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흔적
달리기에 관한 글을 또 쓸 줄 은 전혀 몰랐다. 과거 나의 모습에는 달리기라는 것을 파악할 작은 틈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틈은 빛조차 통과할 수 없던 존재. 대기층 조차 없는 무無의 공간이었다. '달리기'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와는 다르게 현재 신체 여러 부분에서 달리고 있는 그리고 달렸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머리 속에도 많은 흔적이 남고 있다. 가령 1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만나는 사람이 있다 하면 - 나에겐 그 정도 사이가 많다. 딱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사이. 참으로 부담이 없는 사이이다. - 살이 많이 빠졌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버린다. 그리고 그 또는 그녀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그들은 느끼곤 한다. 나에게 달리기로 인한 변화가 1년의 간격으로는 꽤나 큰 벌어짐이 생긴 것이다.
처음 쓴 달리기에 대한 글은 달림을 시작하는 나의 모습에 대한 토로가 있었다. 달리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서의 감정이 토하듯이 나온 것이다. 술에 거하게 취한 상태여도 구토를 대차게 하고 나면 잠시 정신이 차려지는 것처럼. 첫 달리기 글 이후에 달리기라는 주제에 대한 글은 조금 가볍게 느껴진다. 몸이 가벼워진 만큼 이 주제에 관한 글 역시 한층 무게가 덜어진 듯하다. 무게가 덜어지니 글도 한층 경쾌해진 듯하다. 너무 진지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달리기란 지극히도 일상이다. 변화의 시작인 2022년 8월. 달리기라는 것을 시작했고, 2023년은 달리기의 양적인 것을 늘렸던 해이다. 2024년의 시작인 지금의 달리기는 양과 질 적인 측면에서 꽤나 수면 위로 드러난 상태이다. 1월 14일 기준으로 1월간 125km를 달렸다. 현재로선 누구에게나 달리기를 한다고 말할 수 있고 말뿐만이 아닌 나의 모든 곳에서 드러난다. 2년 차에 접어든 만큼 전신에 흔적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래 건너뛰어도 한주 전체를 쉰 적이 없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 싶으면 그저 달린다. 사실 여유가 없어도 비집고 비틀어내서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이제는 달리기를 나와 떼어놓고는 나를 이야기할 수 없다. 지극히 온전한 일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일상인 것이기에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고 달린 것이 아니라 일단 달리고 온다. 마치 밥을 먹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삶을 살기 위해 요리하듯 달린다. 달리기라는 행위가 나에겐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0~15km 정도를 달리면 하루에 1시간~1시간 반정도를 할애해야 된다. 그럼에도 시간이 아깝거나 그러지 않는다. 이제는 오히려 더 뛸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바란다. -아기를 키우기에 시간을 배정하는 것이 꽤 만만치 않다.-
일상이 되어버린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당연히 건강이다. 맥주와 생라면 그리고 과자를 매우 좋아하고 밥도 항상 고봉밥을 먹을 만큼 군것질과 탄수화물을 오랜 시간 사랑했고 사랑한다. 그런 식습관에는 역시나 불필요한 살들이 너무나도 쉽게 달라붙는다. 그렇게 붙은 살들은 참으로 끈질기게 붙어있다. 어느 순간 내 몸이 꽤 무겁다는 감각이 생겼었다. 야식 역시 일상이었기에 아침이 되어 기상하는 것도 관절과 몸이 쑤시고 전해질의 불균형 - 물섭취 부족 - 혹은 과한 설탕의 섭취로 붓기도 심했다.
그런 것을 뒤집어엎고자 끊임없이 달린 것이다. 달리는 것이 누적되다 보면 몸의 변화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몸의 변화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처음 눈에 띄게 변화했던 것을 느낀 때가 달리기를 시작한 달이었다. 떨어져 나가야 할 살들이 생각보다 가볍게 떨어져 나가 버렸다. 마음의 고였던 피와 고름들 역시 떨어져 나가 버린다. 그런 경험을 아마도 달리는 사람들은 해보았을 것이다. 내가 한 것이지만 갑작스레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매우 좋은 방향으로. 그것이 달리기의 진짜 이로운 점이다.
두 번째로는 재미있어서였다. 달리기에 관한 첫 번째 글에서 얘기했지만 달리기로 누군가와 비교가능하다면 일반인 사이에선 꽤 수준급인 편이었다. 언제나 말이다. 그만큼이나 내가 잘 달린다는 감각은 충만했기에 일상이 된 달리기에 있어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달린다. 그래서인지 달릴 때 너무나도 신난다. 신이 난 나머지 오버된 페이스를 이루기에 일쑤다. 그럼에도 일단 지면을 딛고 튀어나가는 감각이 너무나도 좋다. 치고 달리는 느낌도 너무 좋고 오버페이스가 되는 느낌도 사랑스럽다. 재미있는데 건강까지 변화하고 있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달리기라는 것을 일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작년 내가 제일 잘한 일생의 업적이라 생각 들었다. 흥미라는 것,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아무리 내 몸에 좋은 것이라도 실제 행하는 자신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오래가기는 힘들다. 오래가더라도 곤욕이다. 그래서인지 흥미라는 요소는 어떠한 행위를 - 인체가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들 - 지속해 나갈 힘을, 포기하지 않을 끈기를 선사한다. 이제는 달리러 나가기 전 날씨를 확인하거나 그에 대비하는 옷을 챙겨 입을 때부터 굉장히 신이 나있다. 단순히 뛸 생각에 말이다.
달리기는 나에게 하루의 출발점 혹은 하루 지속을 위한 중간 발판, 하루의 종료를 나에게 알리는 마감행동일 지도 모르겠다. 2024년 1월의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날씨를 확인하려 하얀 커튼을 젖히고 서리가 껴 흐릿한 창문을 열면 새하얀 바닥과 지붕이 보이기 일쑤다. 그럼에도, 그런 거리를 보아도 '아 오늘은 눈이 왔으니 다칠 수 있어 못 달리겠군.'이 아닌 '눈이 내렸으니 달릴 때 선글라스를 껴야겠군.'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 겨울에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눈이 부신 데다 영하의 날씨가 눈을 타격한다. 겨울엔 몸을 보호할 장치들이 매우 중요하다.- 여름의 달리기는 주로 밤에 이루어졌었다. 해가 떠있을 때 뛰기는 하지만 그것은 고행이나 다름없다. 너무나도 강한 해 아래서 뛰는 것은 죽음과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가을과 봄에는 대게 새벽에 뛰는 경우가 많았다. 가을과 봄은 사실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기에 두말할 것도 없다.
아침에 해가 뜨는 광경을 보는 것도 행복했고 봄과 가을은 사실 언제 뛰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정말이지 달리기는 주변 환경을 둘러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 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계절감을 확실하게 몸으로 느끼는 것. 나뭇잎들의 색 변화. 그와 더불어 산의 전체적인 모습도 변모하고.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의 온도. 하천가의 새들의 행태. -새들은 겨울에는 강가에서 웅크리고 여름에는 나무밑에 쉰다. 우리 집 근처에는 황로, 왜가리, 물닭 그리고 흰뺨검둥오리가 산다. 그들은 겨울을 잘 지낸 뒤 계절이 많이 풀리면 수많은 자식들과 다시 같은 공간에서 살아간다. - 세상 모든 것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보고 있자면 내가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막연하지만 확실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나에겐 일상적 달리기다. 일상을 온전히 나의 몸과 눈과 귀로 체험하는 달리기인 것이다.
달리기가 일상이 되니 오히려 달리기 실력만을 바라고 뛰었던 초창기시절보다 속도가 많이 느려졌다. 오히려 달리기 자체의 순수함을 느끼고 있다랄까. 달리기를 더 빠르게 더 짧은 시간 내로 달리고자 하는 욕구는 언제나 있다. 그것을 행하는 시기의 차이가 있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에는 기준점이 일정한 거리를 더 빠르고 더 짧은 시간 내에 달리는 것이 목표였다. 그만큼 속도감을 즐기기도 했고 숨이 벅차오르는 것에 임계점을 많이 느끼다 보면 성장이 더 빠르게 일어날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러나 달리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니 달리기가 그렇다기보다는 마라톤 유형의 달리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몸으로 느끼는 바로도 달리기라는 운동은 짧고 빠르게 와는 전혀 상관없는 운동인 것 같다. - 물론 개인의 주관에 따라 다르겠지만은 -
내 발의 감각을 누구보다도 자세히 알아야 하고 숨에 내가 잡어 먹히지 말아야 하며 몸의 어느 부분이라도 통증이 있어서는 안 된다. 통증이 있는 달리기는 자신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나는 그 부분을 인지한 다음부터 속도를 늦추고 시간을 늘렸다. - 흔히들 그런 것을 LSD훈련이라고들 하더라. Long slow distance. 그러나 지금 내가 달리는 거리도 LSD에 충족되는 기준은 사실 아니다. 약 20~30km 정도를 LSD라고들 표현하더라. - 마라톤을 겨냥하여 시작한 훈련이지만 달리기에 대한 본질을 깨닫고 있다. 그것은 빠른 속도와 최대한 짧은 시간이 아닌 나의 몸에 집중한 달리기였다.
천천히 긴 거리를 달리다 보면 정신과 육체가 명상하든 어느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상태가 된다. 그와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의식이 뻗어나간다. 달리기 역시 명상에 가까운 행위라고 생각된다. 달리는 다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의식하고 행하는 것이 아닌 그저 이루어지는 것. 숨을 고르는 것 역시 내가 의식적인 영역이 아닌 무의식에 영역이다. 눈만 감으면 아마 모든 잡념과 걱정들이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을 느낀다.
그러기에 나는 가끔 사람이 많이 없거나 장애물이 보이지 않으면 눈을 감고 5초 정도 달려보곤 한다. 그 순간의 감각은 굉장히 기묘하다. 달리는데 달리는 것 같지 않다. 공중에 떠 있지 않지만 떠 있는 듯하다. 신체의 기능이 모두들 멈춘 채 무엇에 의해 실려나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군대에서 들것에 실려본 경험 같은 감각이다. 그것이 명상일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집에서도 이따금씩 명상을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아기와 아내가 낮잠을 자거나 집이 조용해졌을 때 유독 그런 순간을 다시 느끼고자 그런 것 같다. 결국 달리기라는 것과 명상이 글의 전체적인 주제와 어긋나는 듯 하지만 그만큼이나 달리기에 대한 이점이 나의 삶에 질량적 부피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확장되었고 축소되었고 집약되었다.
이제는 흘러가는 것에 내가 맡겨질 뿐이다. 다리는 움직일 뿐이고 나의 몸이 유체가 되어 지나가듯 지나간다. 달리기를 많이 하다 보면 아마 누군가는 이런 말에 공감을 해줄지 모르겠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러너보다는 다른 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기는 해서 말을 나누지는 못한다. 그래도 달리기에 대한 나의 작은 ‘철학’은 그렇다는 것이다. 일환이 된다는 것. 일상인 것. 내가 시작을 했지만 ‘달리기’라는 것에 내가 맡겨져 흘러가는 것. 그렇지 않으면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다. 지루하기 짝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러너들을 보면 그렇게 느끼곤 한다. 정말 수많은 색채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달리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달리기‘철학’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철학에는 아마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을 것이다. 전날 당뇨를 진단받아 생존을 위해 달리는 사람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나 달린다.’라고 얘기하는 것 같이 보이기 위한 달림을 하는 사람도 보인다. 세상엔 참 여러 가지 생각과 철학이 존재함을 달리는 공간 안에서도 볼 수 있다. 면도질에도 ‘철학’이 있다 하지 않는가.
나의 철학은 일상이다. 일상적으로 달리기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고 세수를 하고 아침식사를 먹는다. 일을 하고 책을 보고 공부를 한다. 아이와 힘써 놀아주고 아내와 서로에 대한 대화를 하고 청소를 한다. 달리기를 한다. 달리고 또 달린다. 달리기와 함께 삶이 굴러간다. 달리는 에너지는 복리효과다. 달릴수록 더 큰 에너지가 생성된다. 먼 미래에는 더 큰 에너지발전소가 몸 안에 완공될 듯하다. 나의 일상, 달리기다. 오늘도 역시 달리고 내일도 달린다. 달리기로서 나는 존재하고 삶을 살아간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두 다리로 건강히 뛸 수 있다는 것. 계속해서 뛸 수 있는 심폐가 허락된 것. 나 자신과의 결투에서 항상 승리하고 있다는 것. 모든 것이 감사한 일상이다. 감사하기에 이 일상을 더 단단하게 더 튼튼하게 다지고 싶다. 끊임없이 달릴 것이다. 아마도 그 모험은 내 생이 종료되는 시점이지 않을까. 흰머리를 날리면서도 달리고 싶다. 일상이기에. 일상을 지키기 위해. 일상을 지키는 것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