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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곳.

by NINA

다짐은 늘 어젯밤에 생긴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그 다짐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5시 반.

창밖은 벌써 환하다.
눈은 떴지만 마음은 아직 이불속 어딘가에 묻혀있다.


조용히 일어나 커피를 내렸다.

오늘도 뛰지 않겠다는

포기인지 위안인지 모를 감정이

커피 향처럼 스며든다.


그때 창밖을 지나는 러닝팀 한 무리.

힘찬 발디딤들.

멋있다.. 대단하다..

하지만 마음은 곧 선을 그었다.

‘저 사람들이니까.’


조금 뒤

혼자 걷고 천천히 달리는 사람 몇몇이 보인다.

꾸준히 움직이는 모습이 묘하게 낯익다.

서툰 리듬.

나와 닮은 리듬.

순간 마음이 콕 찔렸다.


'아.. 나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구나. '


옷을 갈아입고, 물병을 힙색에 넣고

운동화를 야무지게 묶고선

현관까지 따라 나온 뿡이에게 힘주어 말했다.


"뿡아 엄마 뛰고 올게!!"


그렇게

오늘도 달리기 시작했다.




혼자 달리는 시간은 언제나 좋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또 혼자 뛰어? 사람 좀 만나!”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나를

답답하게 혹은 안타깝게 보는 사람이 많았다.


머 굳이 말하자면 나는 수다쟁이다.

책을 읽는건 작가와 수다떨고 싶어서이고

그 수다 속에 또 다른 내가 나타나 함께하는 게 좋았다.


운동할 때는 내 몸과 그런시간을 갖는 거 뿐이다.


몸은 오늘 조금 가볍다

숨도 덜 차고.

얼음백 덕분인가 싶기도 하고.

런데 배가 살짝 아프다.

눈도, 코도, 목도 조금 부어 있는 듯하다.


.... 아

어제 울었구나.


예고 없이 마주친 영상 하나에

마음이 쿡 찔렸다.

그러더니 어느새

얼굴이 일그러졌고,

울음이 터져버렸다.


감정은 언제나 그렇다.

차곡차곡 눌러둔 마음이

뚜껑 열리듯 한순간에 밀려 나온다.


심장이 저릿저릿하고,

숨이 넘어갈 듯 끄억끄억 우는데,

문득 겁이 났다.


이러다 진짜 심장이 멈춰버리면 어떡해?

울다 죽기엔 내가 좀 아까운데.


그 순간,
감정을 꺾은 건
이성이 아니라
우스운 자존심이었다.


달리며 그 순간을 떠올리니
피식.
또 웃음이 난다.

'맞아. 그렇게 죽는 건 좀 없어 보여!'




몸은 알고 있다.
나의 바보 같은 순간까지도.

그저 가만히 귀 기울이다가

어느새 조용히

나만을 위한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 속에서 나는

헐겁게 엮여 쉽게 무너지는 감정들을 마주한다.

차마 말로는 꺼내지 못한 속의 빈틈들.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허한 곳을 치고, 실한 곳은 피하라.”


마음의 허한 자리는

누군가에게 들키기 전에

내가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곳이다.


빈틈을 알아차릴 때마다

나는 내 안을 조용히 씻어내고,

조금 더 단단하고 선명한 나로

다시 채워넣곤 한다.


그렇게

어제의 '엉엉'

오늘의 '피식'으로 자라났다.


서툴지만, 그래서 더 진짜인

이게 내가 달리기를 이어가는 이유다.



적이 오게 만드는 것은
이로움을 보이기 때문이고,
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해로움을 보이기 때문이다.

적에게는 형체를 드러내고,
나는 형체를 숨기면
나는 집중되고
적은 분산된다.

적이 실한 곳은 내가 비게 만들고
적이 허한 곳은 내가 실하게 만든다

적은 허을 향해 오고, 실을 피한다.

손자병법 허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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