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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진의 글방 Oct 0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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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실이 만실이다. 칸칸이 가려진 커든 뒤에서 색색대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떠돈다. 오랜 세월 삶을 지탱하느라 지친 몸들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두둑두둑 침대위로 떨어진다. 

나도 침상하나를 차지하고 누웠다. 

가려진 커튼 뒤로 코고는 소리가 리듬을 탄다. 따뜻한 찜질팩에 등을 대고 누웠으니 노곤해 지는 것은 당연하다. 내 눈도 감길 듯 말 듯 힘을 잃는다. 

숨쉬기가 힘이 들고 어지럼증과 어깨통증으로  이곳을 찾았다. 노인들 틈에 침상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려니 죄송하고 민망하지만 아픈 것에는 위아래가 없다. 커튼에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다. 

눈을 감는다. 따뜻한 찜질팩에 몸이 녹녹히 녹아내리고 마음도 녹아내린다. 찜질만으로 아프지 않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렇지 못했다. 의사는 주사를 권했다. 외부에서 자극을 주어 풀어 줄 수 없는 몸 속 깊은 곳의 뭉친 근육세포들을 풀어주는 주사였다. 신기하게도 주사를 맞고 나니 가슴을 누르는 통증도 덜하고 어지럼증도 가셨다. 

주사 자랑을 했더니 교회 집사님이 노모를 모시고 병원을 방문했다. 나의 병원 자랑이 솔깃했던지 믿음 반 의심 반으로 병원을 찾아 나선 모양이다. 큰 병원 여기저기를 떠돌던 노모는 못 이기듯 아들을 따라 나선 듯하다. 자식이 되어서 숨 쉬기가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노모의 호소를 안타까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큰 병원에서 하라는 검사는 다해보고 받으라는 치료는 다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병명을 찾지 못했다. 양방병원을 찾아다닌 결론이었다. 한방병원에서 내린 결론은 화병이다. 대한민국 어머니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그 병이다. 화병에는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그저 마음을 편히 하라는 것이 의사들의 답이다. 

포기하듯 찾아간 병원에서 뜻밖의 결과를 얻은 집사님이 감사인사를 했다. 주사를 맞고 며칠은 주사몸살을 앓으셨지만 노모와 처음으로 명절을 즐겁게 보냈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라도 자식 도리를 한 것이 기뻤던 모양이다. 명절 때마다 끙끙대는 노모의 신음소리를 듣는 자식의 마음이 무거웠으리라. 

주사가 하도 기특해서 의사에게 물었다. 큰 병원에서도 찾지 못한 병을 어떻게 알고 치료를 했느냐고. 의사는 별것 아니라는 듯 빙그레 웃으며 구조와 기능의 차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우리 몸은 구조적 역할과 기능적 역할을 동시에 해야만 정상적으로 움직인다. 큰 병원에서는 아프다고 하면 여러 가지 검사를 많이 한다. 검사는 점점 구조적으로 깊이 들어간다. 예를 들면 디스크라는 증상은 우리 신체의 구조적 문제로 생기는 병이다. 검사를 하면 나타나고 통증의 원인으로 디스크라 판정을 낼 수 있다. 그래서 큰 병원일수록 우리 몸의 구조적 이상을 중심으로 모든 검사를 하다 보니 기능적 이상을 찾지 못한다고 말했다. 구조에 문제가 없는 통증 원인은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결론은 신경성 질병으로 끝을 맺는다. 보이는 것에만 집중한 결과이다. 몸을 움직이게 하는 작은 신경근육세포들의 기능적 역할들을 간과한다는 말이다. 

가끔 불치병이 나았다는 기적의 뉴스를 접할 때가 있다. 눈에 보이는 증상으로는 도저히 나을 수 없는 병들이다. 공기 좋은 산에서 요양을 해서 나았다는 말을 한다. 아마 그런 결과의 밑바탕은 기능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몸의 작은 세포들을 매일 쓰다듬어 주며 온기를 느끼게 해주었지 않았을까. 따뜻한 손길에 경직된 세포들이 첫사랑을 떠올리듯 부드러웠던 그 시절로 돌아가 회복하게 했으리라. 눈에 보이는 구조의 이상을 쫓아가는 오류에서 벗어난 치료법을 적용하지 않았을까. 기능을 잃은 세포들이 되찾은 사랑의 기억으로 병을 이겨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보이지 않아 살피기가 어렵다. 통증의 근원은 마음에서부터 인지도 모른다.  슬퍼도 울지 않았고 기뻐도 웃을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나를 본다.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른 채 바쁜 하루에 끌려 다녔다. 그런 사이에 마음이 고장 나서 신경안정제를 먹는다.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는 두려움에 심장이 말달리듯 달린다. 흔히 얘기 하지만 정작 실천하지 못하는 마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을 잊고 살아온 결과물 같아 씁쓸한 웃음이 가슴을 떠돈다.

나의 몸은 로딩 중인 인터넷 화면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다. 아직 화면이 열리지 않아 무엇이 시작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열리지 못해 꺼버리는 고장 난 컴퓨터가 되어버리진 않을까. 커튼이 쳐진 침상에 조용한 피아노 선율이 녹아들고, 쉼을 모르고 메말랐던 과거의 내가 축축이 베갯잇에 흘러내린다. 하루에 작은 틈이라도 시간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아쉬움에 가픈 숨을 뱉어내본다. 

운동을 시작했다. 몸 구석구석 작은 세포들이 투둑투둑 깨어나는 소리를 느낀다. 지금이라도 내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해 본다. ‘지금 화가 났구나. 걱정이 돼서 긴장이 되는구나. 좋은 일이 있어 기쁘구나.’ 로딩 중이던 뇌 세포들이 깨어나는 소리가 귀 속에서 바스락거린다. 거울 앞에 서서 내 몸 구석구석을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사느라 고생했다, 말하며 웃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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