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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함의 순기능

by 행복반 홍교사

요새 둘째는 형아와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선다. 등교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더니만, 이제는 형아 나가는 시간에 나가겠단다. 무수히 많은 설득에도 둘째의 '빨리빨리'는 막을 수 없음을 깨닫고 나도 더 빨리 준비해서 같이 나간다. 오늘의 일이다.


첫째 나가는 시간에 같이 나가서 함께 가는데 대뜸 "엄마~ 소변 마려워"한다.

'아, 조금 늦게 나와서 화장실도 갔다가 가도 여유로운데... 여기서 다시 집에 가기도 애매한대..'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아이는 "엄마~ 조금 참을 수 있으니까 학교 가서 화장실 갈게."한다.

"그래, 그러면. 조금만 참아 봐."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니, 일찍 나와서 이렇게 마음 급할 일이냐고...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미룰 때 까지 미루고 하는 나의 성격은 첫째와 조금 더 닮았다. 그렇다고 첫째가 다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 조금더 일찍 준비하면 막판에 서둘고 급한 마음이 들지 않을 텐데, 꼭 1, 2분 남아서 준비를 하고 나가는 첫째다. 어쩜 이렇게 첫째와 둘째의 성향이 다를까. 같은 엄마가 낳고 키웠는데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둘째는 남편의 성향을 더 많이 닮았고, 첫째는 내 성향을 더 많이 닮았다. 참 신기하게 여러 가지가 골고루 섞여서 불쑥불쑥 아이들의 삶 가운데 나타난다.


남편은 한 발 먼저 걸어간다. 주변을 둘러보고 더 빨리 파악하고 판단하여 행동으로 옮긴다. 반면에 나는 한 발 느리게 걸어간다. 뒤에 쳐진 아이들과 사람들을 챙겨서 함께 보폭을 맞추고 걸어간다.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말을 걸고 그 과정을 즐긴다.


남편은 내가 참 답답할 거다. 빨리 저기 목표 지점에 가야하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맴돌고 있는 그 자리에서 나는 아이들의 관심사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대화 축제가 벌어지고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은 호기심이 제대로 작동하여 몰입하며 여러 가지 뇌 발달을 이루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남편은 보이는 것에, 나는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집중한다. 그래서 가끔 남편은 내가 뜬구름 잡는다고 한다. 그 말도 맞다. 생산적인 일은 남편이 다 하고 있으니 나는 참 결혼을 잘 한, 이상주의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없다면 너무 무미건조할 거라고 나를 위로해본다. 그저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거리를 끊임없이 찾으며, 세상에 모든 것에 재미를 찾아 아이들에게 전할 때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는 게 가장 큰 행복인 나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말이다.



아침에 학교 앞 횡단보도까지 둘째를 보내놓고 걸어오는데, 교문 앞에서 울리는 알리미가 첫째 것만 문자로 오는 거다. 둘째도 같이 들어갔을 텐데, 아무리 기다려도 둘째 알리미는 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까 소변이 급해서 갔는데, 혹시 가다가 소변 보고는 부끄러워서 어디 서 있나?' 아직 1학년인 둘째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교문으로 못 들어가고 밖에 서있는 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다시 학교 앞으로 뛰어갔다. 비가 올랑말랑 해서 습한 날이라 내 몸에도 금방 땀이 범벅이 되었다.


교문 앞 보안관님께 혹시 1학년 **들어갔는지 여쭈어 보았다. 보안관님은 벌써 전에 들어갔다고 말씀해 주신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하고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가는데, 학교 담임 선생님께도 문자가 왔다.

'어머니~ **이 잘 도착해서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있어요.^^'고 말이다.

'아, 감사합니다!' 그 때에야 안심이 된다.


둘째가 집에서 얼마나 서둘러 나갔는지 그렇게 오래 된 거 같은데, 아직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시간이다. 둘째의 '빨리빨리'가 이럴 때는 빛을 발하는 구나 싶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사실 내 걱정은 끝이 없다. 밤새 자는 동안 불편하지는 않았는지, 학교에서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이렇게 별 거 안 시키고 놀게 해도 되는 건지,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전업주부라고 하면서 살림은 왜 늘지를 않는 건지, 섬유 유연제까지 넣고 빨아도 빨래에서는 왜 자꾸 꿉꿉한 냄새가 나는 건지.. 내가 참 못마땅하고 부족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말이다.

어른인 내가 그럴찐대, 우리 아이들은 또 얼마나 더 그럴까. 지금 잘하지 못하고, 실수하고, 부족해 보이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이다.


함께이기에 다행이다.

함께이기에 감사하다.

함께여서 선을 행할 수 있음이 큰 위로가 된다.


오늘도 그래보자.

함께임을 감사하며, 작으나마 돕는 손길이 되길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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