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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Mar 19. 2023

공포의 숨바꼭질,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

벌레 퇴치기(2)


벌레 퇴치기(1) 먼저 읽기

https://brunch.co.kr/@63ba569dadee46e/13


-



친구들 모두가 시간이 안 된다고 한 상황에서 떠올린 방법은 동생한테 용돈 주고 처리하기였다. 평소 데면데면한 사이면서 이런 상황에 연락하는 게 웃기지만 일단 살고 봐야지 않겠는가. 그리고 내가 공짜로 부려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합당한 대가를 치르겠다는데. 겸연쩍지만 용기 내서 동생한테 카톡 했다.



-너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돼?



-와이



-집에 벌레 좀 잡아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알겠어



동생은 주저 없이 오케이를 외쳤다. 흔쾌히 수락한 동생에게 일당에 대해서 간략한 브리핑을 마친 후 집 주소를 찍어줬다. 동생이 집에 방문하는 날짜는 이번 주 토요일. 앞으로 3일 동안은 침실을 버리고 다른 방바닥에서 자야 했다. 불편하지만 뭐 별수 있나. 다른 방에는 그의 친구들이 없길 바라며 잠들었다.



-



남은 평일을 두려움에 떨다가 동생이 오기로 한 날이 되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벌레만 잡고 보낼 수 없어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야채를 손질하고 있을 때쯤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녀석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손을 씻고 나온 동생에게 할 일을 알려줬다. 매트리스 사이에 벌레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며 동생 손에 무선 청소기를 쥐여주고 침실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동생을 방패 삼아 뒤에서 얼굴만 내밀고 손가락으로 그가 있을 위치를 가리켰다.



“저기….  저기 벽이랑 매트리스 사이 좀 봐봐. 으으”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입 밖으로 내뱉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렸다. 동생이 내가 가리킨 위치를 살펴보더니 없는데?라고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좀 더 꼼꼼히 보라고 타박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주하는 게 마음 편하지 않지만, 예상한 위치에 없으니 당황스러웠다. 침대 프레임을 움직여서 사이 공간을 보고 아래 벽틈을 봤는데도 없었다. 가구도 없어서 숨을 공간도 없는데 어디 간 거지. 그렇다면 침실 방 문틈으로 나갔다는 건데. 사람은 극한의 공포가 몰려오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정신 승리를 한다. 좁은 문틈으로 그가 온 집안을 돌아다녔을 생각을 하니깐 못 견디게 소름이 끼쳐서 창문으로 나갔다는 시나리오를 썼다.



침실에 있는 그를 잡을 수 없다면 청소기에 붙잡아뒀던 다른 그라도 처분하기 위해 동생과 밖으로 나갔다. 집 앞 화단에 버리면 오도도도 건물로 다시 돌아올 회귀본능(?)이 그에게 있을지 몰라 집에서 더 먼 화단에 버리기로 했다. 대낮에 무선 청소기를 들고 골목길을 걸으려니 창피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동생 등에 바짝 붙어 한 손에 든 청소기를 행인이 보지 못할 각도로 숨겼다. 잘 못한 일은 없었지만, 우리가 뭘 하려는지 사람들이 몰랐으면 했다. 이 정도 멀리 떨어졌으면 벌레의 크기와 속도로 돌아오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을 때 동생과 나는 걸음을 멈췄다. 동생한테 대충대충 청소기 먼지 통을 여는 법을 알려준 다음 눈만 빼꼼 내민 채로 동생 뒤에서 먼지 통이 비워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순간 먼지 통에 담겨있던 먼지들과 머리카락들이 화단에 떨어졌다. 사이에 숨어있을 그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누나, 없는 거 같은데?”



“아니야. 네가 잘 못 봤겠지. 머리카락 사이에 있는 거 아니야?”



동생과 나는 얼굴을 맞댄 채로 먼지 뭉텅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머리카락 이외의 다른 물질은 없었다. 심지어 꿈틀대는 무언가도.



“정말 없었어? 네가 먼지 통 털어낼 때?”



“응….. 없었어….”



먼지가 떨어진 곳을 보다가 눈을 마주친 우리는 소리를 꽥하고 질렀다.



“아아아아앙아아아아아악-“



겁 많은 남자 류 씨와 여자 류 씨는 호들갑 떨며 소리를 질렀다. 나이 먹어도 점잖지 못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죽든 살았든 먼지 통에는 있다는 예상과 달랐다. 침실에 가둬놓았던 그도 없었고 청소기에 가둬놓았던 그도 없었다. 그를 붙잡아 놓는 건 죄다 실패였다. 우리 집 어딘가에 있을 그를 생각하니 봄 날씨에도 오한이 들었다. 그런 집으로 돌아가고 있자니 몸을 가만둘 수 없었다. 으아아아악. 죄 없는 동생의 팔만 퍽퍽 칠 뿐이었다. 이때까지도 동생은 뭉뚱그려서 벌레로만 알고 있지 그에 대해 자세한 건 모르고 있었다. 그런 동생에게 이름을 알려줬고 동생은 바퀴벌레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 자식이 언제 이렇게 컸나 했더니 그냥 돈벌레를 본 적 없어서 부릴 수 있는 객기였다.



“ 아- 누나. 돈벌레가 이렇게 생긴 거였어? 진짜 징그러운데? 으으”



“너 바퀴벌레만 아니면 괜찮다며. 이거 순 허세였네.”



검색 엔진에서 여러 포즈로 찍힌 그를 보면서 동생은 몸을 떨었다. 나는 사진으로도 보지 못하기에 그걸 왜 찾아보냐고 타박하면서 동생을 또 때렸다..



깨끗이 비워진 청소기를 가지고 집에 도착했을 때 허탈함과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불안감이 남아있었다. 더는 나도 모르게 동거하고 있는 그의 개체 수를 늘리고 싶지 않아 창틀에 있는 물받이 구멍을 스티커로 막아버리고 방충망을 보수하고 창틀 틈도 메꿨다. 어느 틈으로 돌아다니는 건지 행적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멀리까지 와 준 동생에게 밥을 먹이고 택시를 태워 보냈다. 오늘 그 두 마리를 잡아야 했는데…..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동생이랑 있었을 때는 쫄보라도 누군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다시 혼자 남겨지자 두려워졌다. 방 안에 가두는 것도 청소기에 가두는 것도 소용없는데 어떡하지? 그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어렴풋이 떠올렸던 방법밖에는 답이 없어 보였다. 너무 오버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전에 포털 사이트에 다음과 같이 검색했다.



‘세스코 후기’



이래서 광고를 하나 보다. 벌레 퇴치는 세스코라고 세뇌되어 버렸으니.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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