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첫 이사

마음의 주소를 바꿔 놓은, 그날의 빗소리

by 단월
폭우가 쏟아지던 여름 끝자락,
예고도 없이 내 마음의 주소가 바뀌었다.
그날은 단순히 비 오는 날이 아니었다.
삶이 나를 다음 자리로 불러낸 순간이었다.


그해 여름, 비가 참 많이 왔다.
하늘이 무너질 듯 퍼붓던 그날,
나는 비상 동원 명령이 떨어질까 봐 조바심이 났다.
당시 나는 경찰서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
만약 ‘동원’이 걸리면 한 시간 안에 도착해야 했다.
폭우 속 운전이 걱정돼 미리 나섰고,
경찰서 근처에 사는 동료이자 친구의 집에 잠시 몸을 피했다.

친구집의 베란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건 초록으로 가득한 산의 능선이었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어쩐지 맑았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벼락을 맞은 듯 ‘머리가 멍’ 했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질 않았다.

나는 딱히 이유가 없기에 이사를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마치 누군가 미리 길을 닦아둔 듯
모든 일이 착착 흘러갔다.
그 동네 부동산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매물 문의를 하고 옆동의 한 집을 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집의 베란다에서 본 풍경은
그날의 그 산보다 더 깊고, 더 가까웠다.

한 달도 되지 않아 계약이 성사되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의 한 장면이
이렇게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을 줄은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충동’이 아니라 ‘부름’이었다.
삶이 나를 그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비는 멎었지만,
그날 내 마음은 이미 다른 계절로 건너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