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티켓 여기 있습니다.

그 아침, 나는 아이의 비행기에 타지 못했다

by 단월

아침은 여전히 전쟁이다. 아이들을 등원시키는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엄마 먼저 간다. 집에서 놀아.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은 지금 준비해.”


결국에는 오늘도 똑같은 문장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 말은 협박도 아니고 유도도 아니고 이제는 그저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처럼 되어버린 말이다.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던 나에게 큰아이가 조용히 다가와 작은 자석 하나를 내밀었다.


“비행기 티켓 여기 있습니다.”


포틀랜드 마그넷이었다. 예전에 아이들 아빠가 출장 가서 사 온 기념품. 아이 손에 들린 그 자석이 오늘은 비행기 티켓이 되었다. 나는 한 손으로 그것을 받아 들고 무심히 화장대 옆에 올려두었다. “네, 고맙습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여전히 엄마였고 기장은 아니었다.


그때 아이는 이미 상상 속 비행기를 띄우고 있었다.

침대는 활주로가 되고 동생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그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한 채 현실 속에서 출발만 외치고 있었다.


그 순간 아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기가 고르고, 찾아내고, 건넨 티켓이 형식적인 한 마디와 함께 눈앞에서 툭 던져지는 걸 본 그 마음은 어땠을까. 이게 만약 이게 성인 사이의 관계였다면, 굉장히 불쾌한 순간이었을 텐데.


그런데 아이는 엄마의 반응과 상관없이 동생과 함께 상상 속 비행기인 침대로 돌아갔다. 그저 평소처럼 희희낙락 웃으며 “출발합니다!”를 외치며 놀이를 이어갔다. 활주로는 침대, 좌석은 이불 위, 목적지는 상상 속 도시 포틀랜드.

그 모습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저 표정 안에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진심이 무시당했다는 상처, 기대가 꺾였다는 아쉬움 같은 것. 아니면, 그냥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 내 마음만큼 아이는 그 순간을 무겁게 두지 않았을 수도. 그래도 나는 미안했다. 그런 마음을 짐작조차 못 한 채, 그 손길을 순간적으로 흘려보낸 게.



그렇게 겨우겨우 등원길 출발은 했고 나는 다시 혼자 돌아온 집에서 화장대 위를 마주했다.


포틀랜드.

아이가 건넨 포틀랜드 마그넷


아침에 아이가 건넨 마그넷이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우리가 가보진 않았지만, 아이의 상상 속에서는 이미 떠나고 있었던 곳.


그때 나는 기장이었어야 했다. 고작 5초, 10초만 반응해줬어도 되는 일이었다.


“네, 고객님. 오늘도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좌석은 침대 창가 쪽으로 안내드릴게요.”


그랬다면 아이의 상상 속 세계에 나는 함께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포틀랜드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다. 그런데 그 도시의 마그넷에는 아이의 세계가 담겨 있었다. 산, 다리, 트램, 빨간 해, 뛰는 사슴, 기이한 건물들…

내가 놓친 건 여행지가 아니라, 초대였다.


그리고 나는 초대를 받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 티켓을 받아들였지만 실은 놓쳐버렸다. 아이의 초대도, 상상도, 마음도.

다음에 또 티켓을 내밀어준다면, 그땐 기장이 되어볼까. 작은 비행기의 마이크를 들고, 아이의 세계에 정식으로 탑승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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