 한다. 또 한 학기 10시간 남짓의 그림책 시간에도 자연스레 그림책에 나온 감정에 대해 학습하게 된다.


1. 마음 알아주기

첫 단계이자 가장 어려운 단계이다. 왜냐면 나의 인내력이 성인군자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막 책상엎고 친구때린 애를 보면 나도 같이 분필이라도 던지고 싶으나 그걸 꾹 누르고 'Y가 지금 좀 화가 났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자제력을 요구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1단계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일단 아이의 감정을 알아줘야 한다. 오은영 박사님은 이때 사용할 수 있는 바람직한 표현으로 '이해해. 사람들 다 그래.' 혹은 '나도 그래.'처럼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해주는 표현들을 꼽았다. '너의 감정은 보편적이고 정당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들. 1단계가 지나면 아이는 원래의 분노를 잊고 마음이 많이 누그러져 있다.


2. 행동 교정하기

네 '마음'이 이해 간다고 했지 '행동'이 좋다고는 안했다. 화가 난다고 책상을 엎는 것은 안된다, 각종 폭력 안된다,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안된다. 불편한 감정이 들면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늘 가장 권장하는 방법은 말로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나 네가 무시하는 것 같아서 방금 좀 속상했어. 그런 행동은 안해주면 좋겠어.' 혹은 자리를 피하거나 좋아하는 다른 일을 하는 것도 권장했다. 오죽하면 화가 난다며 자꾸 친구들에게 폭력을 쓰는 금쪽이에겐 (너무 화가날 땐)'교실을 이탈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분노가 일어날때 꼭 다른친구에게 표출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내 감정을 알고 그것을 해결할 일을 하는 것이다. 하교 후 아이스크림을 먹는것도 좋고.


3. 윗 단계들 체화시키기

생활 속에서 늘 내 감정을 알아채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바람직한 행동 하기가 익숙해진다면 그 아이는 상위 10%의 어린이일 것이라 확신한다. 이 과정은 학교에서만으론 부족하다. 날것의 감정이 더 많이 느껴지는 곳은 학교보다 가정, 가족과 있을 때이므로 부모님들은 자녀의 부정적 감정을 너무 두려워 마시고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4. 가장 중요한 점: 감정적으로 아이 대하지 않기

이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나쁜지 몸소 10년간 체험한 사람이 바로 나다. 감정적으로 혼내는 것은 감정에 취약한 아이에게 쥐약이다. 분조장 아이의 분노를 키우는 방향이며 아 이렇게 마구 표출해도 되는구나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심어줄 아주 효과적인 행동이다.


5. 양육자가 건강하기

솔직히 난 학생들이나 내 아이 키우는 것만큼이나 힘든것이 '나 다루는 것'이다. 체력은 약해서 자주 고갈되지, 감정 에너지도 적어서 웃을 수 없을때도 많다. 하필 또 여자라서 주기에 따른 호르몬에도 취약하다. 하지만 내가 건강해야 여러 어린이들의 정서적 건강을 담보할 수 있기에 나를 건강히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솔직히 시간도, 노력도, 돈도 가장 많이 드는 것이 '내 건강 지키기'이다.


창문을 열어 놓고 소파에 앉아 글을 완성하려는데 폭염특보 방송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이런 날엔 더욱 부정적 감정이 잘 올라올 수 있지. 곧 아들의 하원시간이다. 푹 쉬어서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나가봐야겠다. 오늘은 아들과 '더워서 짜증날 때'의 대처법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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