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에서 술 못 마신다고 말하면 생기는 일

외로운 싸움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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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회식이다. 직장인들이라면 알 것이다 이 ‘회식’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평소 자주 먹지 못하던 음식을 실컷 먹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들과 그것을 먹는다면? 과연 그래도 좋을 수 있을까. 그 외에도 나에게는 회식이 고역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회식이라 함은 곧 술 아니겠는가?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이놈의 술 때문이었다.


나는 여러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보았지만 오랫동안 머물렀던 직장은 병원이었다. 병원에서 접수 일을 2년 반 하는 동안 회식도 적지 않게 가졌었다. 보통 신입에 나이가 어리다면 술을 거부하기 가장 어려운 위치다. 하지만 입사하고 있던 첫 회식 날, ';술 마시죠?'라는 질문에 나는 용기 내어 말했다.


“저는 먹고 있는 약이 있어서 술을 못 마셔요. 죄송합니다.”


어쨌든 권유를 거절하는 입장인지라 예의상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떤 반응이 나왔을 것 같은가? ‘어디 상사가 술을 권하는데 거부해!’라는 일은 다행히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술을 마시는 가운데 유일하게 마시지 않던 내 모습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슨 약을 먹는지, 한약인지 묻는 것부터 종교 때문에 안 마시는 것 아니냐는 둥 질문 폭격을 맞은 것이다. 그러면 나는 쩔쩔매며 ‘한약은 아니고 그냥 꾸준히 먹는 약이 있다, 종교 때문은 아니다.’라며 일일이 대답해 주어야 했. 그럼에도 이 말을 듣는 건 어딜 가나 똑같았다.


“에이 한번 마셔봐! 마시면 늘게 돼 있어~”


그놈의 ‘마시면 늘게 된다.’는 어느 직장 회식에서나 빠지지 않고 꼭 듣는 말이다. 중년 나이의 분들 뿐만 아니라 2~30대 직장 동료에게서도 들어보았다. 난감한 듯 웃으며 손을 양쪽으로 흔드는 건 이제 자동차 와이퍼처럼 자동이다.


초반에 술을 못 마신다고 고백하고 나면 다음 회식 때는 편하겠지 생각한다면 그것도 오산이다. 왜냐하면 회식 때가 다시 돌아오면 영화 <맨 인 블랙>에 나오는 기억 제거장치 뉴럴라이저로 기억을 제거한 듯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연차가 쌓이면 좀 낫지 않겠냐고?


“이제는 먹을 때 안 됐나?”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그들은 마치 내가 오기를 부리고 있기라도 한 마냥 말했. 어떤 때는 ‘젊을 때 마셔야지 약한 거 사다 줄게’라며 어떻게든 술을 마시게 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몸이 안 좋아 약을 먹고 있다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 경우에도 너무 억울하지만 그저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 그렇게 몇 년을 눈칫밥이 아닌 눈칫사이다를 홀짝여야 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그들과는 아예 다른 종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술을 마시는 인종, 나는 술을 못 마시는 인종. 그들은 내게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술 안 마시면 무슨 재미로 살아?’라고. 그들에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너무 당연해서 못 마시는 나 같은 사람을 보면 마치 외계인이라도 발견 한듯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술을 안 마시면 인생이 재미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보시다시피 나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아주 즐겁게 잘 살고 있다.


뇌질환이라면 당연하지만 뇌전증도 술과 담배는 금지시킨다. 알코올은 아시다시피 건강, 특히 간과 뇌에 좋지 않기로 유명하다. 최근의 뉴스에서는 기존 중장년층에서 많이 발생하던 통풍이 현재는 젊은 2~30대에서도 약 19%의 비율로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원인을 식습관의 변화로 꼽았다. 고기, 회, 맥주와 같은 육류와 술 위주의 식사가 늘었기 때문이다.


술을 가끔 즐기는 것은 기분전환이 되고 좋을 수 있으나, 굳이 마시지 않겠다는 사람에게까지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모두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술이 좋은 것이라며 억지로 먹이려 권하는 행위를 멈춰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말하는 것일 뿐이다. 이 이야기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술을 마시려면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술에 관대하다. 음주를 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거나 폭행을 하면 감형을 받는 사례 있듯 사회적인 분위기가 술을 용인해 준다. 술을 의리의 상징으로 생각해 같이 술자리를 가져야지만 진짜 친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뇌전증이 생기기 이전에도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제 술보다는 커피를 더 좋아한다. 상대방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거라면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해 보기를 바란다. 술 마시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세상에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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