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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루쓰 Oct 11. 2024

1화. 김치찌개를 참다니

소설 <식구의 탄생>

오전 여덟시. 정민의 퇴근길은 아침이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기 때문이다.     


동이 틀때 쯤 동지역으로 들어서면 항상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그득하다. 그들은 활기찬 업무 지구인 소만역과 하지역으로 떠나기 위해 소한행 열차를 타러 올라간다. 정민은 거대한 직장인 무리를 거슬러 아무도 타지 않는 입동행 열차를 탄다. 큼지막한 창밖으로 소한행 열차의 내부가 보인다. - 출근은 누가 만든거야 - 피곤한 얼굴들이 말한다. 정민은 그들을 약 올리듯 적막한 열차의 구석 자리에 털썩 앉는다.     


이번 역은 입동, 입동역입니다 - 

세 정류장을 지나 입동역에 도착한다. 삼번 출입구로 올라와 걷고 있는 감각이 느껴질 때면 화락맨션에 도달한다. 화락맨션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헉헉 계단을 오른다. 호흡이 가빠질 때 쯤 삼층에 다다른다. 찬바람에 코를 훌쩍이며 더듬더듬 열쇠를 꺼낸다. 빠듯하게 열쇠를 돌린다. 두세 번의 시도. 302호의 문을 연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안정적인 고립감. 현관문에게 인사한다. - 일 참 잘해, 오늘도 -  낡은 운동화를 벗고 방 안으로 들어선다. 애매하게 정중앙을 벗어난 식탁. 식탁 위엔 먼지가 쌓여있다. 그 옆의 작은 침대. 허물 벗듯 옷을 벗는다. 암막 커튼을 펼친다. 이불 속에 몸을 누인다. 아직 손발은 차갑다. 서서히 잡생각의 스위치는 내려가고 정민은 잠에 든다. 화락맨션 302호에서 정민의 아침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그렇지만 오늘의 아침에 대해 말해보자면,

평소의 완벽한 고립은 확실히 실패한 셈이었다.  

   

정민은 오늘도 아침 여덟시에 퇴근을 했다. 아무도 타지 않는 입동행 열차를 탔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랐고, 뻑뻑한 열쇠구멍에 열쇠를 맞췄다. 문을 열었고, 낡은 운동화를 벗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애매하게 정중앙을 벗어난 식탁.     

그 식탁 위가 음식으로 그득했던 것이다.      

    

- 뭐야…          


등골이 오싹해지고 온몸이 굳었다. 식탁 위엔 언제나 소리 없이 쌓인 먼지가 전부였는데. 새벽의 피로로 충혈된 눈을 비볐다 방안을 둘러본다. 외출 전과 다른 오직 하나는 비루한 식탁이 애써 지탱하는 음식들의 존재. 누군가 귀중품을 훔쳐 갔다고 하기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사실 귀중품이랄 것도 없었다. 가진 거라곤 전혀 돈이 될 리 없는 낡은 노트북과 드로잉용 태블릿이 전부였으니.


정민은 타인의 집에 온 듯 조심스럽게 식탁으로 다가갔다. 아직 찬기가 도는 손을 냄비에 댔다. 명확하게 느껴지는 온기.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조심스럽게 찌개 냄비를 열었다. 가지런한 두부와 어슷하게 썰어 낸 대파가 고명으로 올라간 김치찌개였다. 두부의 구수한 냄새가 김치의 시큼짭잘한 향기를 포근히 감싸안았다. 김치찌개 옆에는 대파와 무가 넉넉히 올라가 있는 고등어 조림. 후추가 넉넉히 뿌려진 미역줄기 볶음. 조미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두툼한 구운 돌김도 있었다. 윤기 나는 흰쌀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돌김으로 흰쌀밥을 한껏 껴안아 입속으로 넣으면 참 뜨끈하고 짜릿하겠지. 정민은 입에서 자꾸만 고이는 침에 당황했다. 요 몇 년간 무식욕자로의 생활이 무색하게도 정민은 가감없이 식욕을 느꼈다. 손이 슬슬 식탁 위의 숟가락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 먹음직스러운 만찬에 뭐가 들었을지 알 턱이 있나. 딱히 삶에 미련이나 애착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출처도 모르는 음식을 먹다가 비명횡사하기는 싫었다. 숟가락을 든 손에서 힘이 빠졌다. 정민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어- 정민은 싱크대 한 켠에 걸쳐놓은 마른 고무장갑을 꼈다. 내키지는 않았으나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음식들을 척척 담았다.


- 나도 참 대단하다. 김치찌개를 참다니          


봉투는 서서히 뚱뚱해졌다. 고무장갑을 타고 피부로 김치찌개 속 두부의 온기가 전도되었다. 서서히 속부터 차오른 따뜻함. 오늘 새벽에 먹었던 스팸김치볶음 도시락의 온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전자레인지로 신속히 열기 세례를 받은 도시락은 그만큼 급하게 식었다. 그런 온도는 한순간 파삭 삭아버리는 불나방 같았다. 먹음직스러웠던 한상차림은 이내 서로 뒤섞여 쓰레기로 전락했다. 멀쩡한 음식들을 모두 버리게 된 것에 죄책감과 짜증이 솟구쳤다.      


- 대체 누가 이런 변태같은 장난을 친거야     


정민은 경찰에 신고를 할까 잠시 갈등했다. 이런 장난을 친 사람이 말도 안 되는 미친놈이면 어쩌지. 하지만 괜히 피곤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정민은 차오르는 찝찝함을 해소하기 위해 문밖에 경고문 하나를 써붙였다.     


<침입 금지 – 몰래 밥하고 튀지 마세요. 진짜 경찰 부릅니다.>      


정민은 어서 주인아저씨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하며 현관문의 등허리를 팡팡 쳤다. - 제대로 하자 좀! – 누군가 무단으로 방에 침입했다는 사실을 주인아저씨가 알게 되면 펄쩍 뛸게 분명했다.

 

정민은 방으로 돌아와 암막 커튼을 내렸다. 아침은 곧 밤이 되었다. 누운 채로 눈을 꿈뻑거리며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살 생각을 한다. 돈 나갈 일만 생기는구나.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기에 투명인간처럼 숨도 숨겨가며 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은 자꾸만 정민의 수중에서 떠나고 싶어하고, 결국은 떠나가고, 삶에서 정민을 왕따 시켰다.          


창문에서 새어 들어오는 어슴푸레한 햇빛은 정민을 위한 달빛이다. 눈이 언제 감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감긴 눈을 뜨면 어느새 어두워진 창밖으로 인공위성인지 별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반짝일 뿐이었다.          

*     

어둑어둑한 밤 7시다.     

띠리링- 첫 번째 기상 알람이 울린다.     

쿵 - 쿵쿵- 쿵- 두 번째 기상 알람이 울린다.  

   

두 번째 알람은 옆집 303호의 여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알람은 일주일에 서너번 정도 울리곤 했다. 정민은 바닥에 떨어진 가스비 고지서를 통해 그 여자의 이름이 김지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연이 어떻게 쿵쿵거리는지를 직접 목격한 적이 없어 대체 무엇을 이유로 어떻게 그 소리를 내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벽 좀 가만히 놔둬 주세요>, <이러다 벽 부서지겠어요>, <잠 좀 잡시다 제발> 정민은 열심히 303호 대문에 쪽지를 붙였고, 303호는 자기 방문 앞에 답장을 써 붙였다. - <죄송합니다> - 그렇게 되면 한동안 조용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오른쪽 벽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발소리도 덤으로.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지연은 항상 책을 읽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고, 간헐적으로 손톱을 피가 날 때까지 물어뜯고 있었다. 정민은 지연이 뭐 하는 사람인지가 궁금했지만, 자주 볼일도 없을 뿐더러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남 신경쓰는 건 매우 쓸데없는 감정 소모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호기심을 잠재웠다.          


화락맨션 세입자 중에서 정민이 얼굴을 아는 사람은 두 명이 더 있었다. 하나는 일년 전쯤 입주한 301호 여자였는데 정민은 그녀가 왜 루저들에게만 허락된 화락맨션에서 거주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정민이 아침마다 마주치는 직장인 무리에 불화없이 잘 섞여들어갈 사람이었다. 입동에서 더 추운 동지로 떠나는 정민과 달리 그녀는 따뜻한 볕을 찾아 소만역 더 멀리는 뜨끈한 볕이 가득한 하지역으로 떠나야 할 것 같았다.


때때로 301호에서는 시끌벅적한 수다 소리들이 벽을 타고 302호로 넘어오기도 했다. 이 숨막힐 듯 고요한 화락 맨션에서 수다 소리라니! 그 사회성 가득한 소음을 들을 때마다 정민은 박탈감과 우울감에 몸서리쳤다. 301호는 외적으로도 꿇릴 게 없었다. 팔다리도 길어 옷태도 좋았고, 시원시원하고 밝은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웃음은 마치 방탄조끼같았다. 그 웃음만 있으면 어떤 상처주는 말들도 튕겨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딜 가서도 사랑받을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짧은 컷트머리를 넘기며 정민에게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 그럴 때마다 정민은 홀린 듯 -네, 아, 안, 안녕하세요!-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 정민과 안면이 있는 사람은 윗층의 남자였다. 정민은 낮과 밤을 반대로 살아갔기에 같은 층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았지만 윗층의 남자는 정민과 출근시간이 겹쳐 일주일에 서너번은 꼭 얼굴을 보았다. 늦은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는 것으로 보아 야간 배달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항상 입는 검은 트레이닝 바지, 검은 티셔츠에 검정색과 회색이 혼합된 밀리터리 깔깔이를 입고 있었다. 키도 180은 족히 넘어 칠흑같은 밤 그 남자의 모습은 거대한 그림자 그 자체였다.     


그 남자는 자신과 꼭 닮은 검은 고양이의 밥을 챙기는 의외의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나름 페라리라는 삐까뻔쩍한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 페라리야, 페라리야 - 애써 간드러진 목소리로 마당에서 페라리를 부를 때마다 마치 포로리를 부르는 것만 같았고, 정민은 그런 그를 목격할 때마다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사나운 인상과 대비되는 그 앙증맞은 면모 덕에 생겨난 내적 친밀감 때문이었다.    

  

밤 아홉시 반.

정민은 빠르게 씻은 뒤 편한 맨투맨에 짙은 네이비색 면바지를 꿰입었다. 매일같이 걸치는 검은 패딩을 껴입고 익숙하게 방을 나섰다. 화락맨션은 서울의 남서쪽 한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맨션’이라는 레트로적 용어에서 드러나듯 화락맨션은 지은 지 오래된 원룸 건물이었다. 대문의 역할을 하는 거대한 은빛 철문. 그 곳곳에 낀 이끼와 녹의 절망적인 콜라보. 대문 양옆으로는 짧고 음울한 돌벽이 뻗어있었다. 철문을 밀고 들어올 때면 생의 마지막 비명을 지르듯 문틈 사이로 끼익끼익 소리가 났다.  

        

12월 말이 되자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추위에 연신 패딩 앞섬을 여미던 정민은 마당에서 주인아저씨와 마주쳤다. 검은 머리 곳곳을 뚫고 나온 흰머리와 얼굴의 주름으로 보아 나이는 육십 정도 되어 보였다. 그는 화락맨션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실제로 화락맨션에는 불쌍한 팔구십년대생만 거주했기에 그건 참이었다. 어쩌다 이런 사람들만 모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화락맨션 사람들은 젊고, 가난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자기 공간 밖으로는 벗어날 줄 몰랐고, 교류의 의지도 없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추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안부를 때때로 의도치 않게 알게 될 때가 있었는데, 그건 마당에 구급차와 경찰차가 서 있을 때였다. 그날은 꼭 흰 천에 덮인 불쌍한 90년대생이 들것에 실려 나왔고, 일주일 전에는 201호의 종한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주인아저씨는 젊은이들의 불행을 함께 짊어지고 싶어했다. 그는 세입자들에게 십평 언저리 넓이의 방을 관리비도 없이 보증금 백 월세 이십에 내놓았다. 서울 땅에서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금액인가! 그는 정민의 아버지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떴을 때 위로의 의미로 어떤 신부님의 책을 선물했다. 책 제목은 숭고하고 선했다. -뿌리 깊은 희망- 물론 그게 정민에게 통하는 방식의 위로인가를 묻는다면 대번에 아니라고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선한 의도를 거절하기에 정민은 뿌리 깊은 희망을 포함해서 가진 것이 하나 없었다. 다음날 그가 건네준 부조금 백만원에 진정으로 위로를 받아버린 자신은 더더욱 꼴보기 싫었다.     

정민이 출근할 때 즈음 주인아저씨는 저녁 식사를 끝내고 앞마당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정민을 발견하자 주인 아저씨는 반가운 표정으로 금세 담배를 비벼 껐다.          


-출근하니?

-네, 이제 나가려구요

-별일 없지?

-아, 사실은요,          


정민은 기다렸다는 듯 어제의 침입 사건을 털어 놓았다. -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 무섭고 당황스럽더라고요 - 주인아저씨는 예상대로 펄쩍 뛰며 경찰을 불러야겠다고 했지만,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정민은 그를 달래며 말했다.      


아휴, 아녜요, 아저씨. 그냥 이참에 점검 정도 해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주인아저씨는 이참에 도어락을 달아버려야겠다며 친딸을 챙기듯 말했다. 정민은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밖으로 나섰다.   

  

화락맨션과 가장 가까운 입동역에서 세 정류장을 지난다. 동지역 일번 출구에서 오분 정도를 곧장 걸어가면 정민이 일하는 더블에스 편의점이 나온다. 정민은 새벽을 뜬눈으로 지새면서 에너지의 습관적인 누수를 달고 살았다. 이런 고충들을 감안하면서도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숨기 좋았기 때문이었다. 새벽일을 하면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마주칠 수 있다는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둘째는 시급 때문이었다. 정민은 매 시간 만원을 받았고 그 금액은 최저시급보다 약 백오십원 정도 높았다. 새벽잠을 백오십원에 팔아치운 셈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야간수당을 쳐준 점장을 만났다는 소소한 행운에 집중하곤 했다. 


셋째는 식사를 떼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이는 하나 둘 먹어갔고 어느새 서른이 되었지만 정민의 월급은 언제나 백만원대 중후반, 잘 쳐주면 이백만원대 초반을 웃돌았다. 식비가 부담스러워질 찰나 식자재 물가는 로켓처럼 뛰었고, 그런 와중에 회사에서 권고 사직을 당했고, 아버지 병원비에 월세에 생활비까지 겹치자 정민은 더 이상 식비를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특권은 유통기한이 다 되어 폐기되는 식품이 그들의 몫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시각은 밤 열시.

정민은 편의점 마크가 새겨진 유니폼 조끼를 걸치고 카운터에 앉았다. 조끼는 언제 마지막에 세탁된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창 너머로 사람 없는 거리를 바라본다. 새벽의 주택가에는 활기라고 할 게 없다. 정민은 카운터에 앉아 멀찍이서 선득한 밤바람을 느꼈다. 그리고 잠 못 이룬 누군가를, 특히 야식이 땡기거나 새벽 산책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오래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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