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선물

오고 가는 마음만큼은 진심이길

by 레지널드

원래부터 명절을 좋아했다.

단순히 쉬는 날이라서가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잔뜩, 매일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루 종일 특집프로그램과 특선영화로

가득한 TV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던 나에게

새로운 명절재미 하나가 추가된 건

돈을 벌기 시작했던 20대 이후부터다.

한 대형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는

명절을 맞이해 아르바이트생에게 까지

선물세트를 주는 걸 보고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이래서 다들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하는구나 생각했다.

사실 구성품은 전부 자회사에서 나온 제품들이었지만

처음 받아보는 선물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대학교 졸업 후 정식으로 다니기 시작한 직장,

이곳에서 보낸 첫 명절도 기억에 남는다.


'어른들은 정말 다양한 선물을 주고받는구나' 느꼈다.

많은 거래처들이 내 상사 앞으로 수많은 선물을 보냈다.

상사는 본인 마음에 드는걸 몇 가지 챙기고 나머지는

나를 포함한 다른 직원들에게 알아서 나눠가지라고 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생각해도 그렇고 참 고마운 상사다.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지만 술은 좋아했던 나는

와인과 백주를 챙겼다.

그다음 명절에도 기본으로 나오는 선물 외에도

몇 가지를 더 받아갔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선물을 보내는 사람은 자기가 보낸 선물이

다른 사람들한테 간다는 사실을 알면 기분이 어떨까?'


물론 나도 안다. 그 정도는 보내는 사람도 알 것이고

이게 뭐 연인이나 친구사이에 진심을 담아 주고받는

일반적인 '선물의 개념'과는 다르다는 걸.

그래도 뭔가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것도 나름 상대방이

고심해서 고른 선물일 텐데 얼굴도 모르는 내가

날름 가져가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다.


몇 년 뒤, 나는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했다.

여기서도 명절선물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바로 첫 직장과는 정반대 유형의 상사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많은 선물을 받았는데 다 본인이 가져갔다.

그건 그럴 수 있다. 본인 앞으로 온 선물인데

본인이 가져간다고 서운해하진 않았다.

문제는 다른 데서 있었다.

언제가 한번, 그 상사와 둘이 거래처 사람을 만나

술 한잔 한 적이 있었는데 상대방이

'명절 인사 겸 직원들이랑 드시라고 회사로

간식거리 좀 보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명절을 코앞에 두고 그쪽에서 보낸 육포가 대량으로 왔다.


'당분간 휴게실에 육포냄새가 진동하겠네'라고

생각했으나 상사는 전부 본인 차에 실었다.


그 사람을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언젠가 저런 자리에 오른다면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명절 선물은 이상하게 '누가 더 비싼 선물을 보내나'

경쟁하듯 보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비싼 돈을 들여서 선물할 거면 적어도

상대의 취향이라도 고려해야 한다.


내가 다녔던 회사 오너는 지병으로 인해 술을

입에도 안대는 사람이었는데 고가의 양주가 들어온 적도 있었다.

가격이 비싸고 안 비싸고를 떠나서

정말 진심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일하다 보면 비록 얼굴 한번 본 적 없어도

감사함을 전달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메일이나 문자를 통해 진심 어린 글을 먼저 써보는 게 어떨까.

그런 다음 무난한 수준의,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선물을 주고받는 게 양쪽모두 마음 편할 텐데..


당사자들은 아니겠지만 고가의 선물을 주고받으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


선물은 받는 입장에서 가장 실용적인 게 좋다.

비싸면 잠시 기분 좋을 순 있지만 부담스럽고

업무관계에 얽힌 사이라면 언젠간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음식 선물이 가장 좋다.

참치캔, 식용유, 햄에서부터

육류, 생선, 과일 등등 주는 사람이 절대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야무지게 먹는다.


명절선물에 대한 로망은 있다.

바로, 지방에 사는 친구들에게 특산품 선물 받기.

예를 들면 포항 사는 친구에게 과메기를 받고,

강원도 사는 친구가 감자를 보내주고,

영광 사는 친구가 굴비를 보내주는 그런 로망.


이촌향도 이후, 산업화 이후에 태어난 나와 내 친구들은

전부 고향이 서울이요, 큰 집도 서울이라 내 로망이 이뤄질 가능성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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