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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디아 Dec 03. 2023

마지막 말은 내가 정할게



 미국에서 하는 마지막 알바날이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일터로 갔다. 기름 냄새를 온몸으로 휘감으며 바삐 움직이다가 수업을 가는 것이 내 일과였다. 화요일은 특히나 몸이 고달픈데 저녁 마감을 하고 돌아와 씻고 누우면 12시가 훌쩍 넘어있다. 잠시 뒹굴거리다 몇 시간 눈을 붙인 채 새벽이 되면 다시 일터로 컴백했다.


 6:00 a.m


 눈 비비며 일어나 마지못해 알람을 껐다.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는 특유의 기름 냄새가 풍기는 유니폼을 입고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맞을 때면 “오늘이 마지막이다”를 매일 속으로 외쳤다.


 알바에, 귀국 준비에, 파이널 에세이에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떠밀려온다. 파이널이 다가오자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하나둘씩 일을 그만둔다. 모두가 떠나고 저녁 마감을 혼자 하게 되었다. 5리터 넘는 물을 낑낑거리며 옮겨 담고 닦고 치우고를 반복했다. 샤워도중 흐르는 물을 맞다가 생각에 잠긴다.


 그날밤은 울고 싶은 날이었다.


 “알바 때문에 교환이 우울하게 기억되는 게 안타까워 “

  남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걸려 넘어진 기분이었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으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내게 날아온 그 말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그 말을 들은 바로 직후에는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라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삶의 현장을 배웠어’


‘교환학생’이란 신분으로 즐기는 건 여행자와 같다. 여행자는 순간을 즐기면서 잠시 머물다 가면 그만이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여행자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지 떠나면 그만이다.


그것은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자 여행자가 지닌 한계이기도 하다.


 지난 4개월 동안 일하면서 나는 삶의 현장을 목격했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가볍게 지나갔을 그 순간들을 난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함께했다. 이건 장밋빛 안경 뒤에서 가만히 관찰하는 것과는 다르다. 몸소 뛰었고 그들의 치열한 현장을 동행했다.


 난 고작 4시간 일하고 뜨는 그곳에서 그들은 하루 반나절 이상을 일한다. 난 잠깐 하고 그만둘 수 있는 그곳이 그들에게는 평생의 일터인 것이다.


 일하는 동안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하는 동안 나는 교환학생이 아닌 미국 노동자로 살아볼 수 있었다. 잠시 여행자의 신분에서 벗어나 현지인으로 산 것이다. 현지인의 시각으로 보면 여행자의 신분으로 바라봤던 모든 것이 사뭇 다르다. 환상이라는 이름아래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미국 노동자들을 만났고 노동환경을 경험했으며 근무 시스템을 보았다. 스파이처럼 노동 시스템을 눈으로 익혔으니 미국의 또 다른 면을 본 셈이다.


비록 힘들었지만, 우울한 시간으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에서 벗어나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을 경험했으니 말이다.


 나의 모든 경험을 결론짓는 마지막 말은 내가 정한다. 타인은 어떤 말로도 단정 지을 수 없다.


 내 마지막은 ’가치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다‘고 마무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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