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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Apr 19. 2024

사랑의 치유

둘은 오늘 밀양 사과 농장으로 가고 있다. 아버님이 많이 놀랄 것 같아 휴가를 얻었다며 미리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어제 오후에는 수산 시장을 방문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굴비와 싱싱한 전복, 그리고 농장 인부들을 위해 횟감과 양주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경윤도 모처럼 영진과 같이 아버지를 찾아간다는 것에 말할 수 없이 뿌듯하고 행복해진다. 누구보다 둘의 동행을 반기는 것은 아버지일 것이다.     

“영진 씨! 나, 너무 좋아서 심장이 두근거려.”     

아침 일찍부터 출발 준비를 마친 경윤의 표정이 환해져 있었다. 아빠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니 지난밤에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제 전화로 영진과 같이 간다고 했더니,

“그래. 잘했구나!”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감격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말은 못 했어도 둘이서 다정하게 농장에 오는 날을 항상 소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경윤은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고통을 모른 척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나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는 자식의 심정이 이렇게도 마음이 아픈 것일 줄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도착 시간을 미리 연락을 드렸기에 아버지와 이모는 진작부터 농장 입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시기 농장에는 빨갛게 익은 사과를 수확하기도 하지만 “사과 따기 체험”을 하느라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바쁜 날들의 연속이다.     

“어서 오너라! 정확한 시간에 와주었구나!”     

“어서 와..... 고생했지. 얼른 들어가서 밥 먹어....”     

아버지와 이모는 참으로 오랜만에 둘이 같이 찾아온 것에 흐뭇해했다. 마음 같아서는 늘 곁에 두고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다.     

“하는 일은 잘 되어가고?”     

“네! 언제나 걱정해 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시는 아버님의 손길로 인해서 뜻대로 잘    되어 가고 있습니다.”    

“허허........... 내가 마음뿐이지 도움을 주는 것이 있나?

 그래도 잘 되어간다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기쁘다. “     

아버지는 한마디라도 곱게 말을 하는 아들 같은 사위가 더욱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럽다. 또한, 영진은 지금까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늘 따뜻하게 대해주시던 아버님과 이모님의 인자한 마음을 늘 기억하고 있었다. 이모는 영진에게도 항상 당신의 자세를 높이시는 것이 아니라 낮춘 자세로 대해주셨다. 

언제 어느 때고 마음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영진의 방을 만들어 놓고 늘 편안한 마음으로 올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경윤이 오랜만에 이렇게 보니까 정말 곱고 아름다워서 마음이 흡족하네!”     

“아니에요. 이모님. 저도 많이 늙었어요.”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가 영진을 보면서 손을 꼭 잡았다.     

“고맙다. 이렇게 자주 찾아주면 좋겠구나!”     

“네! 그렇게 하도록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다 네 덕분이다.”     

“제가 고맙죠. 늘 가슴 깊이 고마움을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영진은 다시 한번 아버님과 이모님의 마음이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다음 날, 농장 일을 돕겠다는 영진을 한사코 만류하는 바람에 집안의 답답한 공기보다는 밖의 시원함이 경윤을 위해서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굽이굽이 이어진 계곡과 에메랄드 빛 호수가 아름다운 근교로  둘이 소풍 나왔다. 아침에 몸만 빠져나오기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버님은 가벼운 피크닉 바구니, 휴대용 쿨러백, 접이식 테이블 등을 차에 실어 주시고 이모님은 가벼운 간식부터 정성 가득한 음식까지 손수 만들어 주셨다.      

“밖에 나오니깐 좋지?”     

“가슴이 시원해요.”     

“저 넓은 들판을 봐. 벼가 서서히 누렇게 익어 황금빛 물결을 이루어 가고 있으니 참으로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상 같아.”   

“응. 맞아. 어디 곡식뿐이던가요?

 사과 농장도 마찬가지고 밭의 작물들도 이렇게 영글어진 것을 보고 있으니 편안해. 

 야외 나온 게 참 잘한 일인 것 같아.”     

“우리 이다음에 여기 와서 아버님과 같이 살까?”     

“난 좋은데.... 영진 씨가 여기서 살 수 있을까?”     

“농장 일은 배워야지. 이렇게 시원하고 상큼한 공기가 있는 곳에서 조금씩 내 손으로  가꾸어 가며 살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경윤은 영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그의 사랑이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게 점점 커지는 느낌이 들고 자신의 삶에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연을 체험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도시에서 살면서 어렸을 때부터 공부 이외는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를 직접 수확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을이 오면 날씨가 좋을 때나 주말에는 사과 농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평일의 2~3배로 많았다. 영진이 오늘 맡은 일은 농장 체험을 하러 온 사람들을 상대로 사과 따는 방법을 설명해 주고 직접 따는 시연과 함께 사과 잼 만들기 체험을 보이는 것이다.     

체험객의 대부분은 연인이나 친구, 가족과 함께 찾아오는 경우로 영진이 오늘 하루아침 일찍부터 농장을 안내한 팀만 해도 열셋 팀이다. 그나마 오후부터는 경윤이 일손을 돕겠다며 나왔지만, 예쁜 농장주의 안주인이라며 짓궂은 남성들의 농담을 받아주고 포토존에서 사진 모델이나 되어 줄 뿐 얄밉게도 영진의 일에는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았다. 다만, 가끔 영진에게 보내는 경윤의 뜨거운 눈길은 전류처럼 흘러 배터리가 방전된 영진의 가슴을 흔들며 새롭게 충전해 주었다.     

농장 한쪽에는 넓은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농장 사람들이 식사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아빠가 이곳에 카페를 지을 계획인가 봐.”     

“언제?”     

“내년 정도로 생각하시던데....”     

“전망도 좋고 괜찮은데..... 주차장 할 곳이 마땅치 않을 것 같아.”     

“그래서 아빠가 저~~~~ 쪽 땅 주인과 협상 중이래.... 가격만 맞으면 바로 사실 거야”     

“그럼 너무 좋지... 딱 좋은 것 같아.”     

사과는 여러 가지 요리에도 많이 이용되기도 하지만 주스는 기본으로 하고 디저트, 간식, 샐러드처럼 다양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카페를 열어 이런 것들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따사로운 가을날의 오후가 빨간 사과처럼 맛갈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영진은 농장 사람들과 장비와 도구들을 정리하고는 바구니를 하나 챙겨서 농장에서 약간 벗어난 야산으로 경윤을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지난해 이맘때쯤 혼자 농장을 찾았을 때 봐두었던 구절초 군락지가 문득 생각났던 것이다. 

영진의 예상대로 올해도 그곳에는 하얀색과 연분홍색의 구절초가 어김없이 만개해 있었다. 구절초 꽃을 하나 따서 경윤의 얼굴에 갖다 대었다. 가지런한 꽃잎이 여리면서도 단아한 모양새가 지금 웃고 있는 경윤을 닮았다고 말했다. 

꽃이 달린 풀 전체를 차로 우려 마시면 위장병에 좋다며 부지런히 꽃잎을 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서로의 사랑도 바구니에 가득 채웠다. 그렇게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다.     

영진은 며칠 동안 농장 일을 하느라 이미 반은 농부가 되어 있었다. 다 같이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깜빡 졸고 있던 영진을 깨워 방으로 들어섰을 때는 밤 10시가 되어갈 무렵이다.      

“불 끌까?”     

침대에 누운 영진을 보며 경윤이 물었다.     

“자기 마음대로 해”     

그러자 경윤은 불을 그대로 켜둔 채 입고 있던 가운의 끈을 풀고는 옷걸이에 걸었다. 곧 팬티와 브래지어 차림이 되었다. 영진은 오랜만에 경윤의 몸이 여자의 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연고를 발라 주었고 때로는 아로마 오일로 마사지해 주었다. 항상 20대처럼 윤기가 빛났던 피부가 이제는 좀 처진 듯했지만 뱃가죽은 여전히 단단해 보였다. 그때 경윤이 등을 돌리며 말했다.     

“브래지어 좀 풀어주세요.”     

자기가 충분히 풀 수 있겠지만 일부러 영진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영진이 웃으며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었다.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탐스러운 젖가슴이 영진의 손에 절반쯤은 잡혔다. 경윤의 아름답던 가슴도 짓궂은 세월의 흐름에 못 이겨 살짝 쳐진 듯 보였다. 경윤이 영진에게 몸을 기댔다가 입술에 키스를 해왔다. 실로 오랜만의 뜨거운 키스였다. 그리고 이내 경윤의 가쁜 호흡소리가 울렸다. 영진이 잠깐 입을 떼고 물었다.   

“괜찮겠어?”     

그러자 경윤이 대답 대신 키스를 하며 자신의 팬티를 끌어내리고 영진의 옷도 벗겼다. 이제 둘은 알몸이 되었다. 영진은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경윤을 눕혔다. 그리고 가볍게 키스를 하고는 입술을 목덜미로 내렸다. 오늘은 경윤의 몸 상태를 생각해 최대한 가볍게 해야 할 것이다.      

경윤이 눈을 감고 얕게 신음을 뱉으며 영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입술이 젖가슴에 닿을 때 경윤의 신음이 갑자기 높아진다. 아래층 거실에서는 아버님과 이모님이 TV를 보면서 며칠전 씻어 말린 못난이 사과를 잘게 조각을 내고 있을 것이다. 

단호박과 같이 믹서기로 곱게 갈아 찹쌀가루를 넣고 살살 저어가며 끓이면 달디단 사과호박죽이 만들어진다. 경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환장하게 좋아했던 죽이라고 했다.     

영진을 기다리는 경윤의 두 눈이 애처롭다. 경윤에게는 영진과 같이 사랑을 나누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 중의 하나인 것이다.

얼른 넣어 주기를 기다리면서 온몸이 비틀릴 지경인데도 영진은 삽입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영진 씨. 왜 안 해?”     

“너 아플까 봐.”     

영진이 웃으며 말했다. 경윤의 이마와 콧등에는 벌써 작은 땀방울이 돋아나 있다.     

“괜찮아. 제대로 해줘.”     

우리 나이도 이제 곧 40이 될 것이다. 너와 난 4년을 같이 살았고 3년은 헤어져 살았지만, 그 3년의 세월 동안 가끔은 잊기도 했었고 일부러 잊으려 노력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도 없었고 잊힌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경윤의 붉디붉은 이 골짜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곳이다. 혀를 내밀어 살짝 닿기만 해도 그 맛은 또 얼마나 달고 오묘했던가! 영진은 보석처럼 빛나는 경윤의 몸을 서서히 그리고 정성을 다해 어루만지고 핥아주었다.      

한참 동안 다리를 벌리고 조용히 느끼기만 하던 경윤은 연분홍 구절초 꽃잎 사이로 흘러내리는 꿀물을 빨아들이자 숨을 헐떡이며 집안이 떠나갈 듯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영진이 입으로 덮어 그녀의 입을 막아보았지만, 흥분된 경윤의 터지는 신음소리는 점점 강렬해지다가 마침내 몸을 합치게 되자 역 플랫폼으로 막 들어오는 기차의 기적소리만큼이나 길고도 높아져 갔다.      

내일 아침이 오면 아버님과 이모님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민망해서 어떻게 대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한밤중 갑작스러운 신음소리에 놀란 사과나무 위의 새 떼가 놀란 듯 푸드덕 날아오르는 바람에 대롱대롱 매달렸던 사과도 덩달아 놀라 몇 개쯤은 아마도 땅에 떨어졌을 것이다. 

오늘 밤 경윤의 마지막은 강력한 폭발음과 화산이 터지는 절정을 보였다. 그녀의 몸 위에서 옹골차게 끌어안고 자기 몸 안으로 분사되고 있는 영진의 새하얀 수액을 느꼈을 경윤은 자신은 알 수 없었겠지만 늘어진 몸은 상당히 오랫동안 사지를 떨었다.     

아래층 거실에서는 더 이상 TV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님은 급하게 이모님을 모시고 댁에 태워주러 마을까지 내려갔을 것이다. 경윤은 가쁜 숨이 정리되었을 때 그제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어떡해! 영진 씨! 아빠랑 이모님이 우리 소리를 다 들었을 텐데....”     

영진이 피식하고 웃고는 땀으로 범벅이 된 경윤의 얼굴과 몸을 물로 적신 수건으로 부지런히 닦아 주고 있을 때 바깥에서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버님의 마른기침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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