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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한다는 건 타이레놀 먹을 일이 많다는 것

가을을 지나는 중

by 보보

일을 한다는 건 타이레놀 먹을 일이 많다는 것. 알약으로 된 소화제와 베나치오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미리미리 구비해 두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간식과 함께 서랍 속에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다. 명심 또 명심.


그래도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옆자리 동료에게 부탁하면 된다. 자연스럽게 서랍에서 꺼내 줄 것이다.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요.”라는 따뜻한 멘트와 함께 말이다. 이것이 회사에서의 동료애다. 약 한쪽도 나눠먹는. 안 그래도 힘든 회사생활, 약 없이는 버티기 힘들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새로 들어온 신입을 보며 과거의 나를 겹쳐본다. 나도 그때 고생 많이 했었지. 신입들은 여러 경험 끝에 점차 회사에 자신의 생체를 맞추어나간다. 밥을 먹는 속도, 먹는 양을 조절하는 것은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이게 어그러지면 그날 하루가 어그러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점심때 체한 게 퇴근할 때까지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일의 능률이 떨어짐은 물론이요 인간관계에도 좋지 않다. 자신의 몸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다 보면 신뢰도도 떨어진다. 양해를 구하는 것도 한두 번까지다.


감자.jpg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빈센트 반 고흐


노동을 끝내고 감자를 먹는 가족을 그린 반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퇴근 후 느지막이 간식을 먹는다. 식탁 맞은편 앉은 어머니가 나의 간식 메이트다. 여름에는 무화과와 복숭아 가을에는 고구마와 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여름은 차갑게 겨울은 따뜻하게. 계절에 따라 음식의 온도도 뒤바뀐다.


식탁 한편에는 읽다 만 책들이 쌓여있다. 그중 손이 가는 건 가장 위에 올려진 책이다. 기분 내키면 다이어리를 먼저 쓴다. 손으로 천천히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고 입으로는 알알이 광으로 반짝이는 샤인머스켓을 쏙- 집어넣는다. 팡팡 터지는 과즙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달다. 그야말로 포도가 너무해! 그 어떤 디저트보다 달다 장담한다.


가을 비는 정말 줏대가 없다. 지 내리고 싶을 때 내린다. 그래서 기상청도 모른다.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많은데 그 기한이 짧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가을을 쫓느라 걸음이 바쁘다. 여기도 가야 하고 이것도 먹어야 하고 저것도 봐야 한단다. 가을척척박사님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들의 말을 듣기에도 바쁘다. 그래서 이번 가을에는 제주도를 가기로 했다. 기다려라 제주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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