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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디아 Dec 02. 2023

딱 10cm만


 미국으로 교환을 오기 전 아빠는 내게 말했다.


 “우리 딸 한 번 가면 다신 안 올 텐데…“

 이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영어를 좋아했던 나에게 미국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마치 그곳에 가면 환상의 원더랜드처럼 행복이 보장될 것처럼 그렇게 떠나고 싶어 했다.


 “보통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데 날이는 떠나고 싶다고 말해서 기억에 남아.”

 공항으로 가는 새벽 공기 속 오랜 친구가 내게 남긴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한 번 가면 내가 살던 이곳을 절대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기숙사에 돌아와 어느새 깜깜해진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인간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한국을 떠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난 내가 한국을 그리워할 줄 몰랐다. 경유지정도로만 스쳐 지나가도 만족할 거라 믿었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따분한 그곳을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그랬던 게 무색할 만큼 내 행동반경과 동떨어져 완전히 타자가 되어버린 이곳에서 난 나고 자란 그곳을 그리워한다. 일상의 그림자로 드리워진 그곳의 의미를 그땐 알지 못했다. “익숙함에 속아 진심을 잃지 말자”라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 되고 나서야 그곳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반겨줄 안락한 침대가 있고 내 미각을 깨울 음식들, 무엇보다 나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알아줄 안정감이 있는 그곳이 그리운 밤이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내가 수없이 걱정한 것은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무력감과 기나긴 그리움이었다. 오랜 세월 꿈꿔왔던 것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찾아오는 감정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한동안 실체 없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지낼 것이 두려웠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미국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추억을 핑계로 갤러리를 들락거리며 시간을 흘러 보내는 일도 없었다. 내 사람들과 나로서의 삶을 만끽하느라 바빴다. 다행히도 그리움의 무게에 눌려 매몰되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속에서 행복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부딪히는 현실 속에서 가끔은 사무치게 그리운 순간들이 있다. 멈춰있지만 살아 움직이는 라이브 사진처럼 누르면 바로 재생되는 이미지가 내게 있다.


 그렇지만 슬프지는 않다. 언제든 그렇게 꺼내어보면 된다는 것을. 그곳에서의 행복도, 이곳에서의 행복도 모두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딱 10cm만 멀어져 보자~”

 노래가 흘러나온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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