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잔소리

by 행복반 홍교사

나는 원래 잔소리를 잘 안하는 편이다. 잔소리를 하기에는 나부터 너무 구멍이 많은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새 보니까 잔소리를 꽤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꾸준히 벗은 옷은 바닥에 놓는 첫째와 꾸준히 입은 잠옷을 마구 늘려서 입는 둘째, 너무 가까이 패드를 보는 것 같을 때 한 소리를 하면 잠깐 떨어졌다가 다시 슬금슬금 가까이 붙는 아이들. 왠지 엄마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는 것만 같아서 순간 화가 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내 잔소리를 한다.


"첫째야~ 너 입은 옷은 빨래통에 가져다 놔. 수건을 썼으면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놔야지. 소파위에 두면 다음에 쓸 때 불편하잖아!"

"알았어."

"머리도 빗고. 가만히 있어봐, 여기 로션도 바르고. 지금 옷 입어야겠네.

"조금 이따가 입어도 돼."

"지금 입으면 나중에 더 여유롭게 갈 수 있는데, 꼭 시간 맞춰서 입으면 마음 조급하잖아!"


"둘째야, 이렇게 옷을 늘리면 나중에 너무 늘어나서 옷을 오래 못 입어. 그리고, 아침에 소변 보고 나가야지. 밖에서 화장실 가고 싶으면 안되니까."

"아, 아까 화장실 다녀왔어"

"안갔으면서."

"다녀왔다고!"

"밥을 한 숟가락이라도 먹고 가야하는데. 물 마셔."

"안 마셔."

"물도 안 마시고 가면 어떡해~~"


왠지 무언가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움직여 줬으면 좋겠는 건 나의 욕심이겠지.


박완서 작가님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나의 멘토님이 소개해 주셨다. 그 안의 내용들이 참 나의 마음에 와닿는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920054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 지나친 극성이 책가방의 몇 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나 아닐지. 다만 깊이 사랑하는 모자 모녀끼리의 눈치로, 어느날 내가 문득 길에서 어느 여인이 안고 가는 들국화 비슷한 홑겹의 가련한 보랏빛 국화를 속으로 몹시 탐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본즉 바로 내 딸이 엄마를 드리고파 샀다면서 똑같은 꽃을 내 방에 꽂아 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듯이 그런 신비한 소망의 닮음, 소망의 냄새 맡기로 내 애들이 그렇게 자라 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박완서 저)'-



왠지 그 때 그 잔소리를 해야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된 규칙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때 그 잔소리를 안하면 평생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가정교육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처럼 살까봐 더욱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했던 것 같다.


밥먹고 세수하고 양치하고.

자신의 옷은 외출 후 돌아오자마자 벗어 빨래통에 넣고.

자신이 먹은 식기류는 싱크대에 가져다 놓으며,

할 일은 미리미리 해 놓은 후에, 하고 싶은 놀이를 하는 것.


다른 집에 가면 순서가 조금 바뀌거나 추가되거나 삭제되어 있는 그 '습관'이 제대로 자동화 되지 않으면 나는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불편한 걸 스스로 느껴봐야, 좋은 걸 스스로 느껴봐야 자발적으로 한다는 걸 또 잊고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의 열정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잔소리를 하면서 아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과 띄엄띄엄이 아이들을 움직이게 한다는 걸 잊지 않아야겠다.


그저 엄마의 사랑하는 마음이 아이들에게 가서 닿기를, 엄마가 눈에 보였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의 마음만으로도 세상을 스스로 열심히 살아가길 믿고 기다리며 바라봐주는 것. 그것이 바로 적당한 무게의 사랑임을 생각해본다.


오늘 아침에 첫째가 혼자 부산한 엄마에게 핸드폰을 들이대며 포즈를 취해 보란다. 바쁜데, 게다가 꾸질꾸질한 엄마 왜 찍어주나 싶은데, 아이가 핸드폰을 가져다 대니, 나도 모르게 브이하고 활짝 웃었다.

아이가 가고 난 후에 사진첩에 남은 그 사진을 보는데, 아이가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이랬으면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빠서 눈도 못 마주치고 엄마가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계획을 따라서 분주히 움직이는 매니저 엄마가 아니라,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는 그저 따듯하고 밝은 엄마를 더 원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오늘은 잔소리는 줄이고, 조금더 아이들의 눈을 보고 환하게 웃어주어야겠다. 그저 따듯하고 밝게 미소짓는 엄마로 오늘도 수고 많았다고 대견하다고 말해주는 엄마로 말이다.

keyword
이전 04화다양함의 순기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