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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디아 Dec 04. 2023

문학 속에서 자유로웠다

 “학생은 왜 영문과에 지원했어요?” 한 교수님은 나에게 묻는다.

 ”(어 그러니까..) 영문학과 영어권 문화를 알면 실질적인 외교에 기여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

 

 끼워 맞추기 식 대답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내가 가진 포부는 진심이었다. 그저 영어가 좋아서 지원한 영어영문학과. 영문학이 뭔지도 몰랐고 영문과는 그저 영어를 배우는 학과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들은 첫 전공 수업은 영문법이었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설렌 마음으로 들어야 할 전공 수업이 전혀 재미가 없었다. 가뜩이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지배해방 구석 캠퍼스에서 비대면 수업을 받았다.


 ‘내가 이러려고 대학에 왔나 ‘ 온갖 회의감에 사로잡혔다.

 ‘남들은 실용적인 학문을 배우는 거 같은데 나는 왜 계속 고3 같냐’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2학년이 되면 전과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반 학기를 휴학하고 온 나는 엇학기 되었으므로 들을 수 있는 전공의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간신하 주워 잡은 수업은 ‘현대영소설’이란 과목이었다.


 무턱대고 잡은 수업은 3학년 수업이었다. 3, 4학년 선배들이 가득한 수업에서 풋내기 1학년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작가 쿳시와 로렌스를 배우는 수업이었다. 처음 들어본 영문학 수업에 나는 점차 매료되기 시작했다. 내용이 난해해서 재밌었다. 어렵고 분석할 게 많은데 교수님은 딱 떨어지는 답을 알려주시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답을 알고 싶을 땐 어김없이 남았다. 선배들이 질문하는 것을 몰래 받아 적었다. 눈치 보면서 질문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으면 교수님은 내 이름을 언급하며 “1학년 날이는 무슨 질문이 있을까?”하고 물어봐주셨다.


 교수님은 밀당을 잘하시는 분이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알려주시지 않았다. 교수님 설명의 공백을 채우는 건 항상 내 기발한 상상력이 가미된 추측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흘러가고 나는 교수님 수업이 인상 깊게 기억 남았다. 차분하고 인자한 미소 뒤에 숨겨진 날카로움이 신기했다. 닮고 싶었고 존경스러웠다.


 교수님과의 면담에서 나는 이렇게 물었다.

 “교수님은 왜 교수님이 되셨어요? 원래 꿈이셨나요?”


 호기심 가득한 나의 질문에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냥 로렌스에 꽂혀서 계속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논문을 쓰고 있었지. 어쩌면 로렌스를 쫓아 여기까지 왔는지도 몰라. “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셨다.

 “날이도 살다 보면 알게 될 텐데, 문학만큼 자유로운 게 없어. 주위에서 직장을 얻고 사업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고민했던 때가 있지. 근데 문학에서 나는 가장 자유롭더라고. “


 그때의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문학이 자유롭다고? 그것도 영어로 빼곡한 저게?” 의문투성이었다.



 졸업을 앞둔 지금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거 같다.


 교수님을 다시 만나 뵙게 된다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교수님 수업을 듣고 전공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다른 수업 듣다가 영문학 수업 들으러 오면 왠지 모르게 내 집처럼 편안했다고. 나도 자연스럽게 영문학에 스며든 거 같다고. 전공하면서 너무나도 행복했다고. 나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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