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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Apr 19. 2024

영원한 이별

겨울 지나가고 나니 봄이다. 개화 시기에 맞춰 각양각색의 봄꽃들이 지천에서 피어났다. 그리고 세월은 물 위에 떠 있는 부평초처럼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흐르다가 꺼지고 만다. 

경윤은 세월의 무게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밀양의 농장에서 올라온 후 사흘이 지났을 무렵의 저녁나절, 세라가 영진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다. 경윤이 현수에게 성폭행당한 후, 같이 병원을 찾았을 때 유방의 염증이 심해 일부 조각을 떼어내 조직검사를 한 결과,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되어 수술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단다.     

처음 의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깊은 절망감에 쌓여 있던 영진이 의사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선생님! 정말 치료 방법이 없을까요? 

 무슨 수를 써도 좋으니 살려줄 방법은 없나요?“     

“네. 죄송합니다.”     

의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막무가내로 매달려 애원을 해도 그리고 다른 병원을 찾아가 봐도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도 들었지만, 영진은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찾아다녔다. 

세상에는 “만약에~~”라는 가정도 있고 기적이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인생이 꼭 정해진 길로만 가는 것도 아니니깐......     

항암 치료도 거부했던 경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몸이 아파 나중에는 혼자서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버텨내 보았지만, 스스로도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경윤을 잘 알고 있었던 영진은,      

“넌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난 당신을 믿어.”     

초기에는 영진의 말을 들을 때마다 경윤은 더 힘을 냈고 희망을 갖기도 했다.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받는 거에 익숙한 사람이 있다면 베풀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경윤은 자신이 전자라면 남편 영진은 후자라고 생각했다.      

“알았어. 힘을 낼게....”      

경윤은 연구원을 그만두고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영진의 믿음을 깨고 쉽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영진과 더 많은 날을 사랑하면서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그의 앞에서는 힐링이 되고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렇게 둘은 밀양의 사과 농장에서 하루종일 붙어 있으면서 그동안의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행복해했으며, 자신이 얼마나 영진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아 가슴이 메어왔다.     

“자기야. 이제 서야 자기 아팠던 마음을 알 것 같아.”     

“지난 일을 뭘 새삼스럽게.....”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면 좋겠어. 정말 잘해주고 싶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아. 기대하면서 살 거야. 난.....”     

희미한 미소를 띤 채 경윤을 바라보았다. 더 나빠지지 않고 이 상태로만 계속 이어지는 것이 지금 영진의 유일한 꿈이고 희망이었다.      

사람은 평균적으로 27,375일을 산다. 햇수로 따진다면 75년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렇듯 대부분의 날들이 평범하고 무심하게 지나간다. 특별히 기억될만한 좋은 날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슬픈 날도 있을 수 있다. 

찰스 다윈은 "언제든 서로 돕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개체가 많은 종이 거의 모든 종을 누르고 승리를 자치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선택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자연은 늘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의 변하지 않는 사랑도 바로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삶의 영역을 점차 확대해 갈 것이다.      

영진은 경윤을 위해 이벤트를 많이 했다. 목걸이를 구매해 이쁘게 포장하고 마음을 담은 손 편지까지 적어 경윤에게 주기도 했고 들꽃을 모아 미니 꽃다발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작은 선물에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발품을 팔았다. 때로는 경윤이 좋아하고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거나 영화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것은 경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영진의 또 다른 방식이다.

그리고 둘은 조만간 같이 대산의 바다를 보며 밤을 지새우자며 호텔을 따로 예약해 두었다.     

그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경윤은 건강이 점점 더 나빠져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몸은 몰라보게 야위었고 반짝이는 두 눈은 생기를 잃어갔다. 영진과 아버님은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경윤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사과 농장에 가고 싶다는 경윤을 위해 퇴원을 시켰다. 그날따라 병실 창밖으로는 비가 강하게 내리고 심한 바람이 불었다. 걱정하는 아버님과 영진에게 경윤은 검사하느라 지쳐 있으면서도,      

“걱정하지 마. 의사 선생님께서 진통제에다 영양분까지 다 챙겨주셔서.....”     

영진은 경윤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다.     

“만약 신이 있다면 경윤을 살려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녀와의 마지막 밤은 영진이 농장에서 아버님과 같이 맥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은 뒤 조금 일찍 잠이 들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영진은 고이 잠든 경윤의 얼굴을 보면서 살며시 머리를 쓸어 올려주며 자신의 입술을 대었다.     

“영진 씨”     

경윤이 눈을 뜨고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영진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깨워서....”     

“괜찮아..... 영진 씨.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철없이 마음 아프게 하고 힘들게 만들었어....”     

“무슨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난 정말 네가 있어 살아갈 수 있었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은 영진 씨 만난 거야. 사랑해.....”     

“너와 나 둘이서 백 년은 고사하고 딱 10년만 살아봤으면 좋겠어.”     

이내 울먹인 목소리로 경윤이 말했을 때 영진도 같이 울면서 경윤의 손을 잡아 자신의 볼에 갖다 대며 대답했다.

경윤에게서 풍기는 체취가 정겨웠다. 그녀의 체취는 어떤 향수보다 훨씬 그윽하고 싱그러웠다. 그날 밤 영진은 밤새도록 노란 나비 한 쌍이 농장의 사과나무꽃을 쫓아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경윤의 투병 기간은 고작 6개월 남짓으로 짧았다.      

장례를 치른 후, 경윤의 몸은 화장을 했으며 소중한 재는 영진의 애달픈 눈물과 함께  농장의 사과나무 밑에 뿌렸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죽음보다 혼자 남겨질 영진이 외로울까 봐서 더 걱정을 했다.

경윤의 마지막 길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언제나 밝고 활달했던 성격의 그녀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아름다운 그녀의 마지막 길을 끝까지 배웅했었다.     

세라와 은선, 그리고 대산 미술관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있었고 경윤과 미술을 같이 공부했던 이들도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찾아왔었다.

환경단체 사무국장이었던 정미는 남편 기윤과 같이 찾아와 영진을 위로했으며, 지난 연말 결혼식을 올린 후, 서울에서 살고 있던 은원은 혼자 내려와 밤을 꼬박 새우며 비통한 눈물을 뿌리고 갔다.     

그리고 현수와 동수는 각각 1심에서 징역 3년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서울의 어느 교도소에 수감 중이며 후에 경윤의 소식을 듣게 된 현수는 충격을 받아 기절까지 했다고 한다.     

소식을 듣고도 직접 참석하지 못한 연아는 영진에게 전화를 해 안타까움에 한없이 울었다.     

이제 연구원 생활을 그만둔 영진은 대산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 농장에서 거주하며 곧 완성될 카페 건립과 메뉴 개발에 온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동안 사과 농장으로만 불리던 농장을 이제는 『윤이네 농장』으로 이름을 짓고 곧 영업을 시작할 카페는 『윤이의 꽃』이라며 이름을 지었다. 

윤이 꽃은 사과나무꽃을 사랑한 경윤의 꽃이라는 뜻이다.      

나 슬픈 것은

네가 없는데도

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

끼니 오면

입 안 가득 밥을 떠 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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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 진실로 슬픈 것은

언젠가 너와 내가

이 뜨거움 까맣게

잊는다는 일이다.

(이별 이후-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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