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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루쓰 Oct 12. 2024

4화. 영혼을 위한 닭곰탕

소설 <식구의 탄생>

추위에 벌벌 떨며 계단을 올라온 지연은 연신 콜록거리며 303호 문 앞에서 열쇠를 돌렸다. 이놈의 열쇠는 한 번에 열린 적이 없네. 방안으로 들어와 길고 검은 패딩을 벗었다. 오늘은 오전부터 부지런히 연구실에 나가 논문을 두 개 읽었다. 지연은 생의 마지막 날을 보람차게 보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지연의 방 구석구석에는 책이 가득했다. 지연의 전공 분야는 일제강점기의 모더니즘 문학이었고, 그 분야에서는 <날개>와 <오감도>를 쓴 문학가 이상이 대표적이었다. 지연 또한 그의 비범함에 홀릭되어 이상의 작품으로 석사 논문을 쓰려고 했지만, 아직 4년 반째 논문을 못 쓰고 있었다. -요즘 석사는 늦어도 3년이면 하지 않나?- 지연은 무능을 재확인하는 말들에 점차 무뎌졌다. 그러는 동안 대학원 동기들은 모두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저널에 자기 이름이 들어간 논문을 한두 개씩은 실었고, 학번 차이가 그리 크지 않는 선배들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실에는 언제나 문학도들이 바글거렸고, 그들은 하루 온 종일 성의를 다해 논문을 읽고 글을 썼다. 지연은 연구실을 가는 게 점차 두려워졌다. 이틀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연구실에 가는 주기는 늘어났다. 지도 교수도 이제는 지연을 포기한 것 같았다. 학교라도 나오라고 종용하곤 했던 그로부터 요 몇 달째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장학금도 끊겼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학술지의 편집 조교 일자리나 작은 프로젝트 제안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지연은 점차 국문과에서 잊히고 있었다. 

     

연구실을 가지 않은 날에는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그러다 저녁 시간이 되면 습관처럼 울컥 솟아오르는 자괴감과 우울을 견디지 못해 자해를 했다. 손등을 긁고 뜯거나 머리로 302호 쪽 벽을 쿵쿵 찧었다. 자려고 누우면 불면증이 도져 부산스럽게 방안을 돌았다. <이러다 벽 부서지겠어요>, <잠 좀 잡시다 제발> 쪽지로 소음공해를 호소하는 302호에게 지연은 언제나 미안함을 느끼곤 했지만 그건 지연도 마음대로 멈출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지연은 여전히 문학에 진심이었다. 논문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그러다 버럭 분노가 치밀고, 삶에 회의를 느끼고, 반드시 포기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서도 다음날 지연은 습관처럼 이상문학전집을 읽고 있었다. 그 닳고 닳은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글 뒤에 숨어있는 작가 이상의 생각을 읽으려 애쓰고 있었다.     


지연은 소설 <날개> 속 스물여섯의 무기력한 그 남자가 자신과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국소설에서는 김첨지 다음으로 유명한 남자 아닐까. 유곽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빌붙어 사는 무능하고 우울한 잉여 인간. 이상은 그 남자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고 옹호했고 지연은 괜히 그게 고마웠다.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그 남자는 미쓰비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 명대사 한 줄을 남기고 열린 결말 속으로 사라졌다.

그 남자는 미쓰비시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었을까.     


그 남자처럼 집 속에 집이 있는 듯 살았다. 오로지 집 안에서만 안식은 피어났다. 만약 아직 스물 여덟밖에 되지 않는 내가 죽는다면, 그건 천장이 무너져서 그런 걸거야. 지연은 생각했다. 누렇게 변색된 벽지, 부식된 수도꼭지, 매해 겨울 부활하는 곰팡이 따위를 볼 때마다 지연은 천장을 떠올렸다. 저 육중한 콘크리트 철근에 깔리면 고통 없이 죽을 거다. 단말마의 비명도 없이. 무심한 곰팡이, 무표정한 콘크리트. 

그런 무감각한 표정으로 별것 없는 생을 끝낼 것이다.          


지연은 화장실 안에 들어가 쪼그려 앉았다. 부러질 것 같은 팔목으로 청테이프를 길게 떼어냈다. 아무런 공기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화장실 문틈을 막았다. 303호에서 5년을 살았다. 살아보니 집만 부식될 뿐 천장이 무너져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연은 스스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지연은 선천적으로 폐가 약했다. 조금만 피곤해도 기침에 시달리는 지연이 가장 쉽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은 호흡기를 못살게 구는 것이리라. 지연은 번개탄을 피울 준비를 했다.      


<날개>의 그 남자는 자신과 아내의 관계를 ‘숙명적인 절름발이’라고 했다. 지연과 지연의 글도 숙명적인 절름발이와 다름없는지도 몰랐다. 지연은 아버지의 얼굴과 자신을 친자식처럼 챙겨줬던 큰아버지와 큰엄마의 얼굴을 잠깐 떠올렸다. 라이터를 켰다. 지연은 손에 쥔 작은 불빛을 쳐다보며 <날개>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 쾅쾅쾅!          


깜짝 놀라 라이터를 떨어트렸다. 갑자기 누군가 대문을 두들긴 것이다.

지연은 놀란 가슴을 애써 누르며 까치걸음으로 현관에 다가갔다. 조심스레 대문에 바짝 귀를 붙였다. 두꺼운 철문을 타고 남녀가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왜 이렇게 세게 두들겨요!- -여기 문짝 두꺼운 거 몰라요?- -근데 왜 안 나오지? 한번만 더 두들겨봐요- –아, 이쯤 했으면 알아 먹겠죠- -안 나오잖아요. 인기척도 없어요-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대화. 지연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열릴 줄 몰랐다는 듯 남녀는 막상 열린 문을 보고 당황한 표정으로 지연을 쳐다봤다.

지연은 긴가민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민에게 물었다.          


- 혹시, 옆방...?

- 네, 맞아요, 302호. 알고 계셨구나! 그, 여쭤볼게 있어가지고요. 저기 혹시…

- 이야, 근데 방 안에 뭐 이렇게 책이 많습니까?        

  

철훈은 정민의 말을 끊고 지연의 방 안 곳곳을 가득채운 책들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책장에는 이미 책이 꽉꽉 들어차 꽂을 곳이 없었는지 마구 눕힌 채로 책이 꽃혀 있었다. 지연은 덤덤히 대답했다.     

     

- 공부하는게 제 일이어서...

- 에이, 무슨 공부가 일입니까?

-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 진짜, 공부가 일이에요?          


철훈이 놀랍다는 듯 묻자 지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잠깐 실례 좀 - 말릴 새도 없이 둘은 지연의 방으로 들어왔다. 철훈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하고선 계속 방안을 둘러봤다. 그러다 물기 하나 없는 싱크대, 컵 하나와 그릇 몇 개가 쌓여있는 선반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 손을 탄지 오래된 듯 했다. 철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부엌에 먼지 쌓인 거 봐요. 정민씨 헛다리 짚었네          


둘은 방안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다. 지연은 몰래 팔을 뒤로 꺾어 아직 누더기처럼 청테이프가 붙어있는 화장실 문을 닫았다. 문 닫는 소리가 들리자 정민은 고개를 홱 돌려 지연에게 물었다. - 평소에 음식 잘 안 해 먹나 보네요?- 지연은 조용히 대답했다.     


- 네, 식욕이 별로 없어서요.          


정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연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정말 아닌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음식은 분명 지연처럼, 겉으로는 조용하고 무관심하지만 무엇 하나에 깊게 열중한 사람의 집착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복도에서 지연을 마주칠 때마다 지연은 항상 무언가를 읽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 음식도 그랬다. 겉으로는 화려할 것 하나 없었지만 입안에서 잘게 부서지며 맛의 근원들은 춤을 췄고, 발화하는 열망들이 그득했다.     


- 전공이 국문학이에요?          


관심을 돌린 정민이 책을 둘러보며 취조하듯 묻자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철훈은 집에 이렇게나 책이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대체 이 모든 책을 읽으려면 얼마나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거지. 대체 매일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겉으로는 푸석푸석하고 힘없어 보이는 지연이었지만, 그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지 궁금해졌다. 호기심이 발동한 철훈은 눈을 빛내며 대뜸 물었다.          


- 소설 같은 것도 배웁니까?

- 그렇죠, 그게 제 전공이죠

- 그럼 나한테 책 읽는 법 좀 가르쳐줘요

- 그걸 어떻게 가르치나요?

- 그쪽은 매일 책을 읽잖아요

- 그건 자동적인 거죠. 일종의 습관이고, 일종의 일상이죠

- 그럼 하나만 물읍시다. 데미안이라고 알죠?

-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말간 표정을 한 지연의 순수한 질문에 정민은 철훈의 눈치를 봤다. 철훈은 울컥 솟은 화를 참는 듯 크게 한숨을 쉬고 지연에게 따졌다.     


- 그쪽도 오토바이 어떻게 타는지 모르잖아요.     


정민이 철훈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 왜요? 여자친구랑 다시 잘해보려고요? - 묻자 철훈은 더더욱 발끈했고, 지연은 연신 손톱을 씹으며 신기하다는 듯 그들을 쳐다봤다. 정민은 볼일을 다 봤다는 듯 떠날 채비를 했다.     


- 됐고, 지연씨 그럼 실례 많았어요, 저흰 그럼…

- 그나저나 김지연씨 밥은 먹었습니까?       

   

철훈이 정민의 말을 끊고 지연에게 물었다. 지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철훈은 이때다 싶은 듯 말했다.     

- 같이 식사나 합시다. 302호에 기가 막힌 닭곰탕이 있어요.    

      

철훈은 정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지연을 방으로 초대한 것이다. 정민은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 그, 그래요. 밥이라도 먹으러 오세요.      


*     


지연은 어색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작은 식탁 앞에 앉았다. 인생 마지막 날 마침내 화락맨션 사람과 대화를 해보네. 닭곰탕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정민과 철훈은 어서 숟가락을 들라는 듯 지연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지연은 내키지 않았지만 천천히 수저를 들었다.  

   

간간히 후추가 보이는 투명한 노란빛 닭국물을 입에 슬쩍 흘려 넣었다. 뜨끈함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폐부를 데우고 위장을 토닥였다. 빛깔 좋은 현미밥을 국물에 적셔 한 입 떠 넣었다. 쌀알의 탄력과 찰기가 느껴졌다. 평소에 먹던 퍼석한 밥과 달리 입안 곳곳에 기분좋게 들러 붙었다.      

씹는다, 또 씹는다, 씹을수록 고소하다. 

저작운동이 부리는 마법이다.     


비름나물 된장 무침은 비름나물 특유의 씁쓸함, 향긋함과 구수한 된장향이 잘 어우러졌다. 그 옆에는 북어토막 같은 것을 마늘과 고춧가루로 무친 반찬이 놓여있었다. - 더덕무침인가? - 생소한 겉모습에 지연이 혼잣말을 하며 쳐다만 보고 있자 철훈은 - 어? 설마? - 한입을 먹어보더니 대답했다.     

 

- 어엇? 진짜 난젓이네? 안동에서 먹는 건데. 이거 대구살이랑 무채에요. 셰프 진짜 경북사람인가 본데요?      


철훈은 반갑다는 듯 다시 난젓을 크게 집어 먹었다. 어느새 벌써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철훈이 말했다.          

- 이야, 이런 밥 먹으니까 엄마 생각나네          


지연은 철훈에게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저희 엄마는 저 낳다가 돌아가셨어요 - 아버지는 책을 제작하는 인쇄소에서 일하시는데 자신이 어릴 때 사고로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어서 음식을 하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황한 철훈은 도와달라는 듯 정민을 쳐다봤지만, 정민은 오히려 지연에게 맞장구를 쳤다.          

- 난 그냥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요. 우리 아빠 친구랑 바람나서 나 열살 때 집 나갔거든요. 나한테 따뜻한 밥 한끼 차려준 적 없답니다. 아, 대신 아빠가 밥을 기막히게 잘해줬죠

-우리 엄마랑 아빠는 안 싸우고 나한테 밥도 잘해줬습니다. 제가 분식집 둘째 아들이었어요.     


싸해진 분위기에 철훈은 눈치를 보다가 -괜히 말했네요, 죄송- 진땀을 빼며 지연과 정민에게 사과했다. 철훈의 부모님은 구미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작은 분식집을 운영했다. 장사가 잘 되지는 않았어도 서로 알콩달콩 의지하며 살아온 세월이 사십년이 다 되어갔다. 아빠랑 엄마가 사이좋은 집이 이렇게 드물 일인가. 철훈은 무안해서 남은 닭곰탕을 들이켰다.     


연신 국물을 입에 떠넣던 지연은 속으로 자꾸 당황하는 중이었다. 평소 죽지 않기 위해 먹어 왔던 데운 식빵, 오래된 김밥, 눅눅한 샌드위치, 검은 반점이 가득한 바나나 따위와 차원이 다른 든든함을 느끼고 있었다. 지연은 오랜만에 밥 한공기를 모두 비웠다. 빈 그릇을 본 정민은 - 지연씨도 은근히 잘 먹네요! 아닌가? 음식이 맛있어서 그런건가. - 기분 좋은 너스레를 떨었다.  

   

이렇게 따뜻해질 수 있는 위장을 죽이려고 했던 건가?

이렇게 기분 좋은 배부름을 느낄 수 있는 위장을?     


죽을 자신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제발 죽이지 말아 달라고 활기를 찾은 뱃속의 장기들이 아우성쳤다. 힘을 되찾은 몸은 정신을 또렷하고 맑게 만들었다. 맑아진 정신 탓에 활기를 띤 위장의 애원이 너무도 분명하게 들려왔다. 지연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천장은 무너질 기미 없이 멀쩡했다. 

그래, 죽이지 않을게.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힘이 남아 있었는지 잘 알겠어. 

지연은 조금 더, 조금만 더 살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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