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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dhi kim Mar 18. 2024

왜???, 참선에 몰입하다

-05 청년기 4-

-직관의 그 강렬함-

학사 편입으로 3학년에 들어간 그해 여름 방학에 동국대학교 산하 종립 중고등학교 불교 교양교과서를 편찬하는 프로젝트에 학과 여학생 현숙이와 함께 원고 교정하는 조교역할로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순천 송광사에 주재 중이시던 법정스님도 학과 교수들과 열흘 정도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다. 학과 교수들이 글을 쓰고 거기에 법정스님이 감수 추인하면 우리 조교들은 그 원고를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


법정스님은 일이 끝나면 스님이 주재하시는 암자로 올라갔다. 우리 조교 두 사람이 스님을 졸졸 따라가면 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에 한 번씩 국수를 삶아 흐르는 냇물에 훌훌 헹궈 주며 맛보게 하셨다. 갓 삶아 흐르는 물에 헹군 그 하얀 국수의 상큼한 맛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복을 자아냈다. 준희는 엄격하고 수행에 철저한 스님의 멋진 모습에서 다시 한번 불교에 대한 인상이 새롭게 와닿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원고 교정 일이 끝나는 마지막 며칠을 앞두고 준희는 위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더니 나중에는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별수 없이 물만 마시면서 며칠을 힘들게 지내는 터에 서울에서 고익진 교수가 오신다는 소식이었다. 고익진 교수는 의대를 다니다가 병이 나서 불교공부로 전향하여 교수까지 된 분으로 불교 기초 원시경전인 아함경의 12 연기(緣起) 8 정도(正道)를 모두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단계마다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풀어 해석한 분으로 당시 불교계에서 엄청난 칭송과 존경을 받던 분이었다. 


준희는 그의 아함경(阿含經) 강의를 열심히 들으며, 그가 강의시간에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으로 이어지는 12 연기법(緣起法)에서 어떻게 무명에서 행으로 이어지게 되는가 하는 주석식 명강의를 들으며 그 오묘함에 빠져들었다. 그는 매주마다 강의 말미에 각 단계에 대해 열심히 사색해 오라고 했다. 그다음 주가 되어 교수에게 과제물을 들고 가는 유일한 학생은 준희였다. 다른 학생들은 그냥 생각해 보라고 하신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한주 동안 열심히 사색해서 그 결과물을 교수님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학생은 항상 준희 혼자였다. 그럴 때마다 교수님은 귀기우려 들어주며 칭찬도 해주던 분이었다. 한 번은, 길을 걷다가 그가 말한다. 

 

이렇게 많고 많은 돌멩이 가운데 쓸만한 유용한 돌이 얼마나 있겠느냐? 세상에는 그런 돌이 필요한데 별로 많지가 않다. 준희, 너는 그런 돌멩이가 될 거 같다.”

이미 존경심으로 가득 차서 그의 강의에 충실했던 준희에게 그의 이 한 마디는 큰 자부심을 갖게 했다. 

 

그런 교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준희는 반가움에 왈칵 눈물이 치솟아 어쩔 줄 몰랐다. 그 감정을 추스르러 일부러 피해 혼자 근처 암자 쪽으로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몸이 허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져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기대어 울고 싶은 심경이었기 때문이다. 경사진 언덕 오솔길  한 중간에 큰 바위가 길 가운데 솟아 나 있는 게 보였다. 며칠을 굶고 물만 마신 터라 기운이 없어 길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있는 바위에 엉덩이를 기대어 쉬었다. 


가랑비가 왔다가 막 그친 축축하고 구름 낀 산골짜기 오솔길이었다. 그때, 눈앞에 긴 지네 두 마리가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한 생각이 번쩍 뇌리를 스친다. ‘아, 쟤 네들과 나는 같다!’ 그 지네들과 준희가 같다는 한 생각이 마치 번개를 맞은 것처럼 뇌로 전광석화 같은 빛살이 통과하듯 번~쩍 했다. 마치 큰 깨달음을 얻은 거 같았다. 기운이 없고 뭐고 다 잊고 나머지 프로젝트 날짜가 어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끝나 그 한 생각을 들고 서울 집으로 부리나케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목적은 지네와 준희가 같다는 이 확실한 명제를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아무리 외쳐도 누구도 납득하지 않으니 글로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자 한 생각, ‘왜 같지?’ 왜? 왜? 왜? 누군가 준희에게 설명을 요구한다면 준희는 그 이유를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준희가 직관적으로 느꼈을 뿐 도저히 다른 사람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준희는 명상에 들어갔다. 그 합당한 이유, “왜?”를 알기 위해서, 그래야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방식은 늘 학과 수업시간에 탄허 스님에게 들었던 참선이라는 방식이었다. 

 

송광사에서 촉촉하게 젖은 길 위를 지나던 두 마리 지네와 자신이 어떻게 같은 지를 직관으로 확실하게 알았다면 이제 그것을 설명으로 풀어내야 만했다. 준희는 또다시 창피함을 무릅쓰고 놀았던 소꿉놀이 때처럼, 그리고 경찰서에 끌려갈 정도로 초미니 스커트에 빠져들었던 때처럼 이제 선(禪)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하고는 뭔가 달랐다.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을 수도,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도 놓아버린 채, '왜?'라는 물음이 심신에 꽉 들어차 그 어떠한 일상의 행위도 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밤 낮 없이 선정(禪)에 취해 밥 먹는 일도 거르기 일쑤인 준희에게 엄마는 홍삼가루에 꿀을 개서 가져다주었다. 또다시 엄마의 헌신적인 묵묵한 배려가 시작되었다. 학교는 가야 하는데 먹은 것이 제대로 없고 밤새 잠도 못 자고 참선으로 지새웠으니, 기운이 없어 낮에는 똑바로 걷지도 못할 처지에 있는 딸에게 모친은 정성스레 꿀에 갠 홍삼가루 한 그릇씩 가져다주었다. 

 

당시 <유한락스>라는 새로운 상품이 세상에 나왔었다. 온갖 것을 소독할 수 있는 신물질이라 집집마다 이 제품이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유행을 탔다. 그 물질은 물에 섞어 써야 하는데 혹시 잘못해서 한 두 방울 옷에 묻기라도 하면 그 자리가 하얗게 변색되어 얼룩이 남았다. 

 

문제는, 준희가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짙푸른 감색 바지에 같은 색상의 티셔츠 그리고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일 년 열두 달 그 감색 옷과 바지를 매일 입고 다니며 추우면 그 위에 외투하나 걸쳤다. 그나마 그 바지에는 유한락스가 튀어서 흰색의 물방울이 여기저기 있는 색 바랜 바지다. 준희는 오로지 ‘왜 같을까?’ 불교식으로 “이뭣고”에 빠져 있었다. 학교 생활은 해야 하니 여전히 학교를 갔으나 학과 친구들과 집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일도 없이 그저 학교 집만 왔다 갔다 하면서 참선에 몰입했다. 그러다가 어느덧 졸업시즌이 왔다.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으로 가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준희에게 한 학년 후배 권 오민이 그런다. 

 

형, 졸업하면 뭐 합니까?”

그는 경상도출신의 괴짜 후배다. 가끔씩 자신이 깨달았다고 큰소리치며 기고만장하지만, 그 깨달음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오랜만에 만나 물으면 “그게 석 달 밖에 못 가 고민”이라며 심각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하는 괴짜였다. 당시 학과 분위기는 남학생이 여학생 선배에게 형이라고 불렀다.  

대학원에 가야지.”

준희는 의심 없이 대답한다.

권 오민이 다시 반박한다.

대학 졸업하면 대학원 간다는 건 습관에 젖어 그런 거 아닙니까? 뭣 때문에 습관에 이끌려 살아야 합니꺼?  대학원에 갈 당위성이라도 있습니꺼?”  

 

그의 이 한마디는 또다시 준희 가슴에 꽂혔다. ‘그렇지. 내가 왜 으레 대학원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의 말 대로 난 습관에 이끌려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아무것도 하지 말고 한번 놀아보자’


그날부터는 늘 해오던 참선이나 경전 읽기 그리고 사색도 모두 놓아 버렸다. 그러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두부를 사러 동네 가게로 갔다. 창신동 언덕에 있던 집에서 약간 아래로 내려가 있는 가게에 가서 두부 한 모를 사 들고 올라오는 길에 한 사람을 보았다. 


그날이 한겨울 몹시 추운 아침이었는데, 어떤 남자가 한줄기 햇빛아래 덜덜 떨면서 담장 한 모퉁이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 짐을 들어달라고 곧 부를지도 모를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지게꾼이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그만 손에 들고 있던 두부를 떨어뜨릴 뻔 한 걸 겨우 꽉 움켜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지게꾼의 모습에서 삶의 무의미! 허무! 덧없음! 이 절절하게 준희의 가슴을 후벼 파 버리는 것 같은 충격에 그만 주저앉고 싶을 정로로 온몸이 허물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제 준희는 더 이상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놀 수도 없고 요리도 할 수 없었다. 후배 권오민의 말을 실행해 보려던 결심은 그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 그날부터 또 밤낮없이 참선에 몰입해 들어갔다. 이제는 선정(禪定)의 시간이 더욱더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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