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상생하고 협력하여 방어하는 식물의 공동체의식


단세포 생물도 지능이 있으니 식물 같이 다세포 생물은 분명 더 높은 지능을 가졌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미모사 푸디카(Mimosa Pudica)는 건드리면 잎을 오므리고 죽은 나무처럼 잎과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린다. 미모사의 이런 행동은 단순하지만은 않다. 미모사를 심은 화분을 반복적으로 떨어뜨렸더니 처음에는 잎을 닫았지만 4~5차례 계속했더니 더는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안전하다는 판단을 한 것처럼 말이다. 미모사도 판단능력이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곤충을 잡아먹는 파리지옥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물이다. 식물인데도 마치 동물인 것처럼 파리를 잡아먹는다. 곤충이 파리지옥 잎 안의 섬모를 건드리면 잎을 닫아 곤충을 가둔 뒤 소화액을 분비해 소화시킨다. 마치 지능이 있는 동물처럼. 파리지옥은 곤충이 섬모를 한 번 건드린다고 잎을 닫지 않는다. 일정 시간(30초 정도) 안에 다시 건드리면 잎을 닫는다. 마치 곤충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 보인다. 감각모에 자극이 축적돼 전기 펄스가 형성되면 덫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동물은 뇌가 있어 다양한 행동을 하지만 식물은 제한된 유전자로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다. 동물이 출현하고 척추동물로 진화하면서 점차 뇌가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식물도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이다.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식물은 서로 접촉(touch)하면서 의사결정을 한다. 예를 들어 나무가 가지를 뻗어나가다 그 나무의 나뭇가지에 부딪히면 더 이상 뻗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배려하는 것 같다. 더 놀라운 것은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식물을 한 화분에 심으면 땅속에서 뿌리를 있는 대로 뻗어 영양분 확보 경쟁을 벌인다. 반대로 유전적으로 가까운 식물은 서로 뿌리를 내리도록 양보한다. 가족끼리 민족끼리 뭉치고 적과는 싸우는 것과 똑같다.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초원과 숲은 생존경쟁과 사랑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런 주장이 나왔을 때 비판을 받았지만 그 후에도 많은 연구에서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스페인 허브는 같은 종끼리는 꽃을 더 많이 피워서 벌이 더 많이 찾아오게 한다. 유전자가 비슷한 다른 친족 식물이 씨를 퍼뜨릴 가능성은 커지게 하는 것이다. 식물은 옆에서 친족이 자라면 그늘이 지지 않도록 잎이 자라는 방향을 바꾸고, 서로 같은 높이에서 잎이 자라게 해 햇빛이 상대에게 더 많이 반사되게 하는 것도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하면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도 농작물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기대한다. 실제로 해바라기를 대상을 한 실험에서 47%나 더 수확량을 늘리는데 성공했다. 친족 관계의 해바라기를 같이 심었더니 바로 옆 해바라기와 어긋나게 자라 햇빛을 더 받게 하여 더 많은 수확을 한 것이다. 이를 보고도 식물이 아무 ‘생각’ 없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식물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물론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이다. 그러한 지능이 없었다면 멸종했을 것이다.


초식동물은 사자 같은 포식동물의 공격을 받으면 동료에게 소리로 신호를 보내 경고하고 숨는다. 이러한 행동은 동물이 탄생하기 전에 이미 식물도 가진 기능이었다. 예를 들어 식물은 자신의 잎을 갉아 먹는 애벌레가 나타나면 위험 신호를 보낸다.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기 시작하면 다른 잎으로 칼슘이온을 보내 위험 신호를 보낸다. 신호를 받은 식물은 잎에 독성물질을 채우거나, 줄기 및 잎을 공격에 노출되지 않는 쪽으로 이동하는 방어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식물들은 이 같은 경고 신호를 같은 종에게만 보낸다. 어떤 식물은 천적이 나타나면 휘발성 화학물질을 공기 중에 분비해 위험 상황을 다른 식물들에 전파하고 다른 식물은 방어 물질을 분비하기도 한다.


막 돋아난 토마토가 벌레에 물리면 ‘엄마, 벌레가 깨물어!’라고 말한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다. 애벌레가 토마토를 갉아먹으면 전기신호가 기다란 체관을 통해 멀리 떨어진 부위까지 전파됐고 식물 전체에 전기적 생화학적 방어 반응이 나타난다. 전기신호를 받자 과산화수소 같은 방어물질을 만들어 냈다.

https://www.frontiersin.org/articles/10.3389/fsufs.2021.657401/full


식물이 신호를 주고받는 것은 식물과 공생하는 균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식물이 균과 공생하면서 이들 균을 이용하여 경고메시지를 내고, 독을 내뿜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움직임을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라고 부른다. 우리 인간은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으로 전기전자 신호로 전 세계 인류가 동시적으로 정보를 공부한다. 그 진화적인 바탕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을 포함하여 동물은 신경시스템(nervous system)으로 전기에 의한 신호(electrical signal)로 빠르게 행동한다. 하지만 식물은 화학신호(chemical message)를 사용하므로 소통이 느리게 일어난다. 동물이 나타나면 움직이고 사냥을 하면서 빠른 신호교환이 필요하여 화학신호에서 전기신호로 바뀌었다. 식물은 뇌나 신경도 없고 언어도 없다. 그러나 식물도 동물처럼 전기신호가 흐르고 화학물질을 방어수단으로 사용한다. 벌레가 잎을 물어뜯으면 그 사실을 다른 잎에 알려 화학물질을 만들게 한다. 이러한 방어는 사실 동물이나 인간과 그 기능은 같다. 뇌나 신경세포는 없지만 세포 속 칼슘이 방어시스템을 작동하도록 하고 이때 전달물질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극전달물질(glutamate)이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자기끼리 도와주고 다른 종과는 경쟁적으로 살아간다. 반면 인간은 어떠한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이다. ‘사피엔스’는 ‘슬기로운’을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물론 인간은 지적 능력이 가장 뛰어난 종이다. 그러나 ‘슬기로운’ 종일까? 사실 인간처럼 어리석은 존재가 있을까. 인간의 역사를 보면 전쟁의 ‘흑’ 역사이다. 땅과 물건을 차지하려고 수많은 동족을 살육해온 역사를 보면 인간은 잔혹한 존재이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전쟁을 치루고 살육했다. 그래서 호모사피엔스라기보다는 호모 스툴툼(Homo stultum)이라고 부르고 싶다. ‘스툴툼’은 어리석은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인간보다는 못하지만 식물도 나름대로 슬기로운 지능을 가졌으니 오히려 식물 사피엔스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M&A 인수 시 시너지의 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