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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Jul 28. 2021

이민 온 씨앗들

나는 서울 여자남편은 런던 남자고만고만하게 생긴 아파트나 코딱지만 하게 만 가득했던 정원이 전부였던 우리에게 처음으로 텃밭이 생겼다배추토마청경채호박나먼 고향에서 배를 고   만에 도착한 씨앗 지를 움켜쥐고 나는 이미 수확한 부처럼 기뻐했다 뒷면을 기 전 까진 만 그랬. 

뒷면은 이랬다. 

첫째, 파종기를 앞당기거나, 생육초기에 이상저온을 만나면 추대할 수도 으니 유의하세요.

빨간색으로 표시한 파종시기는 알겠는데 이상저온은  도라는 거지? 당신, 그래도 을 니까단히 으르는 첫 이었다.

, 초세가 하므로 질소질 비료를 표준시 비량보다 절반 정도로 줄이고 재식거리는 충분히 히십시오.

한글에 보기를  처럼 글자가 길어졌다 부러졌다 그러졌다 그라졌다.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듣겠다. 그냥 기하라는 둘째 줄이다  

, 질소질이 고 과습 하면..

에라. 이건 설명서가 아니라 심지 마시오!라는 경고장이었다. 그냥 심어야겠다! 흙과 물과 해를 만나면 잘 자랄 씨앗을 믿으니까. 생전 처음 만나보는 호미라는  고   길게 을 그었다당한 간격을 면서 그만 구멍을 처럼 생긴 무 씨앗을 하나씩 었다가락에서 미끄러져 두세 씩 들어간 도 있었다. 다른 씨앗도 세줄 간격을 두고 고루 뿌렸. 가만가만 으로 었다. 마지막으로 을 었다. 

 

오렌지  가 씨유 마로우를 외칠 면 손톱이 까매진 두 손을 탁 고 리를 . 조금씩 텃밭의 들이 에 배기 시작했다. 해가 길게 머물수록 아끼는  마음과 함께 씨앗은 흙 으로 이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에  줄기와 새를 쭉 어나갔다. 다문다문 달팽이가 어 은 구멍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주먹만 했던 초록잎이 내 얼굴 두 배만큼의 배추로 자랐다는 게 놀랍기만 했다. 배추의 지를  베고서 르는 물에 깨끗이 었다. 소금을 솔 뿌리고 고춧가루와 간 마늘을 팍 넣으며 새빨간 절이를 만들었다. 그날은 김치 하나만으로도 와작와작  한 기를 딱 해치웠다. 

 

땅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맞았. 이민 온 씨앗들을 똑같은 마음으로 어 주었다. 어디서 는지 어떤 종자인지요하지 았다. 씨 뿌리기가 서툰 나에게도 지람 이 천히 기다려 주었다. 스코틀랜드로 이사 온 지 5개월이 었다. 스코틀랜드의 땅만큼이나 사람들도 같은 마음으로 나와 우리 가족을 품어 줄 수 있을까. 어쩌다 이상저온을 만날 수도 있겠고 돋보기를 대듯 무슨 말인지 도통 못 알아들을 글과 말을 하기도 할 것이다슬픈 일이지만 달팽이라는 을 만나 온몸에 구멍이 날 때도 있을 테다. 상 고 완벽하게 자랄 수만은 없다는 게 세상살이니까. '너 그래도 여기서 살 겁니까?'라고 단단히 으르더라도 나는 나와 우리 가족을 믿는다. 런던과 중국, 조선에서 살았던 것처럼 흙과 물과 해를 만나면서 잘 자랄 거다. 오늘은 스코틀랜드산 김치 하나로 온 지구를 얻은 듯 행복했다. 하루에 단 한 가지의 작은 행복이라면 우리에게 충분하다.


텃밭배추로 만든 겉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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