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아이보다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는 것의 힘
요즘 아이 교육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는 ‘적성’이다. ‘재능’, ‘잠재력’, ‘영재성’이라는 말로 바꿔 불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가능한 한 일찍 아이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걸 기반으로 빠르게 키워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숫자에 민감한 걸 보고 수학 교습을 시작하고, 어떤 부모는 리듬에 반응하는 걸 보고 바로 피아노를 알아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게 정말 아이의 ‘재능’일까? 혹시 단순히 지금 그 순간에 ‘좋아 보였던 것’을 우리가 ‘잘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내 아이가 무언가를 ‘잘하기’ 전에 그것을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먼저 키웠으면 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자라고 그 감정에 오래 머무를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언젠가 ‘잘하게 되는 순간’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아이와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가끔은 너무 천천히 자라는 것 같아 불안해질 때가 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영어 알파벳을 외우고 한글 받아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내가 너무 여유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스스로 흔들릴 때가 솔직히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아이는 나와 함께 종이비행기를 접고 책상 앞에 앉아 이름 모를 도형을 한참이나 그리고 창밖의 햇살에 반짝이는 먼지를 오래 바라본다.
그 모습 속엔 몰입, 집중, 관찰, 확장이 있다. 나는 그 안에서 아이의 자람을 본다.
‘잘하는 아이’가 되는 것은 성취다. 하지만 ‘좋아하는 아이’가 되는 것은 태도다. 나는 우리 아이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든 그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빠르게 익히는 아이이기보다 어떤 것을 스스로 좋아하고 몰입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났으면 한다.
왜냐하면 그 힘이야말로 2045년 그리고 어떤 시대를 살아가더라도 지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자기 삶을 스스로 끌어안고 갈 수 있는 진짜 근력일 테니까.
그건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걸 오래 붙잡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성취는 타인과의 싸움일 수 있지만 지속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만 나올 수 있으니까. 나는 아이에게 ‘지속 가능한 좋아함’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 이 아이가 작은 것 하나를 오래 바라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다려주는 일에서부터 가능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