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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토에스더 Sep 06. 2024

할머니 집 냄새


집마다 다르게 나는 ‘집 냄새’가 있다.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평소 그 친구에게서 났던 냄새가 집안에 가득 퍼져 있는 것을 보고 집 냄새의 존재를 알았다. 집 냄새는 참 오묘한 향이다. 인위적인 향수나 디퓨저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섬유유연제 옷 냄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평소 자주 먹는 음식 냄새, 자주 사용하는 바디 워시 냄새, 동물을 키우는 친구라면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어린 동생이 있는 친구에게는 아기 냄새가 섞여서 난다.


이사 가는 날, 집에 가구와 짐을 싹 빼고 집을 찬찬히 돌아보면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람이 밥을 해 먹고, 빨래를 하고, 같이 땀 흘리고 몸을 씻어야, 비로소 집 냄새가 집안에 풍기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정겹고, 애틋한 집 냄새는 할머니 집 냄새다. 할머니 집에 들어서자마자 내 코는 오래된 나무 냄새, 김치 냄새, 오래된 에어컨 냄새, 아침에 목욕 다녀오신 할머니의 포근한 냄새를 느끼기 바쁘다.  할머니 냄새로 가득한 공간은 날 절로 나른해지게 만든다. 밖에서는 늘 자신을 채찍질하고 사람과 일에 스트레스받는 나도 할머니집에 오면 그저 똥강아지, 할머니 밥만 열심히 먹어도 칭찬받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게 나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할머니 집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을 때 할머니께서 내 바지를 하나 빨아주셨다. 빨아주신 것도 잊고 있다가 서울에 도착해 얼마 뒤 가방을 열어 그 바지를 꺼냈을 때 할머니 냄새가 바지에 가득 절여져 있었다. 한참을 킁킁대고 힐링하는 표정으로 있자 동생이 수상하다는 듯이 날 쳐다봤지만 아무렴 어때. 엄마에게 이 바지는 당분간 절대 빨지 마라고 얘기한 뒤 비닐봉지에 곱게 넣어 힘들 때마다 열어서 냄새를 맡았다. 할머니 집 냄새를 사랑하는 건 내가 할머니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영원하지 않을 향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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