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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건너 Mar 20. 2024

             내 떡 남의 떡

    갑자기 봄님이 달려와 눈앞에서 일렁인다. 지난주까지도 한 겨울 분위기였던 여기저기 텃밭에서 농사 준비로 부산하다. 농부들은 마른 채 겨우내 밭에서 누워있던 고춧대 깻대를 태우기도 하고 트랙터로 밭을 갈기도, 겨울 추위에도 한 뼘이나 싹을 내민 마늘 사이로 까만 거름을 뿌리기도 한다.  

   옆 밭 최 사장과 남편은 저기 입구에 있는 공동 펌프로 가서 겨우내 잠가두었던 지하수를 열었다. 이 물은 올 일 년 이쪽 라인 텃밭 농작물들의 생명수가 될 것이다.          

  

 저 멀리로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앉아 냉이 캐는 여인들이 보인다. 봄보다 부지런한 냉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자 맘이 급해진 경애 씨와 양연 씨가 얼른 나온 모양이다. 냉이가 꽃이 피면 뿌리가 질겨 맛이 없어지니까.

   서로의 밭이 이웃해 있는 그녀들의 사이는 각별하다.

 


  몇 년 전, 이곳 농장에 나중에 들어온 경애 씨 남편이 먼저 들어온 양연 씨네 밭과의 경계에 바짝 대고 비닐하우스를 크게 짓자 자기네 밭에 그늘이 진다며 양연 씨 남편이 싫은 소리를 했다. 그렇게 시작된 둘 사이의 불화가 또 다른 불화로 이어졌고 그런 상황이 계속되자 안 되겠다며 양 쪽 여인이 각자 남편에게 화해하라고 중재를 했다. 그러나 반목은 이어졌고 결국 그녀들은 중재를 포기했다.

    남자들끼리야 이젠 싸우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고 우리끼리나 잘 지내자고 도원결의 후 그녀 둘이는 강가 카페로 나가 차를 마시기도 하고 냉이나 쑥을 저렇게 같이 뜯기도 한다.          

   나도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나갔다. 그녀들에게로 가려니 앞 울타리가 높아 한참 돌아가야 하겠기에 그 자리에서 울타리 아래만 살폈다. 그늘진 곳에서 새끼손톱만 하게 올라와있는 냉이는 춥다며 어두운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그나마 캐려니 땅이 얼어있어 호미가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캐기를 포기하고 큰 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그만 캐고 어서 커피나 마시자고.


그들 손에 들려있는 소쿠리엔 냉이가 크기는 작아도 양이 많았다. 그곳도 땅이 얼어있어 캐느라 힘들었단다.


경애 씨가 어딜 갔나 잠시 안보이더니 다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엔 믹스커피 한 통이 들려있었다. 똑같은 커피 선물이 두 개 들어와서 하나 가지고 왔다고 했다. 통의 크기에 놀라 나는 하품을 했다. 너무 큰 걸 받아 부담스럽다고 말하자 그녀는 부담스러우라고 가져온 거란다. 올 일 년 내내 우리 농막에 드나들며 마실 거라고.

   나도 그녀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가지러 장독대로 갔다. 마침 오늘이 아들 생일이어서 아침에 만들어 먹고 가져온 잡채를 장독 위에 올려놓았기에.

   그걸 가져다 농막 탁자 위에 놓으니 그녀들이 와 하며 기뻐했다.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정오가 다 돼있었다. 나는 컵라면도 세 개 꺼내 물을 끓여 부었다. 김장김치도 내놓으니 점심상이 되었다.


들깨가 얼마나 독한지 들깨 주위엔 풀도 안 나는데 냉이 역시 들깨 심었던 자리엔 하나도 없더라고 경애 씨가 말했다. 그녀가 냉이는 이때 봄 보약으로 꼭 먹어줘야 한단다. 그래야 여름에 더위 안 먹고 잘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나 귀여움만 받고 자란 경애 씨의 이야기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이십 대 초반에 사업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해 건물을 가지고 살았다.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와 남편이 주는 돈으로 풍족히 살던 중에 많은 이들이 그랬듯 IMF를 만나 남편 사업이 부도를 맞아 건물과 집이 다 날아가고 파산해 하루아침에 지하 월세 방으로 가게 됐다.

   동창회장부터 많은 모임의 회장 직함을 가지고 있던 그녀의 남편이 이렇게 되자 지인들은 그를 멀리하며 연락을 끊었고 그는 방에 칩거했다.

   세 명의 아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어떻게든 살아야 했기에 사회생활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녀가 식당 홀 서빙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을 집에서 나오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남편이 운전 잘하는 걸 생각해 내고 남편에게 대형 면허 따기를 권했다. 처음엔 싫다며 거절하던 남편이 면허를 땄고 그녀는 그녀가 일하던 식당에 단골로 오던 주변 버스 회사 기사들에게 취업을 부탁해 남편을 그 버스 회사에 취업시키며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이후 거기서 정년까지 마친 그녀의 남편은 지금 마을버스 기사로 재취업해 일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처음에 일하던 식당에서 자리를 옮겨 아파트 미화원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90명의 미화원들이 일하는 대단지 아파트에서 미화원들을 지휘하고 관리하는 청소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어느 날 남편이 결혼한 세 아들에게 말하더란다.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은 아내뿐이니 너희들도 아내 말 잘 들으라고.           

 


   언젠가 양연 씨와 산책하며 그녀의 남편에 대해서도 이야기 들은 적이 있다. 결혼 당시 그녀의 남편은 전기기술자며 고교 중퇴자였고 양연 씨는 대졸 학력자였다. 결혼 후 그녀의 남편은 전기 기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이어 검정고시를 거쳐 야간대학에 진학했다.

    성실한 그녀의 남편은 공직에서 퇴직한 양연 씨가 현재 받고 있는 적지 않은 연금에 관심이 없단다. 그는 퇴직 후 작은 빌딩의 소장으로 재취업해 근무 중이고 기술이 있으니 건강하면 앞으로도 퇴직 걱정 없이 계속 일 할 것 같다고도 말하며 기술직의 장점을 얘기했었다.     


   양연 씨가 도라지 씨앗이 너무 작아 모래와 섞어 뿌렸다고 말했다. 그러자 경애 씨가 상추씨앗은 더 작던데 상추씨앗 뿌릴 때도 모래와 섞어 뿌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높은 톤의 목소리를 가진 경애 씨, 낮은 톤의 목소리인 양연 씨, 그러나 말의 속도는 똑같이 빠른 그녀들의 수다는 작지만 단단한 도라지 씨앗처럼 건강하다.      

   그녀들은 머리를 숙이고 젓가락으로 라면을 잡채를 들어 입으로 가져가다가, 김치를 집다가, 밖에서 일하던 나의 남편이 씨앗이나 연장 등을 가지러 농막으로 들어오면 고개 들어 웃으며 아유, 저희들만 이렇게 먹고 있네요, 우리만 먹어서 어떡해요, 말했다. 먹으며 번거로울 만도 한데 번번이 차리는 그녀들의 편한 예의가 보기 좋았다.


식사가 끝난 후 커피를 타며 나는 과일 챙겨 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나이 들어가며 중요해지는 덕목은 처신일 것이다. 자기들이 가줘야 이 집 남편도 점심 식사를 한다며 그들은 일어나 빈 그릇과 수저 등을 부지런히 옮겨다 설거지하고 행주로 탁자를 닦았다. 마시고 난 일회용 컵들은 착착 포개 타고 있는 난롯불에 던져 넣었다.

   올 때 썼던 챙이 넓고, 눈만 내놓고 얼굴과 앞 뒷목까지 커튼처럼 다 가려지는 모자를 양연 씨가 머리에 다시 쓰려고 할 때 그런 모자는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내가 물었다. 여름에 고추 딸 때 쓰면 좋겠다고 하자 그녀가 선 채로 휴대폰을 들어 빠른 속도로 그 모자를 주문해 줬다.


   내 마음을 진즉에 들켰나 보다. 그들의 냉이 소쿠리를 내가 부러워하는 눈으로 들여다 보더라며 덜어주려는 그들과, 아니라고 안 받겠다고 하는 나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받고야 싶지만 돈으로도 쉽게 살 수 없는, 이때만 먹을 수 있는 보약을 조금이라도 축내서는 안 되겠기에 나는 사양했다. 내가 그렇듯 그들도 이것을 나누고 싶어 생각나는 가족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들을 보내고 나서 햇살이 더 퍼지면 저쪽으로 뺑 돌아 그들이 캐던 넓은 곳으로 가서 캐면 되니까.


냉이 덜어주기를 포기한 그들이 우리 밭을 습관처럼 이리저리 둘러보며 나가려다가 여기 냉이가 많다고 소리쳤다. 놀라 쫓아가 보니 양지 밭고랑가로 아가 손가락 같은 냉이들이 수북이 나와 있었다. “오늘 안 캐면 내일 우리가 몰래 와서 다 캐가야지 호호호..” 웃으며 그들이 떠났다.


 내가 이렇다. 남의 손에 쥐어져 있는 큰 떡 부러워하다가 누가 일러주면 그제서야 알게 된다. 내 손엔 더 큰 떡이 쥐어져 있음을.

   돌아보면 내 삶의 밭에서도 그랬다. 다른 이들의 특별한 삶을 부러워할 때 나의 삶은 특별하지 않아서 더 좋은 거라고 누군가가 다가와 일러주었고, 괜히 뺑 돌아가 얼어있는 삶의 땅에서 호미질하느라 헛고생하지 말라고, 볕 바른 여기가 더 좋은 터라고 누군가는 일러주고 떠났다.     


냉이를 캐기 시작했다. 거름까지 품고 있는 흙이 부드러워 호미가 가볍게 들어갔고 냉이는 뿌리를 달고서도 쉽게 튀어 올랐다.


오늘 저녁 식탁에선 냉잇국과 냉이 무침으로 봄맛을 즐기리라. 주방에 퍼질 냉이 향이 벌써 나를 휘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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