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속도
“요즘 아이들은 여섯 살에 학원을 일곱 개 다닌대요.”
처음 들었을 땐 놀랐고, 솔직히 헉 소리가 났다. 하지만 하나하나 들어보면 줄넘기, 수학, 영어, 화상영어, 피아노 같은 꽤 익숙한 항목들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합쳐졌을 때’였다. 하루하루가 과제처럼 이어지는 시간표. 아직 낮잠이 필요한 나이인데도 눈코 뜰 새 없이 빡빡하게 구성된 하루. 그 이야기를 듣고 돌아서는 길에 나 자신이 이상한 건지, 아니면 세상이 너무 빨라진 건지 알 수 없는 혼란이 올라왔다. 사교육에 열성적이지 않은 나의 선택이 혹시 아이를 뒤처지게 만드는 건 아닐까, 나중에 아이가 “왜 나에겐 학원이 없었어?”라며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그런 불안이 엄마 마음 한구석을 가만히 건드린다.
그럴 때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조금 더 먼 시기를 떠올린다.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 맞이할 미래, 지금으로부터 약 이십 년 후, 아이가 사회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 2045년의 세계. 그 시절의 세상은 어떤 곳일까. 정보는 이미 AI가 요약해주고, 언어는 번역기를 통과해 다정하게 전달되며, 문제는 기계가 더 잘 푼다. 심지어 감정까지 기계가 어느 정도 읽고 대응하는 시대. 그 안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인간다움’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질문은 여전히 인간만이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왜 그런 걸까?”, “이건 누구의 시선에서 말하는 걸까?”,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들. 나는 이 아이가 그런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느려 보일지라도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왜 그랬을까?”를 함께 묻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정보보다 질문, 속도보다 연결, 암기보다 이해. 이런 태도가 언젠가 이 아이를 지탱해줄 뿌리가 되리라 믿으며.
며칠 전, 아이와 함께 <동백꽃>을 읽었다. 특유의 서정적인 표현과 서툰 사랑 이야기 속에 아이는 어느새 깊이 빠져들었다. 동네 꼬마아이들이 동백나무에 올라가 꽃을 꺾어 바닥에 떨어뜨리는데, 그 꽃이 아직 어린 아기 동백꽃이었다. 엄마 동백꽃으로부터 떨어져 헤어지게 되었다는 문장에서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눈물이 나는 것 같아.” 그러곤 눈물을 흘렸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이의 감정이 그 장면과 만나 울컥 터져 나온 것, 그 자체가 이 아이만의 온전한 독서였기에.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 나는 그런 아이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솔직히 가끔은 걱정이 된다. 이렇게 감성적인 아이가 정글 같은 남자들의 세상에서 견뎌낼 수 있을까. 남자아이가 되어서 울어서 쓰나 이런 말을 하지 않지만, 부모로서 현실적인 두려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품는다. 2045년의 세상은 감정이 약점이 아닌 자산이 되는 사회이길. 다정함이 무기가 되고, 공감력이 리더십이 되며, 슬퍼할 줄 아는 능력이 존중받는 문화이길. 그래서 지금 이렇게 울 수 있는 아이라서 오히려 더 빛나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지금은 늦어 보일지 모른다. 친구들이 이미 영어 단어를 외우고 한글 쓰기를 시작했는데 우리는 아직 그림책 한 권을 붙잡고 반복해서 읽는다. 어떤 날은 읽지도 않고 한 장면을 붙잡고 이야기만 나누기도 한다. 그런 나의 선택이 이 아이에게 더 멀리 가는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속도를 따라가지 않기로 한 용기, 질문하는 법을 알려주기로 한 인내, 그리고 감정을 존중하는 법을 함께 배우기로 한 다정함. 그 모든 것이 2045년을 살아갈 이 아이에게 가장 단단한 날개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