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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ine Oct 04. 2024

어느 날 내 삶이 사라졌다(8)

- 7년간의 자율신경실조증 투병기 -

2장.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


1) 어릴 적 트라우마


'남지'라는 곳의 시골이었다..


저 멀리서 고모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촌오빠는 대학생이었다. 아마 방학이라 고향으로 온 듯하다.

그때 내 나이는 3세에서 6살 정도로 추정된다. 아직도 그때 당시 장면이 사진을 찍어내듯 머릿속에 선명하다.


' 사촌 오빠도 엄마, 아빠가 있는데, 왜 난 없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며, 허공을 향해 혼자 속삭였다.


"고모, 우리 엄마, 아빠는 어디에 있어요? 아님 없어요? 왜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고모랑 살고 있어요?"


고모는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저 멀리서 오고 있는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 짓고 있었다. 야속했다.

아직도 선명히 느껴진다. 그때의 서러움과 외로움.. 이 온 우주에 나만 혼자 쓸쓸히 내쳐진 기분.. 항상 내 내면에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것들이 사로잡고 있었다.




... 내가 고모댁에 맡겨진 이유는 이러했다.


할아버지는 일본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셔서, 건축 사업도 하실 만큼 꽤 유능하셨다고 한다. 사업도 잘돼서, 집 안 살림을 맡아주시는 분을 고용할 정도로 아버지 집안은 유복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학생 일 때 할아버지 사업은 부도를 당했고, 집안은 많이 어려워졌다.


큰 아버지는 사시 공부 중이셨고, 차남인 아버지가 은행에 입사하여 모든 집안 경제를 책임지셨다. 어머니는 그 당시 시부모님, 아버지, 그리고 학생이었던 5명의 삼촌, 고모 살림을 혼자 하시면서 나와 남동생 육아까지 도맡아 하셨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결국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아버지와 상의 끝에 장녀인 나를 '남지'에 있는 고모댁에 보내기로 한다.


내 나이 세 살 때이다. 그때 당시 우리 부모님은 내가 많이 어려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훗날 어머니는 '사회 복지'를 공부하신 후, 3살 아이의 인지 상황에 대해 알게 되시고선 진심 어리게 사과하셨다..


지금은 그때 당시 부모님이 많이 힘드셨을 걸 이해한다.

그러나 이전엔 이러한 부모님의 결정이 나에겐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고모와 함께 살고 있을 당시, 아무도 나에게 부모님 존재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고모에게 물어봐도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 나한테 알려주면 '당장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가겠다'라고 떼를 쓸까 봐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난 그때 당시 부모님 존재를 알지 못했고, 고아인가 보다 했다.


그때 당시 부모님은 나를 맡기는 대신 고모한테 일정 금액도 보내드리고, 부모님이 대학생인 사촌 오빠의 숙식도 해결해 주셨다. 어머님은 나를 보내고 하루도 속 편하게 지낸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아이에게서 그때는 부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이인 것을..


결국 나는 항상 내면에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결핍에 매여 살았고, 이 세상에 나만 혼자인 극강의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나에겐 '분리불안'이 있었다.


고모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아이지만 어른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여부는 본능적으로 알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아이에게 있어서 사랑을 받는 건 곧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난 아침을 먹으면 동네 아이들과 놀며 해가 저야 고모댁에 돌아왔다.

어느 날은 고모가 방학 때 잠깐 내려온 사촌 오빠에게 나들이로 워터파크를 가자고 했다.

나는 괜스레 옆에서 들떴다. 처음 가보는 곳이니 어떤 곳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워터파크에 들어섰고, 난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을 구경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분도 잠시 뿐..


나는 내 모습에 한없이 위축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예쁜 수영복에 예쁜 꽃무늬 수영 모자를 쓰고 있는데, 나에겐 수영복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한눈에 나는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금세 울먹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뭔가 서럽고 슬픈 감정이 저 밑바닥부터 올라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 고모.. 나 집에 갈래요! 여기 있기 싫어요!... 엉엉엉.."



그렇게 서럽고 슬픈 마음에 작은 몸부림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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