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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Apr 23. 2022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우리

틸리에 산다

틸리는 1950년대만 해도 탄광 마을로 알려졌다. 집에서 가까운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버려진 갱도 옆으로 옛 사진 몇 장이 그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광부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허리만큼 오는 풀들만 무성하게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옛날의 탄광은 사라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게 있으니. 그것은 양들의 식탁인 푸른 초장과 마을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오킬언덕이다. 산 꼭대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치 물고기 뼈처럼 생겼다. 큰길을 중심으로 가시 같은 집들이 양 옆으로 가늘게 뻗어 있다. 


틸리에 봄이 왔다. 봄을 알리는 건 활짝 핀 분홍 벚꽃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 엄마를 애타게 찾는 소리. 바아아아.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뜬 새끼양의 울음소리. 양들은 바위틈을 비집고 비탈진 산 위로도 잘만 올라간다. 사람이 밟지 않은 곧고 신선한 풀들을 먹는 틸리 양들은 돼지와 맞먹는 토실토실함을 자랑할 수밖에 없다.   


틸리에 살면서 탄생된 우리들만의 게임이 있다. 이름을 붙이자면 '숨은 똥 찾기' 산책하면서 장 보러 가면서 굴러다니는 똥을 찾고 주인을 맞추는 거다. 와이파이가 없어도 흥미진진하다. 토끼 똥은 완두콩만 한 크기로 둥글둥글하고 검은 반면에 사슴 똥은 토끼 똥과 얼핏 비슷하지만 해바라기씨처럼 뭉쳐있다. 또한 똥 안에 다 소화되지 못한 열매가 있어서 울긋불긋하다. 흔한 양 똥은 커피콩과 비슷하고 소 똥은 가끔 두더지가 땅을 파면서 옆으로 쌓인 흙이랑 헷갈릴 때가 있지만 파리나 벌레가 있나 없나를 살펴보면 구분이 금방 간다. 운전할 때 운전자를 난감하게 만드는 건 말똥이다. 질퍽하게 도로 위로 한 바가지, 그것도 여기저기서 싸고 가니 똥 피하느라 핸들을 잡고 디스코를 춰야 한다. (똥 얘기는 여기까지.)


틸리에 살면서 비둘기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집 뒷마당에 자주 놀러 오는 비둘기는 우드 비둘기(wood pigeon)로 한국에서 봤던 집비둘기보다는 조금 크고 하얀 털이 칼러처럼 목 옆으로 붙어있다. 남은 빵 몇 조각을 뒷마당에 뿌려 두면 일분이 지나지 않아 새들이 몰려온다. 제일 먼저 빵 부스러기를 본 까치와 비둘기는 전깃줄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여기에 빵이 있어." 소리쳐 친구들을 부르는 것 같다. 한두세 마리가 더 모여들고 나면 땅 밑으로 멋진 날갯짓을 하며 내려와 즐겁게 먹는다. 크기가 작은 참새와 찌르레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바쁘게 쪼아 댄다. 까마귀는 까악 까악 먹을 때도 제일 시끄럽다. 오렌지빛 턱시도를 입은 로빈은 제일 마지막에 쓰윽 등장했다가 남겨진 부스러기를 여유 있게 먹고 총총 퇴장한다. 오늘 만찬에 참여했던 새들을 보면 모양새나 색깔, 크기, 걷는 모양이나 먹는 속도, 심지어는 먹는 소리마저 모두 달랐다. 그래도 한 가지 닮은 점을 꼽으라면 모두가 먹을 만큼 적당히 먹고 날아갔다는 점이다. 물론 먹이가 많지 않다면야 목숨 걸고 싸웠을 수도 있다. (뿌려진 빵이 배부르게 먹고도 남을 만큼이라 그랬을 수도 있겠다.) 오늘 새들의 아침식사는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의 이웃이 옆에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듯이 질서 있고 예의를 갖춘 모습이었다.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우리.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는 똥의 종류만큼 좁은 뒷마당에서 빵 조각을 즐기는 새의 종류만큼이나 사람에게도 다양한 삶이 있다. 저마다 서로의 이웃을 기억한다면 초록 지구의 아름다움이 더 오래가지 않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왼) 오킬힐                                        중간) 아이들 학교가는 길                                 오) 벌레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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