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여자, 남편은 런던 남자. 고만고만하게 생긴 아파트나 코딱지만 하게 풀만 가득했던 정원이 전부였던 우리에게 처음으로 텃밭이 생겼다. 배추, 무, 상추, 토마토, 청경채, 호박. 머나먼 고향에서 배를 타고 한 달 만에 도착한 씨앗 봉지를 움켜쥐고 나는 이미 수확한 농부처럼 기뻐했다. 뒷면을 보기 전 까진 만 그랬다.
뒷면은 이랬다.
첫째, 파종기를 앞당기거나, 생육초기에 이상저온을 만나면 추대할 수도 있으니 유의하세요.
빨간색으로 표시한 파종시기는 알겠는데 이상저온은 몇 도라는 거지? 당신, 그래도 심을 겁니까? 단단히 으르는 첫 줄이었다.
둘째, 초세가 강하므로 질소질 비료를 표준시 비량보다 절반 정도로 줄이고 재식거리는 충분히 넓히십시오.
한글에 돋보기를 댄 것처럼 글자가 길어졌다 구부러졌다 찌그러졌다 쪼그라졌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못 알아듣겠다. 그냥 포기하라는 둘째 줄이다.
셋째, 질소질이 많고 과습 하면..
에라. 이건 설명서가 아니라 심지 마시오!라는 경고장이었다. 그냥 심어야겠다! 흙과 물과 해를 만나면 잘 자랄 씨앗을 믿으니까. 생전 처음 만나보는 호미라는 걸 들고 땅 위로 길게 선을 그었다. 적당한 간격을 두면서 조그만 구멍을 팠다. 깨처럼 생긴 무 씨앗을 하나씩 넣었다. 손가락에서 미끄러져 두세 개씩 들어간 곳도 있었다. 다른 씨앗도 세줄 간격을 두고 골고루 뿌렸다. 가만가만 흙으로 덮었다. 마지막으로 물을 주었다.
오렌지 빛 해가 씨유 투마로우를 외칠 때면 손톱이 새까매진 두 손을 탁탁 털고 허리를 폈다. 조금씩 텃밭의 일들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해가 길게 머물수록 아끼는 내 마음과 함께 씨앗은 흙 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눈에 띄게 줄기와 잎새를 쭉쭉 뻗어나갔다. 다문다문 달팽이가 베어 먹은 구멍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주먹만 했던 초록잎이 내 얼굴 두 배만큼의 배추로 자랐다는 게 놀랍기만 했다. 배추의 꼭지를 쓱 베고서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었다. 소금을 솔솔 뿌리고 고춧가루와 간 마늘을 팍팍 넣으며 새빨간 겉절이를 만들었다. 그날은 김치 하나만으로도 와작와작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땅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맞았다. 이민 온 씨앗들을 똑같은 마음으로 품어 주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종자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씨 뿌리기가 서툰 나에게도 꾸지람 없이 천천히 기다려 주었다. 스코틀랜드로 이사 온 지 5개월이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땅만큼이나 사람들도 같은 마음으로 나와 우리 가족을 품어 줄 수 있을까. 어쩌다 이상저온을 만날 수도 있겠고 돋보기를 대듯 무슨 말인지 도통 못 알아들을 글과 말을 접하기도 할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달팽이라는 놈을 만나 온몸에 구멍이 날 때도 있을 테다. 항상 곱고 완벽하게 자랄 수만은 없다는 게 세상살이니까. '너 그래도 여기서 살 겁니까?'라고 단단히 으르더라도 나는 나와 우리 가족을 믿는다. 런던과 중국, 조선에서 살았던 것처럼 흙과 물과 해를 만나면서 잘 자랄 거다. 오늘은 스코틀랜드산 김치 하나로 온 지구를 얻은 듯 행복했다. 하루에 단 한 가지의 작은 행복이라면 우리에게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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