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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변 Oct 11. 2024

경차 타면 뒤에서 빵빵댈까? '경차 실험'의 결과

똥차 INSIDE 8 (선입견)

선입견은 테러범을 만든다


초등학교 때 서점 구석에서 먼지가 가득한 책을 발견했다. 책 제목에 '유머'도 아니고 '유모어'라고 적혀있는 매우 오래된 책. 책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 한 가지만 전한다. 등장인물은 장학사와 학생.


"자네 지구본이 왜 23.5도로 기울어진 지 아나?"라고 장학사가 학생에게 질문했다. 당황한 학생이 대답한다.


"제가 안 그랬는데요?"


장학사는 과학적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학생은 자존감이 낮고 피해의식의 피해자였다. 어린 맘에 재밌다고 깔깔댔다.  


신입사원 시절 일도 못하고 소극적이었다. 살갑지도 않고 일도 못하니 선배들에게 사랑은커녕 무시를 많이 받았다. 참기 힘들었던 것은 후배들도 대놓고 나를 무시했다. 공채 기수 따지는 보수적인 회사에서 후배들의 핀잔까지 들으며 지낸 기구한 삶. 내 자존감은 매일 수술대에 올라 깊은 수술자국을 남겼다. 떨어지는 주식처럼 파란색 창백한 얼굴로 살았다. 회사 뛰쳐나가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흙수저니까 모욕을 참아야 했다. 자존심은 국 끓여 먹었고 수치심은 엿 바꿔 먹었다.


회사 안에서 컴플렉스가 심해서였을까? 이해관계가 없는 회사 바깥에서는 열혈남아로 변신해서 이중생활을 했다. 조금만 무시를 당한다 느끼면 중동의 무장단체처럼 유혈테러를 시전 했다. 장학사에게 "지구본 내가 안 망가뜨렸다"라고 대답하는 학생처럼 웃자고 한 농담에 죽자고 덤볐다.


하루는 친구집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무시를 당했다. 매일 불법 주차와 싸우는 그분들의 노고는 물론 이해한다. 하지만, 불법주차할 의도가 전혀 없는데도 선입견에 빠져 나를 불법 주차자로 몰고 가셨다. 하도 화가 나서 감정을 담당하는 우뇌에게 영화 '명량'의 이순신 장군처럼 명령했다.


명령어는 "전군 출정하라".


우뇌는 3살 어린이 수준의 유치함으로 육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이성을 담당하는 좌뇌가 우뇌의 동맹국 자격으로 참전했다. 좌뇌와 우뇌가 만나 미친 사람처럼 지랄을 시작했는데 입에서 뱉은 문자는 꽤나 논리적이었다.


"당신도 나를 무시해? 내가 동네북이야? 똥차 탄다고 무시해?"


참고로 그때 하얀색 똥차를 탔는데 10년 된 차를 180만 원에 샀다. 차종은 국토를 힘차게 누비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GM대우 누비라. 막상 타보면 누빌 것 하나 없었다! 나에겐 헌 옷을 누비듯 판금도장으로 누벼야 할 곳이 많은 부식된 똥차에 불과했다. 지금 타는 파랑새도 그렇고 부식이 보이면 똥차 같이 느껴진다.


다시 경비아저씨와의 전투 이야기로 돌아간다. 분노가 폭발하여 입에서 칼이 난무했다. 올림픽 펜싱대표처럼 감정의 칼을 빼서 마구 휘둘렀다. 정확하게 찌르지도 못하면서 칼을 사방으로 휘둘렀다. 정규 펜싱이면 반칙패할 상황이지만, 금메달 따는 줄 알고 휘둘렀다. 경비아저씨는 움찔하셨다. 딱 보아도 눈깔과 정신이 모두 돌아버린 검객이었으니 건들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셨을 터. 물론 경비아저씨도 주차관리하며 노이로제가 있었고 불법주차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나에게 툴툴대셨을 것이다. 나도 여기저기서 무시받은 안 좋은 선입견을 갖고 경비아저씨와 싸웠다. 결국 서로의 컴플렉스와 선입견으로 이종격투기처럼 다툰 것이다. 물론 물리력 행사는 없었다. (지금생각하면 너무 죄송하다.)



낮아질 때로 낮아진 신입사원의 자존감은 지하로 내려가 지구의 핵 부분에 위치했다. 태양의 온도보다 뜨겁다는 그곳에서 존재가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는 20대 후반을 보냈다.


경비아저씨와의 다툼 이후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말을 조심한다. 농담이 공격이 되고 일상어가 조롱이 되는 마법은 수용자의 감정에서 결정되니까.


선입견 가진 사람 잘 못 건들면 테러범으로 변한다



'경차 실험'을 통한 선입견 찾기


똥차와 비슷한 듯 전혀 다른 경차에 대한 선입견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른바 '경차 실험'

"경차 타고 다니면 뒤에서 빵빵대고 무시한다"는 소리를 들어 봤을 것이다. 우리 가족도 아침 인사처럼 익숙한 경차 '모닝'을 오래 타고 다녔다. 차의 별명은 '민트초코'. 민트색 바디에 흙먼지나 검은 때가 묻으면 31가지 아이스크림 가게의 '민트초코맛'을 연상하게 해서 지어진 별명이었다.


실제로 경차를 타면 뒷 차가 무시할까? 물론 어느 정도 만만하게 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경차를 타서 빵빵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경차가 출력이 낮고 속도가 느리기에 "답답하다 빨리 좀 가자!"라고 경적을 울리는 경우가 아닐까?


경차는 고속으로 달리면 엔진이 심박수를 높이며 굉음과 함께 "나 열심히 달리고 있다"라고 운전자에게 온갖 생색을 내지만, 고급차들은 묵묵하고 조용하다. 경차는 방지턱을 살살 넘지 않으면 "감히 나 쳤냐?"라고 말하며 분노 조절 장애처럼 운전자의 엉덩이에 보복을 가한다. 고급차는 포용력이 좋아 충격을 감싸준다. 그 밖에 고급차는 고속도로 요철을 넘어도 핸들이 '털털'하게 반응하지만, 경차는 '툴툴'댄다. 마지막으로 고급차는 타이어와 노면이 닿을 때 본드를 바른 것처럼 착 달라붙지만, 경차는 살짝 식용유가 뿌려진 느낌이 날 때가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 경험 안에서 세상을 해석한다. 경차만 타는 사람은 '편안한 고출력'을 알 수 없다. 고출력 차만 타는 운전자는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가는 경차 운전자가 '풀액셀'을 밟으며 '풀노력' 했다는 것을 모른다. 양쪽을 경험해 봐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경차 운전자의 입장은 최선을 다했고 억울하다.


무조건 경차라고 뒷 차가 빠앙~~ 클랙슨을 울리는 것이 아니다. 빨리 가라고 방귀 뀌는 소리다. 여기까지가 "경차 타면 뒤차가 무시하나?"에 대한 나의 주관적 경험과 의견이다.


'똥차 실험'이란 책에 카메오 출연해 준 '경차'에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착각하지 말자 상대방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경차 탄다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좀 가"라는 의미를 오해하는 것이다.


대망의 경차 실험의 결과를 공개한다.



경차나 똥차나 아무 문제없다!
범인은 선입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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