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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캐어 낸 그녀의 비명소리

by NINA

“아악! 씨 X 아파죽겠네!!!”


그 소리에 나는 움츠러들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검사를 하지만,

그렇게 거친 소리를 들을 때면 아직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날, 검사실 문 앞에 한 여자가 서서

초조한 얼굴로 내게 이것저것 물은 탓에
나도 검사를 멈추고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마주 보던 사람의 머리 위로 차트가 쑥~하고 올라왔다.
뒤에 있던 또 다른 여자가 기다리지 못하고 차트를 내민 것이다.
놀란 나는 차트를 붙잡으며 말했다.


“접수대에 놓고 잠깐만 기다리세요. 곧 불러드릴게요.”


그 여자는 건장한 체격의 어르신이었다.
순간의 일이었지만, 그 짧은 움직임 속에

조급함과 불안, 그리고 참지 못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잠시 뒤, 그 여자를 다시 불렀다.
엉거주춤 다가오는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뭐가 그렇게 급하셨어요.

사람 머리 위로 차트를 내밀면 깜짝 놀라잖아요ㅎㅎ”


그녀는 퉁명스레 말했다.


“검사도 안 하길래 그랬지.”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검사 설명하고 있었어요~”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가 물었다.


“뭐부터 하면 돼?”


“탈의실 가서 옷 갈아입고 나오세요~”


"나 어깨가 아파서 옷을 못 벗는데, 나 좀 도와줘.”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먼저 기록 좀 보고요.”


나는 평소처럼 환자의 기왕력을 확인했다.
그 짧은 시간은 내게 꼭 필요했다.


내가 모니터에 집중하는 동안 그녀는 기다리지 못하고
낑낑거리며 윗옷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놀란 나는 달려가 옷 벗는 것을 도왔다.


“아이고, 뭐가 그렇게 급해요~ 천천히 하세요.”


그녀는 말없이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 눈빛 속엔 어딘가 알 수 없는 긴장이 서려 있었다.


“재작년에 검사하신 사진 보고 왔어요.

그거 보고 해야 더 잘해드리지.
자, 이제 여기 서보세요. 자세 잡아드릴게요.”


검사가 시작되었다.

유방촬영은 짧지만 강한 압박이 필요한 검사다.
순간의 통증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압박이 가해지자 그녀 역시 참지 못했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몸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큰 비명이었다.

단순히 아파서 내는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고통과 울분, 두려움이 뒤섞인, 살아 있는 인간의 소리였다.


그녀는 한 손으로 장비를 세게 두드리며 거친 말을 쏟아냈다.


“아, 진짜 X발! 아파 죽겠네!!”


순간, 내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아무리 오래 검사를 해도 이럴 땐 마음이 흔들린다.
욕설 속에 담긴 그녀의 감정이 벅차게 무거웠다.


“이렇게 해야 영상이 나와요.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끝나요.”

나는 숨을 고르고 촬영 버튼을 눌렀다.

영상이 떴다.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에
하얗고 단단한 병변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욕보다 더 큰 통증이 내 안에 올라왔다.

그녀는 알고 있는 걸까.


"최근에 검사하신 게 언제예요?"


"저번에 했잖아. 여기서!"


몇 년 전을 말하는 거였다.


“그때 그거 받고 초음파는 안 받아보셨어요?

결과에 정밀검사 권유드렸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데 검사를 왜 또 받아!"


그녀는 괜한 돈을 쓰기 싫다는 듯 툴툴 거렸다.

그 말에 마음 한 구석이 탁 막히듯 아려왔다.


그녀의 병변이 선명히 보이는 모니터 앞에서

나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가 이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자, 계속합시다. 아프면 소리 질러도 괜찮아요.
그래도 해야 해요. 병은 우리가 찾아내야 하잖아요.”


그녀는 더 크게, 더 거칠게 소리를 쏟아냈다.

그러나 그 소리가 더 이상 내 마음을 흔들지 않았다.




검사가 끝나자 그녀가 옷을 입으며 말했다.


“아, 진짜 아팠어. 죽는 줄 알았어.”


“저도 이렇게 욕 많이 들은 건 처음이에요.”


우리는 잠시 마주 보며 웃었다.

그 짧은 웃음 속에 묘한 따뜻함이 스며 있었다.


나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잘하셨어요. 오늘은 지난번에 안 보이던 게 보이네요.
여기, 이 하얀 부분이요. 그래서 조금 더 눌렀어요. 많이 아프셨을 거예요
검사 결과 꼭 확인하시고, 정밀검사받으셔야 해요.”


그녀에겐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다만 등을 돌린 채 조용히 물었다.


“... 암이야?"


나는 잠시 멈췄다가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직 몰라요.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 말고, 꼭 정밀검사받아요.”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가슴을 문지르며 문을 나섰다.


거칠고 강하기만 한 그녀가

그 순간엔 자신 안으로 숨어드는 게 느껴져

마음이 저릿했다.




문이 닫히고, 텅 빈 검사실엔

아직도 뜨거운 공기의 진동이 남아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 안에 조용히 무언가가 자랐다.


예전의 나는 이런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변명하곤 했다.

‘당신을 위해 이렇게 애쓰는데, 왜 나를 비난하나요.’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지 못하고,
할 수 없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녀의 병이 그녀의 태도를 덮어버렸다.
비명도 욕설도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나를 일으켰다.


따지고 보면 달라진 건 없었다.

나의 기술도 그녀의 태도도 병도 같았다.

그저 묶여있던 내 마음이 풀어진 것 뿐이었다.


그녀의 거친 소리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강한 사람이라는 건
다른 이의 두려움 앞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그녀가 떠난 뒤에도 그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아악! 씨 X


그녀가 남기고 간 울음 같은 비명

더이상 나를 흔들지 못하는 소리의 잔향 속에서,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같은 나인데,
분명히 달라졌다.


멈칫거리며 삐뚤빼뚤해졌던 나의 길이
조금은 매끄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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