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은 화날 때 쓰는 거야

오늘 아이의 마음은 무슨 색일까?

by 단월


유치원 하원길, 아이가 작은 편지를 건넸다.

하얀 종이 위엔 크고 작은 하트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또박또박 쓴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엄마 사랑해요”


아이의 편지


아이의 얼굴은 무척 뿌듯해 보였다.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트에 색을 칠하면 더 예쁠 것 같아.

오늘 너 기분은 무슨 색이야?”


아이의 손이 빨간색 색연필을 향했다.

“빨간색!”

기분이 좋으니 하트는 빨간색일 거라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저 제일 먼저 떠오른 색이었을까.

나는 가볍게 다시 물었다.


“빨간색은 어떤 기분일 때 쓰는 색이야?”


아이의 대답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화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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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이 아이는 자신의 기분을 말한 게 아니라,

‘색’이라는 상징이 가진 감정을 설명한 것이었다.


하트는 빨간색이라는 건 어른들의 상식이지만,

아이에게는 빨강은 ‘화가 나는 감정’의 색이었다.

색과 감정 사이의 관계를 자기만의 언어로 연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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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아이는 파란색을 집으며 말했다.

“파란색은 슬픈 감정.”

그리고 분홍색을 고르며 환하게 웃었다.

“이건 행복한 감정이야.”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보라색은 어떤 감정일까?”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는 말했다.

“모르겠어.”


그래서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우리 같이 정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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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마음속 하트가

어떤 색으로 채워질지는 매일매일 달라질 것이다.

분홍색처럼 행복한 날도

파란색처럼 슬픈 날도

빨간색처럼 화가 나는 순간도 있을 테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보라색 같은 감정들도 있을 것이다.


오늘 나는 아이와 함께

감정을 색으로 나누는 대화를 처음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화의 색들이

앞으로 어떻게 겹쳐지고 퍼져나갈지

조용히 지켜보고 싶다.




이 글은 브런치북 『작은 말, 큰 울림』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마음의 울림을
단월의 시선으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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