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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Oct 23. 2022

태평양의 중심에서 단백질을 외치다.

멸치 근성장기



근래 들어 근육이 빠지고 있다는 느낌에 단백질을 챙겨 먹어야겠다 싶었다. 가지고 온 단백질 파우더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헬짱 A 님에게 물어본다.



“A 님, 혹시 단백질 쉐이크 있으세요?”



“네, 있어요.”



그건 당연히 있다는 당당한 표정으로 가방을 뒤적거린다. 이 헬짱 A 님으로 말할 거 같으면 하루에 다이어트 도시락을 4개나 꼬박꼬박 먹으며 벌크업 하는 근육에 진심인 분이다.



“위에 두 개는 탄수화물도 섞여 있는 파우더고, 아래는 단백질만 있는 거.”



가방에서 아기들 분유 소분통처럼 생긴 3단 통을 꺼내더니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나는 벙찐 얼굴로 그의 말을 듣고 있는다.



“이게 저번에 말한 그 WPI.”



“아 그 유당 분리 단백질~.”



우리끼리 단백질 얘기를 하고 있으니 B 님이 허허 웃으며 말한다.



“운동하는 애들 얘기는 도통 못 알아듣겠어~.”



헬짱 A 님은 가방에서 쉐이커 보틀까지 꺼내서 나에게 건네준다.



“여기에 타서 먹어요.”



“진짜 먹어도 돼요? 오늘 다 먹어야 하는 분량 아니에요?”                  



고개를 저으며 그가 말한다.



“아니에요. 집에 많아요.”



생각지도 않은 호의에 얼떨떨하지만 일단 덥석 받아서 탄수화물 섞인 단백질 파우더와 먹고 있던 옥수수수염 차를 한데 섞는다.



“아니 왜 그거랑 타 먹어요?”



정수 물이 아니라 왜 옥수수수염 차로 타 먹냐고 이상한 눈초리로 A 님이 물어본다.



“어차피 액체인데 아무거나 타 먹으면 되지 않나요? 맛으로 먹는 것도 아니고...”



끔찍한 혼종의 액체를 입에 털어 넣는다. 옥수수수염 차 때문인지 원래 파우더가 맛이 없는지 맛이 굉장히 오묘하다.



“으”



내 표정을 보더니 A 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게 무슨 요상스러운 맛인지 생각하면서 한 통 뚝딱 해치운다. 쉐이커 보틀을 씻은 후 A 님에게 돌려주며 말한다.



“A 님,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제가 집에 있는 단백질 파우더 드릴게요.”



“아니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득근을 하면 그걸로 괜찮으신가요?”



“그럼요. 멸치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보는 뿌듯함. 그걸로 만족합니다.”



“멸치라뇨?!”



A 님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재빨리 말을 덧붙인다.



“저는 멸치가 아니라 대방어입니다.”



A 님이 이마를 치며 웃는다. 옆에서 잠잠히 있던 C 님이 한마디 거든다.



“어? 나는 참친데”



서로를 보며 깔깔깔 소리내어 웃는다. 



여기는 단백질 많은 대구, 지방 많은 참치, 대방어도 뛰어노는 드넓은 태평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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