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아이의 불행에 침착해야 하는 이유

조금은 태연한'척' 해봅시다.

by Applepie

영화 '기생충'의 부잣집 사모님 연교는 막내아들이 귀신을 봤다는 '트라우마'를 고쳐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미술 치료 선생님(결국 사기꾼이지만)을 붙이고 아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아주 성대하고 고급스러운 파티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어딘가 찝찝하다. 아이의 트라우마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아이를 안아주거나 아이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들 다송이의 트라우마 극복은 영화에서 동떨어진 주제지만 나는 연교가 아들의 트라우마를 대하는 그 부분이 길게 기억에 남았다. 익숙한 얼굴들이 머릿속에 동동 떠올랐기 때문이다.


#1.

2학년 지영이는 내가 맡은 학생들 중에 (미안하지만) 가장 거짓말을 잘 하는 학생이었다. 특히 친구를 모함하는 기술이 엄청났는데 상황묘사가 정말 자세했으며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억울해하는 친구를 옆에 두고 엉엉 울고 있는 지영이에게 내 마음이 거의 넘어갈 뻔한 적이 많았다. 생존 기술처럼 몸에 늘 지니고 있는 그 지독한 거짓말과 과장된 연기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곧 알 수 있었다. 지영이의 어머니가 지영이가 누구에게 맞았다며 학교로 달려오셨을 때다. 지영이의 어머니는 지영이가 친구나 선생님을 모함할 때 아주 크게 반응해 주셨다. 평소에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고단한 삶을 사느라 지영이가 원하는 충분한 관심을 주지 못했던 엄마가 내가 친구로부터 맞았다고 할 때에는 나를 아주 자세히 살펴주고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주었다. 지영이는 엄마의 관심을 받기 위해 갈수록 더 위협적인 상대에게 큰 폭력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2.

3학년 예진이는 모범생이다. 약간 소심한 기질이 있긴 하나 그러한 기질로 인해 꼼꼼하고 완벽을 추구하여 과제물의 완성도가 높고 전 교과의 성적 또한 우수하다. 하지만 처음 예진이를 본 날부터 눈에 들어오는게 있었다. 큼큼 소리를 내는 음성 틱 현상. 예진이의 어머니는 그것을 인지한 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하셨다. 틱은 심리적인거라는데, 아이를 불러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으니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했다. 코로나로 학교에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었고 친밀한 친구 관계에 대해 그다지 강조하지 않을 때라 단짝이 없는 아이들이 흔했다. 어쨌든 딸이 친구가 없다는 말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던 어머니는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였고 아이의 친구관계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어머니의 노력이 깊어질수록 예진이는 스스로를 점점 '친구 없는 아이'로 포지셔닝했다.


#3.

1학년 민재는 학교 적응이 참 힘들어 보이는 아이었다. 일단 급식부터 싫었다. 체구도 작고 먹는 양도 적은데, 제 양보다 많아 보이면 식판을 앞에 두고 소리없이 눈물만 줄줄 흘렸다. 월요일에는 학교에 가기가 무척 싫었다. 엄마와 헤어지는 교문 앞에서 엄마 손을 잡고 울었다. 엄마는 밝았지만 단호했다. '즐겁게 보내고 와. 학교는 가야지^^' 그리고 담임인 내게 메세지를 보내셨다. '민재가 학교 가기 싫은가봐요. 그래도 가야 한다고 보냈습니다. 한번 살펴주세요.' 급식에 대해서도 3월 첫날부터 메세지를 주셨다. '저희 아이가 밥 먹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양이 많아 보이면 많이 웁니다.'

어머님의 정확한 메세지에 나는 민재를 일찍 파악할 수 있었다. 민재의 등교거부와 급식 소동은 금세 사라졌고 곧 여학생들에게 우리 반의 귀염둥이로 등극했다. 2년 후 민재가 3학년이 되었을 때 학예회 무대에서 멋지게 춤을 추던 민재를 보며 흐뭇했다.


내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겠다는 굳은 다짐은 모든 부모가 평생 동안 하는 것일 테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셀 수 없이 많은 밤 숨죽여 기도했다. '제발 저희 아이가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대신 아플게요.' 부모라면 응당 이렇게 자식의 아픔에 예민하다. 그러니 당연히 내 아이가 잘 지낼 때보다 힘들 때 마음이 더 쓰이고 손길도 여러번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갭이 너무 크다면? 힘듦을 호소했을 때 부모님이 보여주는 반응이 너무 커서 나를 신나게 할 정도라면?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가장 흔한 현상이 앞서 언급한 거짓말, 허풍, 과장된 표현이다. 또 자신을 늘 피해자의 자리에 포지셔닝하는 학생들도 있다. 아이답지 않게 '트라우마'라는 말을 자주 쓰며 학교생활에서 겪는 일상적인 어려움을 트라우마로 규정하여 힘들어하는 학생도 보았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감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근무하던 학교에 교육복지 차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이 정기적으로 방문하시던 때가 있었다. 위에 언급한 것과 비슷한 사례였는데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참 인상적이었다.

'엄마의 불안이 아이에게로 옮겨갔습니다.' 이 말이 그날 내 가슴에 콕 박혔다. 아이의 시련에 과하게 반응하는 부모님은 어쩌면 당신의 불안이 너무 크다는게 그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태연한 척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특히 내 아이와 관련된 일이라면.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노심초사 걱정되는 마음을 아이 앞에선 조금 덜 내색해보는건 어떨까. 아이를 아프게 했던 친구라도(상대가 폭력사건의 가해자인 경우는 제외)부모가 나서서 흉보지 않기, 아이가 견뎌내기 막막해 보이는 상황이라도 함께 겁내기보다 겁내는 마음에 공감은 해주되 용기 또한 북돋워주기. 내 아이가 세상과 사람에 쉽게 적대감을 갖는 어른으로 자라는걸 원하는 부모는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아이가 폭력의 피해자인 경우, 부모가 강하게 개입해야하는 여러 경우는 당연히 제외이다.


어차피 인생이란게 꽃길만 걸을 수 없다면, 아이가 아스팔트길이나 자갈길을 가시밭길로 여기지 않게 도와주는 부모가 되어 보는건 어떨까. 도를 닦는 심정이겠지만 말이다. 한해 한해 좌절에 강해지는 아이를 보는 기쁨이 더 클 것이라고 감히 자신해본다.

keyword
이전 14화감정공부가 공부보다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